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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올 랭 사인과 애국가

Los Angeles

2007.12.28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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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제 안과전문의·바이올리니스트
이제 며칠 후면 2007년의 마지막 날이다. 이날 뉴욕 타임스퀘어 광장에서부터 크고 작은 송년 모임과 라디오 TV 등 어디에서나 들려 올 노래가 바로 '올 랭 사인'(Auld Lang Syne)일 것이다.

이 노래는 18세기 영국 스코틀랜드의 로버트 번스가 오랫동안 변형되며 전해오던 시와 멜로디를 엮어서 만든 민요에서 시작됐다. 그 지방의 토속 영어로 쓰여진 'Auld Lang Syne'의 직역은 'Old Long Since' 즉 'Days Long Ago(오래전 그 옛날)'이란 뜻이다. 1절 가사는 다음과 같다.

Should auld acquaintance be forgot(옛 그 친구들을 어찌 잊고)

And never brought to mind?(다시 생각치 않을 소냐)

Should auld acquaintance be forgot(옛 그 친구들을 어찌 잊고)

And auld lang syne(오래전 그옛날을 어찌 잊을 소냐)

For auld lang syne my dear(오래전 그 옛날을 위해 내 친구야)

For auld lang syne(오래전 그 옛날을 위해)

We'll tak a cup of kindness yet(우정의 잔을 드세나)

For auld lang syne(오래전 그 옛날을 위하여)

한 나라의 민요가 이처럼 전 세계에서 널리 애창되는 것은 없을 것이다. 이 노래는 송년 외에 송별 졸업 개회 폐회 재회 등의 행사 때도 불려지며 영어권 밖의 나라에선 자국어 가사로 불리워지고 있다. 일본서는 '호따루노 히까리' 즉 '반딧불의 불빛'이란 가사로 오래 전부터 졸업식 노래로 부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47년 건국 전까지 근 40년 동안 다른 가사로 이 노래를 애국가로 불렀다. 해방 후 북한에서도 인민공화국 건립 때 까지 이 애국가를 불렀다. 대한민국에선 건국 이후 지금 부르는 안익태 선생의 작품으로 곡만 바꾼 것이 오늘날의 애국가다. 그후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 이 한토막의 우리 역사를 모르는 사람이 그 애국가를 기억하고 불렀던 사람보다 더 많을 것이다.

안익태 선생은 서양 음악의 기본인 7음계로 곡을 썼지만 올 랭 사인 멜로디는 우리나라 민속 음악처럼 5음계로 되어 있어 정서적으로 각별한 친근감을 준다.

애국가 가사를 누가 썼는지에 대해선 분명치 않으나 윤치호 선생과 도산 안창호 선생이 가장 유력한 인물로 거론되고 있다. 필자에게는 여러모로 볼 때 도산이 지은 가사로 보여 진다.

1907년 도산이 평양에 대성학교를 설립했을 당시 애국가라고 부르던 가사는 '성자 신손 오백년은 우리 황실이요 산고 수려 동반도는 우리 조국일세'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도산이 교장으로 초빙한 윤치호 선생에게 자신이 쓴 '동해물과 백두산이…'를 보이면서 그의 동의를 얻고는 윤치호 선생 것으로 발표해서 부르기 시작했다는 말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도산이 대성학교에 오기 전 5년동안 미국에 있었을때 올랭사인을 많이 들었기에 그 곡 선율에 딱 맞게 애국가 가사를 쓸수 있었을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불려 지는 노래이자 한때 우리의 애국가로 부르던 '올 랭 사인'을 불러보는 것도 한해를 보내는 뜻깊은 일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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