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년에는, 부부관계나 자녀교육 같은 가정 관련 설교에 대한 반응이 좋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설교자가 부족해도 좋은 주제라서 그랬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혼자 사는 자매에게서, “목사님, 지난 주일설교를 듣고 집에 가면서, 말씀은 다 좋은데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했어요”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가정이 없는, 아니 ‘홀로 가정’을 꾸려가는 싱글[single]이 많은 시대인 것을 피부로 느낀 것이지요. 우리 교회에도 혼자 사는 분들이 많더군요. 자식이 다 분가해서 홀로되신 어른까지 계산하면 상당수가 됩니다.
신앙 안에서 ‘행복한 가정을 위한 건강한 부부관계’에 대해 설교 준비하던 저에게 고민이 생긴 것입니다. ‘결혼’이란 말만 하면 스트레스 받는 싱글, ‘결혼’하면 치가 떨리는 ‘돌싱[돌아온 싱글],’ 결혼생활보다 독신자가 부럽다는 ‘싱글 예찬가’가 많아진 시대임을 간과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설교핵심을 ‘부부관계’에서 건강한 ‘여성상과 남성상’으로 조율했습니다. 건강한 여성상과 남성상이 회복되면, 건강한 부부가 되리라는 기대를 마음에 품고 말입니다.
왜 우리 세대가 이렇게 되었나요? 우리는 ‘여성상’과 ‘남성상’ 혼란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동성애자가 많아진 이유 중 하나는 건강한 여성상과 남성상을 보지 못하고 자란 가정환경 때문입니다.
자신의 ‘성[性]’의 축복과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남자는 여자처럼, 여자는 남자처럼 살려고 합니다. 남자에게 맞는 일, 여자에게 맞는 일 구분이 없어야 한다는 ‘여권운동가’의 주장대로 되어가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남편이 아이보고 가정 일을 하며, 아내는 나가 돈을 벌어 가족생계를 책임지는 가정도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여성도 남성도 가정도 더 피곤해져갑니다. 혼란스러워져갑니다. 문란해지고 무분별해져갑니다. 하나님께서 축복으로 주신 성관계가 범죄와 죄의 발상이 되고 있습니다. 아예 성전환[sexual trans-gender]을 하는 멀쩡한 선남선녀까지 있으니.... 이를 어찌 하리요!
이 시대 혼란의 원인 하나는 성 ‘차별’과 성 ‘구별’에 대한 오해에 있습니다. 다른 것이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과일이 여러 종류 있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여러 다른 색깔이 있어야 무지개를 만듭니다. 성격이 다른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기에 서로의 단점을 보강하는 것입니다. 다른 것을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구분하기 시작하면, ‘차별’이 됩니다.
백인과 흑인이 다른 것은 좋고 나쁜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남자와 여자가 다른 것은 차별이 아닌, 구별과 특성과 역할에 관한 이치입니다. 다르기에 조화입니다. 다른 것으로 보강입니다. 다를 때 완성이 됩니다. 다른 독특한 자신의 모습을 가꾸어 갈 때, 여성미가 되고 남성미가 되는 것이지요.
무너져가는 가정과 차세대를 향한 아픔이 있다면, 세상에 나가 삶과 행동과 입술을 통해 우리의 믿는 바를 분명히 고백 하십시다. 벙어리 크리스챤은 벙어리 파숫군입니다. 생명까지 내놓을 수 있는 그런 신앙의 확신과 신앙양심을 따라 사는 ‘진짜 크리스챤,’ 그들이 가정과 교회와 나라를 일으켜 세울 진정한 남성과 여성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