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냑은 술 아닌 문화 상품' 헤네시 가문 8대 종손 모리스 헤네시
Los Angeles
2009.06.19 16:05
나무로 12시간 불지펴 포도주 증류
V.S.O.P는 프랑스 왕가가 즐기던 술
헤네시(Hennessy)는 프랑스 코냑의 대표 브랜드다. 1765년 설립 이후 240년 넘게 이어온 헤네시가의 명성. 그 가문의 8대손이 한국을 찾았다.
"요즘 미국에 가면 젊은이들이 힙합을 들으며 헤네시를 마시는 것이 유행입니다. 중국과 러시아에서도 젊은 사람들이 헤네시에 열광하더군요."
최근 서울 파크하얏트 호텔에서 '미스터 헤네시'를 만났다. 모리스 헤네시는 세계 최초로 코냑을 만든 리처드 헤네시의 8대 종손이자 홍보대사다.
그는 매년 이맘 때면 헤네시의 VIP 고객들을 만나기 위해 세계를 누빈다.
프랑스의 귀족적인 풍모와 매너를 가졌지만 풀어놓는 이야기 보따리에는 유머와 트렌드가 넘친다.
4년 만에 다시 만난 그에게 기자가 "더 젊어졌다"고 말하자 "비결은 최근 바꾼 양복 때문"이라며 웃었다.
코냑은 프랑스 코냑 지방의 포도주를 원료로 두번 증류해 만든 브랜디를 말한다.
이때 원료가 되는 포도주 원액을 '오드비(eau de vie)'라 부른다.
코냑 회사들은 이런 오드비를 배합해 자신들만의 코냑을 완성한다.
1765년 설립된 헤네시의 저장고에는 200년 넘게 숙성된 오드비들이 저장돼 있다. 종류만도 3000가지가 넘는다.
헤네시는 "코냑은 술이라기보다는 문화 상품"이라며 "헤네시를 마신다는 것은 200년 이상 쌓인 헤네시의 전통과 프랑스 문화를 마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조법도 그때와 크게 다를 바 없다. 포도주를 증류하는데 예전 방식 그대로 나무로 12시간씩 불을 지핀다.
그의 할아버지가 그랬듯이 지금도 프랑스산 참나무로 오드비를 숙성시킨다.
헤네시는 "헤네시 코냑의 맛을 결정하는 마스터 블렌더는 7대째 한 가문에서만 나왔다"면서 "헤네시가 오늘날까지 세계의 코냑 시장을 이끌어 온 것도 바로 이런 전통이 이어져 왔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헤네시 코냑은 흔히 V.S.O.P와 X.O로 나뉜다. 한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헤네시 V.S.O.P는 과거 프랑스 왕가에서 즐겨 찾던 술이었다.
1817년 코냑 애호가였던 영국의 조지 4세가 헤네시에 '아주 오래된 최상급 원액만을 사용한 엷은 색(Very Superior Old Pale)의 코냑'을 주문하면서 탄생했다.
대개 4년 이상 6년 이하로 숙성된 코냑을 사용한다. X.O는 헤네시 가문의 한 사람이었던 또 다른 모리스 헤네시가 1870년 가까운 친지들을 위해 특별히 만든 코냑이다.
그는 최고의 술을 만들기 위해 당시 헤네시 설립자 저장고에 보관된 50년 이상 숙성된 포도원액을 블렌딩해 X.O(eXtra Old)란 이름을 붙였다.
그런 전통 때문에 X.O는 프랑스 법에 따라 6년 이상 숙성된 원액을 블렌딩하지만 헤네시는 지금도 14년에서 30년 동안 숙성된 원액을 사용한다. 전통을 중시하는 그지만 음용법만은 얽매이지 않는다.
"진한 향을 즐기려면 코냑만 마시는 스트레이트가 좋죠. 물을 타면 맛과 향이 더 풍부해지고 부드러워집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헤네시와 토닉워터로 만든 롱 드링크(long drink)를 즐기더군요."
헤네시 코냑 한 잔에 전통과 트렌드가 공존하게 된 데는 헤네시의 마케팅 전략이 숨어 있다. 헤네시는 2세기가 넘는 역사에서 생길 수 있는 고리타분한 이미지를 극복하기 위해 젊은 아티스트와 개성 강한 디자이너를 마케팅에 적극 활용해 왔다.
한국 내에서도 매년 젊은 음악가들이 청담동 클럽에서 공연하는 '헤네시 아티스트리(Hennessy Artistry)'를 개최하고 있다.
1950년 파리 근교의 뇌이에서 태어난 모리스 헤네시는 아일랜드 귀족의 피를 물려받았다. 그는 주류 명가의 후손답게 클래식 음악과 회화 감상이 취미다. 식사를 마치면 주방장을 따로 불러 레시피를 부탁할 만큼 요리 실력도 수준급이다.
그는 "닭볶음 같은 매운 음식엔 강한 맛을 내는 헤네시 X.O가 좋다"고 조언한다.
손용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