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본 더 테이블 최현석 셰프, 후각 공략…향에 취해 먹는 요리 다양한 거침없는 시도에 창작 요리만 600점 넘어
먹어보지 않아도 배가 부를 만큼 눈과 코가 즐거운 코스였다. 동시에 먹어보지 않으면 도무지 그 맛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독창적인 요리였다. 다양한 식감과 맛으로 변신을 이어가는 양파는 코스를 거듭할수록 진해지다 디저트에서 폭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제 요리는 한마디로 '정신질환요리'죠. 정신 나갔나 싶을 만큼 다양한 시도를 해봐요." 최현석(38.사진) 셰프의 말이다. 그의 시도는 거침이 없다. 2년 반 동안 그가 선보인 창작요리만 600점이 넘는다. 팬 카페가 있을 만큼 미식가 사이에선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는 그이지만 처음부터 요리사를 꿈꿨던 것은 아니었다.
"쿵후를 하고 싶었는데 부모님 소개로 이탈리안 레스토랑 '라쿠치나'에 들어가면서 김형규 셰프님을 만나 인생을 바꿨어요."
그는 스승에게서 '사람에게 해가 되는 음식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는 소신을 배웠다. 오너에 따라 요리가 좌지우지되는 레스토랑 환경에 염증을 느껴 요리를 그만두려 했던 적도 있었다.
그때 테이스티블루바드 오너의 '착한 사람이 잘되는 걸 한번 보여주자'는 말에 넘어가 함께 일을 시작했다. "요리는 문화예요. 셰프를 문화를 이끄는 트렌드세터로 인정해 주어야 식문화도 같이 발전할 수 있습니다."
◇ 에피타이저 네 가지 식감의 양파와 바닷가재 : 양파와 바닷가재로 서로 다른 맛과 질감의 네 가지 애피타이저를 선보였다.
꿀과 레몬즙 라즈베리 식초를 넣은 상큼한 양파즙을 젤리로 만들어 바닷가재로 속을 채운 젤리라비올리 양파를 거품으로 만들어 올린 타르타르 분자요리 기법을 이용해 양파즙을 계란노른자처럼 만든 바닷가재 그릴 우주선 모양의 양파튀일 돔이 그것이다. 시각적인 궁금증으로 식욕을 자극하는 메뉴였다.
◇ 메인 시트지로 감싸 오븐에 구운 양파와 광어찜 : 메인은 후각을 공략했다. 향에 취해 먹는 요리라 할 수 있다. 먼저 구운 양파를 시트지에 깔고 그 위에 광어를 올린 후 엔초비와 올리브 양파를 올려 오븐에 굽는다.
밀봉을 한 시트지 안에 가득 찬 양파.올리브.엔초비의 풍미가 모두 광어 살에 배어든다. 먹기 직전 테이블 위에서 시트지를 개봉해 주는데 이때 올라오는 향이 메인 요리의 백미다.
◇ 디저트 양파수플레 : 식후 입안에 남는 냄새 때문에 양파는 디저트로 꽤나 부담스러운 재료다.
하지만 최 셰프는 양파향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과감하게 드러냈다. 양파 분말을 이용해 수플레를 만들고 여기에 양파 앙글레즈 소스를 곁들였다.
봉긋하게 부푼 수플레의 속을 갈라 따뜻하게 데워진 앙글레즈 소스를 부어 먹으면 양파 수프를 먹는 것처럼 부드럽다. 양파향이 달콤한 수플레에 녹아들어 거부감이 없다.
■정식당 임정식 셰프, 촉각 공략…촉촉한 삼겹살 좋죠 유쾌한 '압구정 아이돌'…내년엔 뉴욕 식당 오픈
양파를 철저히 숨겼다. 접시를 보고도 어디에 있는지 한참 찾을 정도다. 말리고, 갈고, 다지며 완벽한 조연을 만들었다. 양파의 강한 향은 사라지고 단맛만 남게 했다. 한 접시에 보통 대여섯 가지 식재를 쓰면서도 하나같이 겉돌지 않은 이유가 거기에 있다. 푸아그라와 삼겹살, 아이스크림으로 이어지는 코스는 양식과 한식의 경계를 허무는 화려한 변주였다.
임정식(31·사진) 셰프는 유명 독립 셰프들 사이에서 ‘압구정 아이돌’로 불린다. 유쾌하고 자유분방한 성격에다 메뉴까지 꼭 그렇기 때문이다. 그는 올해 ‘정식당’을 열었고, 이곳은 곧바로 ‘핫 플레이스’로 떠올랐다. “왜 한정식이냐고요? 프렌치나 이탈리아 레스토랑은 많지만 이런 한식당은 없잖아요.” 메뉴는 점심·저녁 코스 한 가지씩밖에 없다. 음식 이름도 ‘신사동 미역 빠에야’ ‘천궁 삼계탕’ 등 장난기가 넘친다. 그는 군대에서 취사병이었다. 이를 계기로 음식에서 길을 찾기 위해 세계 3대 요리학교 중 하나인 미국 CIA(The Culinary Institute of America)에 진학했다. 졸업 후엔 세계의 유명 레스토랑을 돌며 미식 여행을 다녔다. “세계 여러 곳을 다녔지만 우리나라처럼 음식이 다양한 곳은 드물어요. 한식만큼 무한대로 도전할 수 있는 영역도 없어요.” 그는 내년엔 뉴욕에 정식당 2호점을 열 계획이다. ‘새로운 한식’이 뭔지 이번엔 세계에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 애피타이저 푸아그라무스와 말린 양파 : 부드럽고 녹진한 푸아그라 무스와 바삭하게 말린 양파의 식감이 대조된다. 무스만으로 기름지고 텁텁할 수 있는 입안을 가볍게 만드는 효과를 노렸다. 말린 양파는 흑설탕을 뿌려 오븐에 구운 뒤 10시간 이상 말린 것. 마치 시나몬 파우더 같아 장식용으로도 좋다. 양파 위에는 피스타치오 가루를 듬뿍 뿌려 단순해 보일 수 있는 디스플레이에 초록색 산뜻함을 더했다. ◇ 메인 돼지삼겹살 보쌈과 양파 장아찌: 한 접시에 다양한 맛을 동시에 담았다. 돼지고기의 촉촉함, 매시드 포테이토의 부드러움, 양파 장아찌의 새콤함이 어우러진다. 특히 삼겹살은 저온에서 장시간 익혀 내는 조리법으로 만들어 육질을 최대한 부드럽게 살렸다. 퓨레처럼 곱게 갈아낸 양파 장아찌는 매시드 포테이토와 어우러지며 양식·한식 소스가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 디저트 양파 타르트와 양파 아이스크림: 뜨거운 양파와 차가운 양파가 동시에 만났다. 양파와 사과를 넣은 커스터드 크림으로 타르트를 만들고, 볶은 양파를 잘게 다져 헤이즐넛 아이스크림에 숨겼다. 타르트 위에 아이스크림을 올리고 설탕으로 만든 가니시를 얹었다. 접시에 장식한 발사믹 식초와 초콜릿을 섞은 소스, 과일 퓨레, 사워 크림이 단맛에 새콤함을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