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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걷기의 즐거움

Washington DC

2010.06.02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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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실/저먼타운·MD
두발로 서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동작 중에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 바로 걷기가 아닐까? 아기가 갓 태어나 겨우 목을 가누고, 몸을 일으켜 앉고, 밀고, 기고, 서는 발달 과정의 최종 목표는 바로 걷는 것이다.

그리고 아기가 걸을 줄 알게 되면 다시 기거나, 앉아서 밀고 다니지 않는다. 넘어지고 부딪히더라도 한걸음 한걸음 발을 떼어 걷고, 그렇게 서서 걸으며 세상을 만난다.

미국이란 나라의 생활방식과 생활반경이 걸어가서 장을 본다던가, 아니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위해 걷는다던가 하는 일이 그다지 많지 않다보니 주로 걷기보다는 운전할 일이 더 많다. 그래서 언제부터인지 하다못해 쇼핑몰의 넓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그저 100미터쯤 걷는 것도 살짝 귀찮고 짜증이 나곤 한다.

지난 3월부터 자발적이라기보다는 몸의 필요와 상황에 등이 떠밀려 운동을 시작했다. 사실 지난 1월부터 요가 클래스나 타이치 클래스를 끊으려고 여기 저기 기웃거려 보았는데 시간이나 여건이 잘 맞지 않아 이리저리 재고만 있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걷거나 뛰어서 산에 하이킹 가는 것을 거의 일상 스케줄처럼 해오던 남편이 왜 좋은 운동 놔두고 어렵게 찾느냐며 자기가 초보인 나에게 페이스를 맞춰 줄 테니 일단 동네부터 걷고 차츰 늘려가며 자기하고 같이 산에 다니자고 권하기에 못이기는 척 따라 나섰다.

지난 석 달 정도 걸을 때마다 걷는 거리와 시간을 로그에 기록하고 있는데 그냥 숫자들만 봐도 시작할 때보다 기록이 많이 좋아지는 걸 알 수 있다.

걷는 속도가 빨라지고, 좀 더 많이 걸을 수 있게 돼 몸의 변화도 기쁘지만 가까운 공원의 트레일 코스들을 여기 저기 다니다 보니 내가 아름다운 곳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집에서 가까워 자주 가는 그레이트 세네카 스테이트 파크 안에는 호숫가를 한바퀴 도는 4마일 남짓한 레이크 쇼어 트레일 코스가 있다. 3월 초부터 지금까지 매 번 갈 때마다 피는 꽃의 종류들이 다르고, 나무의 모양새가 다르고, 새들의 지저귐이 달랐다.

벚꽃이 지고, 덕우드가 피고, 아카시아가 지고, 찔레꽃이 피고 자연의 시간표가 어김없이 그 작은 공원에도 찾아오는 모습을 생생하게 지켜보았다. 이제 레드 카디날의 노래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고, 드물게 딱따구리 소리라도 들리면 신기해한다.

서울이란 도시에서 태어나 자랐고, 미국에 와서도 늘 큰 도시에서만 살아왔다는 핑계를 대기에는 신발에 흙 묻히는 일 자체를 몹시도 싫어하고, 걷는 일을 노동처럼 여기며 살아온 내 유약함과 게으름이 더 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구상에서 40몇년을 살고 이제야 흙을 밟는 일의 기쁨, 내 다리를 움직여 걷는 일의 즐거움을 겨우 깨달아가고 있다.

최근에 갑자기 걷는 일에 대한 관심이 많아져서 몇 가지 걷기에 관련된 책들을 읽었다.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중국의 시안에 이르는 실크로드를 1099일에 걸쳐 걸어서 여행한 기록인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 1, 2, 3]과 조이스 럽 수녀님이 프랑스에서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의 산티아고 성당에 이르는 800킬로미터에 이르는 순례의 길을 다녀와서 그 여정과 은혜를 기록한 [느긋하게 걸어라]라는 책이다.

그 책의 저자들도 스스로에게 묻는다. 왜 그 모든 위험과 어려움을 무릅쓰고 그토록 걷고자 하는지, 그리고 그들은 걸으며 그 답을 찾아간다.

물론 나의 걷기가 그렇게 형이상학적인 무언가를 찾기 위해서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나의 걷기는 그저 단순히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위해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시작한 지극히 현실적인 방안일 뿐이다.

그러나 그 동기가 어떠하든지 걷기 시작하고 보니 많은 것들이 보인다. 흙이 주는 지혜인지도 모르겠지만 이름도 잘 모르는 나무나 꽃이나 새들이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왜 그들을 잘 지켜야 하는 건지 절로 마음에 애착이 생겨난다.

걸으며 만나는 풍경과 내 마음이 만나 시간의 흐름이 보이고, 마음이 밝아지고, 눈이 맑아진다. 걷다보면 머릿속의 복잡한 생각들이 정리되고, 중요하지도 않은데 매인 마음들이 놓여난다. 그렇다 보니 주변 사람들에게 자꾸 걸으라 권하는 중이다. 그리고 이글도 그 권함의 한 방편이다. 걷는 일의 즐거움과 유익을 많은 분들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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