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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메세지] 이스라엘의 하루의 개념

Washington DC

2011.01.11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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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981년 이스라엘을 방문 할 때의 일이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삼엄한 수속 절차를 마치고 이스라엘 비행기를 탔다. 텔아비브 국제공항에 착륙하려 할 때 창밖으로 내다보는 순간 신기하기도 하지만 아찔한 장면을 보며 놀랬다. 한국 같으면 외국인들에게 잘 보이려고 주변 환경을 깨끗이 정리할 텐데 이스라엘은 그렇지 않았다. 6일 전쟁 때 폭격받아 부숴진 그대로 활주로 주변에 비행기들을 방치해둬 여행자들의 마음이 섬뜩했었다. 강대국들에 둘려쌓인 이스라엘이 지금도 침략을 받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 때문에 까다로운 수속 절차도 이해가 됐다. 최근 한국에는 연평도 북한 도발 사건으로 나라가 뒤숭숭해졌다. 연평도의 민가가 포탄에 잿더미가 되고 해병대도 습격을 받아 사상자가 일어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지난 정권 때 잃어버린 10년에 비통함을 느꼈다. 군인과 청소년, 학생에겐 주적 개념이 사라졌고 군인 정신도 빠져버렸고 군 복무기간만 단축하자고 했으니 국방이 말이 아니었다. 대한민국은 적이 없어졌으며 평화만 있으리라는 꿈을 꾸고 있었다. 북한이 핵무기를 만드는 동안 남한은 달러만 퍼주었다. 북의 핵무기가 대한민국을 지켜주리라는 착각 속에서 살았다. 연평도 사건이 대한민국을 정신 차리게 한 것이다.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건은 나라의 망신이었다. 이때 우리는 이스라엘의 6일 전쟁을 배웠어야 한다. 왜 우리는 적을 초토화하질 못했을까.

 30년 전 관광버스에 몸을 담고 이스라엘의 구석구석을 누비면서 크게 느낀 바가 있었다. 삭막한 땅. 모래와 자갈로 덮여있는 불모지의 땅, 풀 한포기를 구경하기가 힘든 땅, 그런 곳을 누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했을까? 누가 황무지에 장미 꽃을 피게 할 수 있을까? 이스라엘에서 배운 것 가운데 두 가지만 소개해본다.

 첫째, 나라 없이 2000년 역사를 지내오면서도 저들은 굴하지 않고 옛 고토를 찾아 세계 1등 국가가 될 수 있었던 잠재력은 바로 예수님의 은혜라는 것이다. 황막한 사막 벌판에 세계 곳곳에서 달러를 들고 이 땅에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보며 이것은 예수님 은덕이라는 사실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관광객들은 예수님의 발자취를 밝고자 찾아온 것이다. 특별히 볼만한 관광지나 예술품이 있는 곳도 아니었다. 그저 하나님의 아들이 이스라엘 땅에 걸으신 발자취를 더듬기 위해 세계각지에서 몰려든 것이다.

 둘째, 여행 중 금요일 밤을 예루살렘에서 지냈다. 해가 떨어져 어두울 때 좁은 골목길을 걷다가 놀란 것은 집집마다 촛불이 켜져있었고 성경 읽는 소리가 들렸다. 예루살렘에 기독인은 얼마 되질 않는데, 이스라엘인들은 금요일 밤부터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었다. 그때 알게 된 것은 우리의 하루의 개념과 이스라엘의 하루의 개념이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의 하루는 동녘에 태양이 떠오를 때 시작된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하루의 개념이 해가 질 때부터 시작된다. 이스라엘의 정신력이 바로 여기서 나는구나 하고 깨달았다. 저들은 어둠을 먼저 경험한다. 긴긴 겨울밤 어둠 속에서 추워 벌벌 떨 때도 있다. 그러나 저들은 낙심하질 않는다. 이 어둠과 추위가 지나가면 동녘에 태양이 떠오르는 새날이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 어떤 역경도 이겨 나갈 힘을 기른다.

 독일 나치시대 수많은 유태인들이 학살 당했지만 저들이 살아남은 것은 바로 하루의 개념의 철학이었다. 어떤 고난도 역경도 견디어 낸 민족이다. 역사적으로 주위에 강대국으로부터 수많은 침략, 포로생활을 겪었지만 내일 아침 동녘에선 반드시 태양이 떠오른다는 희망을 포기하질 않았다. 그것이 오늘의 이스라엘을 축복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우린 희망을 포기하지 말자. 오늘의 어두운 밤이 지나면 반드시 동녘에 태양이 떠오른다.

신동수 목사 순복음프라미스랜드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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