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는 조사의 의미로 쓰이는 말이다. 북한에서 일부 학자들은 조사와 어미를 모두 토라고 부르기도 한다. 중심적인 의미가 아니라 부차적인 의미를 더한다는 생각으로 쓰는 용어이다. 이 ‘토’라는 단어는 만들어 낸 말이 아니라 ‘토를 달다’에서처럼 원래 쓰이고 있었던 말에서 가져온 것이다.
한문 어구를 읽을 때 해석의 편이를 위해서 한글로 토를 달아 놓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말 표현들을 살펴보면 토는 그다지 긍정적인 느낌은 아니다. 왜 그럴까?
우리말에서는 조사를 쓰는 것이 안 쓰는 것보다 오히려 어색한 경우가 많다. 특히 글로 쓸 때보다 말로 할 때는 조사가 들어가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조사가 생략되었다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생각해 보면 생략이 아니라 필요할 때마다 첨가한다고 하는 것이 오히려 맞는 것 같다.
대부분 조사가 없어도 그 말이 쓰인 상황을 보면 의미 파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너 밥 먹었니?’라고 할 때 ‘너는 밥을 먹었니?’라고 표현하는 것이 원래의 문장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무엇인가 뜻을 더욱 확실히 하고 싶을 때, 조사를 덧붙인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았다’는 표현을 보면 ‘토’가 정확함을 나타내는 도구임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보통 때는 상황에 맞게 토씨를 쓰지 않지만 정확히 무언가를 전달하거나 확인해야 하는 경우에는 토씨를 써야 하는 것이다.
우리말에서 ‘토를 달다’라는 표현을 하는데 이 말은 자꾸 필요 없는 말을 한다는 뜻이다. 변명을 하거나 핑계거리를 말할 때도 사용하는 표현이다. 다른 사람의 생각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으로 끼어들 때도 쓰는 표현이다.
우리 생각에는 근본적으로 필요하지 않은 표현이 ‘토’인 것이다. 토가 없어도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면 이해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조사를 ‘토’라고 이름 붙인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사람들이 ‘할 수 있지만 전제조건으로 무엇이 마련되어야 한다’든지, ‘할 수 있었는데 무엇 때문에 안 되었다’든지 하는 말들을 하는 것은 모두 토를 다는 것이다. 또 누군가가 하는 말에 어려울 것 같다든지, 그럴 리가 없다든지 하며 초를 치는 것도 다 토를 다는 것에 해당한다. 물론 정당한 비판이나 분석을 토를 단다고 하지는 않는다.
한국어가 어렵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한국어에 조사가 발달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조사와 비슷한 것이 없는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한국어의 조사를 구별하여 사용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한국어에서 특히 말을 할 때는 조사의 사용이 때로는 불필요한 것이라는 점을 알면 한국어 학습의 부담이 적어진다. 한국어를 잘 하는 외국인이 말하는 것을 가만히 들어보면 조사의 사용이 참 적다. 조사를 적게 쓰는 것이 자연스러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대화에서는 조사의 사용을 줄이고, 논리적인 글쓰기에서는 조사의 사용을 늘린다면 한국어를 제대로 사용하는 것이 된다.
나는 ‘토를 달다’라는 표현을 보면서 우리말이 얼마나 상황 중심적인가에 대해서 새삼 놀라게 된다. 필요한 표현들을 상황에 맞게 이야기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말로 이야기할 때는 대화 속에서 푹 빠져 있어야 한다. 딴 생각을 하다보면 이야기의 맥락을 놓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토를 다는 사람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