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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자신에게 인색한 사람들

Los Angeles

2011.10.02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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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숙 / 자유기고가
이계숙씨는 남한테도 잘 베풀지만 자신에게도 참 후한 것 같아." 예배를 마친 후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P씨가 나를 보고 한 말이다. 옷이나 구두 등 나를 치장하는데 돈을 아끼지 않는 것 같다는 얘기였다. P씨 말에 나는 그저 웃었다. 자신에게 후하다는 말이 칭찬인지 욕인지 감을 못잡았겠기에.

사실은 P씨가 나를 잘 모르고 한 말이다. 나는 이날 이때까지 명품이란 걸 가져본 적이 없다. 구두와 백은 30달러 이상을 그리고 옷은 50달러 이상의 것을 사본 적이 없다. 내가 입고 걸치는 것들은 거의 다 재고처리 전문점의 그것도 할인 딱지가 두세개 덕지덕지 붙은 것 그리고 남한테 얻은 것들과 헌옷 가게에서 구입한 것들이다.

두달 전 J씨 자녀 결혼식에 참석했었다. 밤색 원피스에 표범무늬 숄을 걸쳤는데 근사하다는 칭찬을 많이 받았다. 그날 내가 입은 것들은 통틀어 20달러가 채 안된다.

정말이지 나는 나 자신에게 정말 돈을 안 쓴다. 회사에도 도시락을 항상 싸가지고 다니고 혼자서는 전문점 커피 한 잔을 사먹어 본 적이 없다. 머리가 길면 혼자 대충 잘라 뒤로 올리고 다녔기에 미장원에도 1년에 한 번 갈까말까다.

가만보면 자신에게 인색한 사람들이 내 주위에 꽤 많다. 그런데 그들의 특징은 남한테는 푼수 소리를 들을 정도로 잘 준다는 것이다. 밥값은 항상 먼저 내고 남한테 주는 선물은 비싼 것만 한다. 자기 자신한테는 아까워서 못하는 것들을 남을 위해서는 기꺼이 하는 것이다.

O씨로부터 들은 얘기다. K씨네에 초대받아 갔단다. 밥 먹기 전 손을 씻고 있는데 K씨가 종이 타올을 뜯어주면서 말하더란다. 손닦은 종이는 버리지 말고 저를 주세요. 모았다가 부엌 바닥 닦을 때 재사용할 거니까. O씨는 감탄했단다. 남한테 아낌없이 돈을 잘 쓰길래 경제관념이 없는 줄 알았더니 종이 한 장을 허투루 쓰지 않는 검약한 사람이 바로 K씨였다고.

존경받는 어르신 부부와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그 부부는 한인사회에 기부를 가장 많이 하고 어려운 사람 돕는데도 늘 앞장서는 사람이다. 나는 그들이 원래 풍족하고 넉넉해서 그러니까 항상 돈이 많아서 그런 선행을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들도 이민 초기를 나처럼 청소부터 시작했었다는데 깜짝 놀랐다.

"낮엔 자동차 정비공장을 다니고 저녁엔 청소를 했지. 그러다가 덥석 주유소를 차렸겠다? 처음 차려놓고 겪은 고생은 말로 다 못해. 영어도 모르고 경험도 없이 덤벼든 거였거든. 4달러치 기름을 넣으라는 손님의 말을 풀(full)로 알아들었겠지. 가득 채워주고는 4달러밖에 못받고 망연자실한 일도 있었어."

그렇게 말하는 그 어르신의 손. 평생에 걸친 차 정비 일로 기름이 낀 험한 손. 그 거친 손으로 번 돈으로 한인회에 한국학교에 이웃에 아낌없이 베푼다. 그들을 안지 20년이 되었지만 고급차를 타는 것을 나는 본 적이 없다.

요리연구가 장선용 선생이 최근에 보내 온 편지 중 이런 대목이 있었다. '나 자신에게 아껴야 남에게 후할 수 있지요.'

당신은 자신에게 후한 사람인가 아니면 남에게 후한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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