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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셔 플레이스] '던바 숫자'와 최루탄

Los Angeles

2011.11.24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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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는 철저히 이윤을 추구하는 집단이다. 영어로는 '캄퍼니(company)'다. 그런데 본래 의미는 딴판이다. 라틴말이 어원으로 '한솥밥을 먹는 사람들'이란 뜻이다. 캄퍼니는 로마제국 시절 최소 단위의 전투부대를 일컫는 말이었다고 한다. 구성원은 150명 남짓 기록에 따르면 그렇다.

숱한 전투를 치르다 보니 경험상 이 숫자가 가장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던 것같다. 로마는 부대를 캄퍼니 단위로 편성해 싸워 유럽과 북아프리카에서 패권을 잡을 수 있었다.

캄퍼니는 규모가 크지도 작지도 않아 병사들은 매일 한솥밥을 먹으며 팀워크를 다졌다. 그래서 캄퍼니가 회사란 뜻으로 쓰이게 된 듯싶다. 사원들이 똘똘 뭉쳐 최대의 이익을 창출해내는 것이 군대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로마의 전례를 따르는 기업들도 적지 않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한 오피스에 150명 이상은 절대 배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즘 군대에서도 중대를 캄퍼니라 부른다. 독자적으로 작전을 펼 수 있는 부대다. 숫자도 2000년 전과 거의 같다. 중대장으로 보임되는 대위가 '캡틴'이 된 것만 봐도 군 조직에서 중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프로스포츠 구단에서 유일하게 완장을 차고 뛰는 선수도 주장 곧 캡틴이다.

영국 옥스퍼드대의 로빈 던바 교수는 로마의 캄퍼니가 왜 150명이 됐는지를 과학적으로 입증해 내 유명해진 인류학자다. 그는 영장류 30종을 연구한 결과 사람처럼 뇌가 발달한 종일수록 친교집단이 커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러나 사람의 뇌가 '가까운 인맥'으로 기억할 수 있는 숫자는 고작해야 150명 수준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많아봐야 피상적인 관계일 뿐 실제 친분을 맺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알고 보면 로마 군단 뿐만이 아니다. 신석기 시대 농경집단의 사이즈도 비슷했다. 펜실베이니아주에 주로 거주하는 종교집단 '아미시'도 부락을 150명 단위로 나눈다고 한다. 이 숫자를 넘으면 쪼개 또 다른 마을을 만든다.

던바 교수는 어느 집단이건 150명선을 유지하면 유대감이 높아진다고 설명한다. 이른바 '던바의 숫자(Dunbar's number)라는 것이다. 우리의 뇌가 인지하고 감정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숫자다.

'던바의 숫자'는 인맥관리에는 이상적일 수 있으나 정치판에선 가끔 부작용도 빚는다. 집단행동으로 표출되는 까닭이다.

엊그제 한나라당이 단독 처리한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이 한국국회 표결에서 찬성 151표로 기습 통과됐다. 던바의 결속력을 과시했다고 할까.

민주당과 민노당 등 야권도 의원들을 모두 합치면 '던바의 숫자'에 근접한다. 급기야 어느 야당 의원이 최루탄을 꺼내 뇌관을 뽑았다. '펑'하는 소리와 함께 국회 본회의장은 전쟁터나 시위현장을 방불케 했다.

한국 의원들은 대부분 개인적으로는 우수한 자원들이다. 하버드 등 아이비리그 대학을 나온 의원들도 꽤 된다. '최루탄 폭거'의 장본인도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리그' 출신의 엘리트다. 그런데도 금배지를 달고 국회에 들어가기만 하면 돌출행동을 벌이기 일쑤다. 마치 고매한 인격의 소유자라 할지라도 예비군 훈련 소집을 받으면 이상하게 되는 것이나 진배없다.

국익을 위한다며 일사불란하게 몰표를 던진 여권 이에 맞서 극단적인 수법을 동원한 야권. '던바의 숫자'가 100명만 됐더라도 이런 해프닝은 빚어지지 않았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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