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고추가 맵다. 가슴까지 얼얼하다. 박정현-성시경 러브콘서트를 본 소감이다. 150Cm의 작은 체구에서 그런 폭발적인 음색이 터져 나오는지 음과 음 사이를 미끄럼 타듯 자유롭게 넘나드는 테크닉이 완벽에 가깝다.
‘R&B 여제’라는 타이틀이 아깝지 않다. R&B(Rhythm and Blues)는 50년대 블루스와 재즈가 섞여 태어난 흑인 음악 가락과 장단, 가사 등에 댄스 요소가 더해져 대중적이며 호소력이 강한 게 특징이다. 반면에 성시경의 목소리는 달콤하고 감미로워 속삭이며 파고들어 폭넓은 호소력으로 고국의 향수를 달래주기에 충분했다.
박정현은 캘리포니아 출신이다. 요즘 한국에서 미국 출신 연예인들이 상종가를 치고 있다. 박정현도 뛰어난 가창력에 비해 그 동안 주류 매스컴을 비켜갔는데 ‘나는 가수다’를 통해 당당히 ‘국민요정’으로 떠올랐다.
미국에서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낸 동포 출신 연예인들은 자신이 출생한 미국에서 인종차별을 받은 적이 있는 것처럼 한국에서도 이방인처럼 차별 받는 아픔을 겪는다.
“나는 미국에서는 한국인이었고, 한국에서는 미국인이었다. 미국도 한국도 아닌 중간경계에서 경계인의 삶을 살고 있다.” 영화배우 김윤진의 말이 그 단적인 표현이다.
몇 년 만에 고국에 가도 이방인처럼 소외감을 느낄 때가 많은데 자란 환경이 다른 재미동포 2세들이 겪는 차별과 이질감은 이해 가고도 남는다.
동포는 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형제자매, 같은 나라 또는 같은 민족인 사람을 다정하게 이르는 말이다. 동포(同袍)란 한자어 뜻 그대로 옷을 서로 바꿔 입으며 괴로움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이란 뜻이다.
같은 핏줄을 지녔다 해도 문화가 각기 다른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옷을 바꿔 입을 만큼 친숙해지긴 쉽지 않다. 문화는 하루 아침에 익숙해지지 않는다. 김치가 제 맛을 내려면 숙성기간이 필요하다.
집 떠나 멀리 온 사람들에게 금의환향(錦衣還鄕)의 꿈이 있다. 초한(楚漢) 전쟁에서 승리한 항우는 진나라의 도읍 함양을 버리고 자신의 고향인 팽성으로 도읍을 옮기는 실수를 범해 천하를 잃게 된다.
유방이 천하의 요새인 함양을 손에 넣기 위해 장량을 시켜 퍼트린 노래 ‘부귀하여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면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가는 것과 무엇이 다르리!’에 속아넘어갔기 때문이다.
이번 콘서트에서 박정현은 고향 미국에 온 감회에 못 이긴 듯 ‘교포 분위기’에 충실 하려고 많은 정성을 보였다. 교포 분위기란 말에는 묵은 것, 유행에 뒤지는 것, 향수, 고국 타령, 이민생활의 한풀이란 비하의 의미가 담겨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조국을 떠나오면 어쩔 수 없이 양다리 걸칠 수 밖에 없을 때가 많다. 박정현은 자신의 고향이 한국도 미국도 아닌 ‘박정현’이란 자신의 노래임을 기억해야 한다.
서툰 한국말 땜에 주눅들 필요 없고 어수룩함을 어릿광대 삼는 미디어에 휘둘릴 필요 없다. 또한 비눗방울처럼 날아가 버리는 버블현상에 솔깃해져선 안 된다.
박정현은 소름 끼치는 가창력의 소유자다. 국경을 넘나드는 자유로움, 민족을 초월해 인류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음악. 완전한 자유로움이 주는 독특한 개성, 동서양을 어우르는 영혼의 목소리, 차별을 긍정으로 바꾸는 위대한 힘을 그녀의 음악에서 듣는다.
신들린 듯한 음색, 유창한 영어실력으로 세계무대를 제패할 박정현의 내일을 지켜본다. 태평양 한복판이 떨어져도 오직 내 힘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힘으로, 화성에서 온 작은 고추가 지구를 뜨겁게 달굴 날이 멀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