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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느끼며] 사랑이 지나가면

San Francisco

2012.07.25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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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에 쓴 ‘사랑은 변한다’는 내 칼럼이 LA판 중앙일보에도 실렸나 보다. LA 근교에 사는 중년의 남성 독자가 편지를 보내 왔다. 말씀드리기도 심히 부끄럽지만, 하고 서두를 시작한 그의 편지 내용은 아주 놀라운 것이었다. 몇년전 그는 직장 동료와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는 가정이 있는 남자였고 그녀와의 사랑을 성취하기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포기했다고 한다.

그녀를 뺀 다른 모든 것들은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었기에. 그녀만 옆에 있으면 이 세상이 다 내 것 같았기에.

“이계숙씨가 쓴 대로였습니다. 안 먹어도 배 불렀고 잠 자지 않아도 피곤하지 않았어요. 옆에 있어도 그리운 여자가 바로 그 여자였어요. 그녀와 함께 한 순간들은 행복, 바로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그 황홀한 감정이 지나가는 데는 딱 6개월밖에 안 걸리더라고 했다. 사랑의 감정이 다 지나간 지금은 자책으로 발등을 찍는다고 했다. 사랑할 땐 보이지 않던 여자의 나쁜 점들이, 아니 오히려 장점으로 보이던 온갖 결점들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해 매일 싸운다는 것이다.

“여자가 많이 게을러요. 첨엔 느긋하고 여유스러워서 좋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것 때문에 아주 미칠 것 같습니다”

부모의 강요로 했던 첫 결혼. 부인에게 사랑이란 감정도 없이 아이 낳고 그냥 저냥 살았다고 했다. 학교에, 군대에, 변변한 연애조차 못하고 결혼해 살다가 처음으로 사랑에 빠졌던 그는 사랑이 변한다는 걸 몰랐다고 한다. 폭풍같고 불꽃같은 사랑이 지난 자리에 남는 것은 폐허처럼 황량한 가슴뿐이라는 것도 몰랐다고 한다. TV에 나와 닭살 애정을 보이던 연예인 커플들이 왜 금방 이혼을 하고 서로의 치부를 드러내가면서 책임을 전가하는지 이해못했어요. 그들도 몰랐던 겁니다. 사랑이 변한다는 것을. 특히 아무 책임없이 감정이 이끄는대로 행했던 사랑의 지난 자리에는 후회와 미움뿐이라는 것을.

어쨌든 비싼 댓가를 치루고 이룬 사랑이고 무엇보다 자신이 저지른 행동에 책임을 져야한다고 생각하기에 노력을 하고는 있지만 그 여자와의 관계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자신이 없다고 했다.

일생동안 누구나 한두번은 불 같은 사랑에 빠지고 그 사랑의 감정은 한여름의 소나기같이 지나간다. 사랑이 지나간 자리는 늘 아프고 쓰리고 허탈하다. 그 속에서도 애틋하고 아련한 부분이 있다면 그 사랑은 아름다웠던 사랑 아닐까.

내게도 떠올리는 것만으로 심장이 뛰던 사람이 있었다. 물론 그 사랑은 지나갔다. 비 오는 날, 바람이 많이 부는 날, 가끔 그 사랑이 떠오를 때가 있다. 내 젊은 한때, 그런 소중한 감정을 가질 수 있었음이 고맙고 감사하다. 사랑에 빠지면 이런 기분이구나, 하는 내 경험을 토대로 연애소설을 쓸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렇지 않았으면 그저 막연하게 짐작이나 상상으로 밖에 표현할 수 없지 않았겠나.

사람들은 사랑이 지나간 자리를 추억으로 가슴 속에 품고 있지만 내 사랑의 지난 자리는 내 소설 속에 남아 있다.



이계숙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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