퀜틴 타란티노가 '저수지의 개들'로 데뷔한 이래 20년 만에 내놓은 작품이 '장고: 분노의 추적자' (Django Unchained)다. 이번엔 서부극이다. 좀더 자세히 언급하자면 스파게티 웨스턴 (한국과 일본에선 마카로니 웨스턴이라 칭함)과 흑인 액션영화 (전문적으로는 블랙스플로이테이션 (blaxploitation)이라 함)의 결합이라 할 수 있다. 타란티노는 장르의 탐험가이다. 2009년엔 의외의 전쟁물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을 내놓더니, 이번엔 느닷없이 서부극을 선보였다.
고교 중퇴 후 비디오 가게 점원으로 일하면서 섭렵한 수많은 영화 속에서 자기를 매료시킨 작품들을 확대 재생산하는 게 그의 장기이다. 그의 작품들은 새로운데, 하나하나 뜯어보면 모두가 과거에 있던 것들을 다시 조합시켜 (이종 교배시켜) 마치 새로운 종을 탄생시킨 것처럼 보이게 한다. 모방이란 의미보다는 재생산이나 재창조란 용어가 더 잘 어울린다. 20세기에 이단아, 혹은 기린아로 등장한 그가 21세기에 거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남북전쟁이 발발하기 2년 전, 다른 주인에게 팔려 가던 흑인 노예 장고 (제이미 폭스 분)는 독일 치과의사 출신인 현상금 사냥꾼 (bounty hunter) 닥터 킹 슐츠 (크리스토프 왈츠 분)에 의해 자유의 몸이 된다. 이후 장고는 동업자 자격으로 현상범 추적에 합류한다. 장고에겐 어디론가 다른 주인에게 팔려간 아내 브룸힐다 (케리 워싱턴 분)가 있다. 장고의 아내 찾기를 인종차별 혐오자인 닥터 슐츠가 적극 돕기로 한다. 수소문 끝에 악덕 목화농장주 캘빈 캔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의 농장에 브룸힐다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치밀한 작전 하에 브룸힐다를 사들이기로 합의가 이루어질 즈음, 캘빈보다 더 사악한 그의 집사 스티븐 (새뮤얼 L. 잭슨 분)에 의해 산통이 깨진다.
타란티노의 영화는 겉과 속이 많이 다르다. 이 영화는 165분이란 긴 시간이 지루할 틈 없이 속전속결로 진행된다. 스토리도 단선적이라 스토리를 좇느라 머리에 쥐나는 일이 없다. 그러나 들여다 볼수록 숨어 있는 풍자, 고의적 왜곡, 비유, 고발, 모방, 과장, 그리고 유머가 무수하다. 너무 심해 설마 저런 의도는 아니겠지 하며 걱정스러워 할 때도 있다. 그런 숨어 있는 코드 찾기가 타란티노 영화즐기기의 하나다.
인종차별을 혐오하는 닥터 킹 슐츠가 독일인이라는 사실, 무시무시한 KKK단원들이 잘못 뚫린 복면의 구멍 때문에 말다툼하는 장면, 1966년 작 오리지널 '장고'의 프랑코 네로가 카메오 출연해 장고 (제이미 폭스)에게 이름이 뭐냐고 묻는 장면, 영화 막판에 제일 멍청하게 등장해 비참하게 죽는 사나이가 바로 타란티노 자신이란 사실 등 별 생각 없이 지나가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감독의 의도를 눈치 채게 되면 깨소금 같은 재미를 더 느낄 요소가 지천에 깔려 있다.
이 영화에서도 전체적으로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돼버린 수다와 고전 스타일 답습 및 피의 향연이 멈추질 않는다. 그래서 외양은 영락없는 싸구려 B급 영화다. 하지만 관객에게 묘한 쾌감과 해방감, 그리고 과거에 대한 향수까지 선사해 그의 영화에 환호를 보내게 된다.
지난 아카데미상에서 작품상 포함 5개 부문 후보로 올라, 각본상 (퀜틴 타란티노)과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크리스토프 왈츠는 타란티노의 전작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에 이어 이번에도 아카데미상과 골든 글로브상 모두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타란티노를 만나 그의 연기 인생이 확 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