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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승패는 병가지상사 같다

김도수 / 자유기고가·뉴저지

젊은 시절 병과학교 전술학 시간에 가장 많이 듣고 배운 말이 '지피지기 백전불태'라는 말이다.

손자병법 모공편에 나오는 말로 자신과 상대방 상황에 대하여 잘 알고 있으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로울 것이 없다는 뜻이다. 이 말은 전쟁상황뿐 아니라 정보전이 난무한 산업현장에서나 우리의 일상에서조차 많이 인용되고 참고되는 명언이다.

이번 브라질 월드컵에 출전한 한국대표팀의 졸전을 보면서 과연 우리는 우리와 적을 알고 게임에 임했나 싶다.

손자는 이외에도 나를 알고 적을 모르면(知己 不知彼) 승과 패를 주고 받을 것이라고 했고, 적을 모르면서 나조차 모르면(不知彼 不知己)는 매전 필패한다고 적었다.

이번 경기에 이 말을 적용하면 이외로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보다 확실히 강팀이나 노장들이 많아 후반전에 약할 것으로 잘못 알고 임한 러시아와는 승패를 나눠 가진 무승부를 기록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보다 약체로 잘못 알고 1승의 먹잇감으로 삼았던 알제리에 허망하게 무너졌다. 새삼 옛 성현의 가르침에 머리를 숙이게 하는 순간이다.

병과학교 전술학 시간에 절대로 가르치지 않는 말이 있다면 '승패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라는 말이다. 이는 병가에서 지고 이기는 것이 상시 있는 일이라는 뜻이다.

실패했다고 좌절하지 말고 마음을 다잡아 다음을 잘 준비하라는 격려성 말로 사용된다. 그러나 가공할 무기로 한 번의 패배가 국가 흥망으로 직결되는 현대전에서는 절대 허용될 수 없는 만용이자 허세로 불용되고 있다.

운동경기라면 '선수에게 승패는 병가지상사 같은 것'이라고 의역해 힘을 돋우는 말로 사용해도 되지 않을까. 매년 150게임 이상을 소화하는 메이저리그 선수들을 보자.

하루 걸러 승패가 엇갈릴 때도 줄줄이 패할 때도 있다. 심지어 다잡은 게임을 9회말에 등판한 구원투수로 인해 역전패 당하기도 하고 막판에 역전승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물론 이들에게 승패는 돈과 명예가 걸린 중요한 것이지만 일희일비할 여유 없이 최선으로 다음 경기를 준비해야 한다.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3경기를 끝낸 한국선수단은 기대 이하의 초라한 성적표를 들고 귀국했다.

이미 국내외 언론들과 사이버 공간에서 감독과 선수들에 대한 비난이 봇물을 이뤘다. 특히 박주영, 정성룡, 지동원, 윤석영 등을 놓고 감독의 지나친 의리와 이를 배신한 의리가 낳은 합작품의 결과라고 노골적으로 성토하기도 했다.

진정으로 축구를 사랑하고 상처받은 선수와 국민들을 생각한다면 취할 태도가 아니다. 무엇보다 이 상황을 개탄하며 견디기 힘들어 할 사람들이 홍 감독과 선수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조별 예선리그를 통과해 32개국이 출전했다. 모두 어려운 지역예선을 뚫고 올라온 나름의 강팀들이다. 그러나 어찌하랴.

그중 절반인 16개국은 탈락해야 하는 것을…. 4년 전 남아공 우승팀 스페인과 축구 종주국인 영국은 물론 브라질 다음으로 많은 4번의 월드컵을 들어 올린 이탈리아도 포함되어 있다. 승패세계의 냉정함은 명성에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다.

돌이켜 보면 한국 축구는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4강 진입이 영광인 반면 독이 되는 면이 있다. 국민들의 눈높이를 너무 높여 버렸기 때문에 감독이 자신의 축구를 구상하고 선수를 선정·훈련시키기는 것을 기다려줄 국민들이 별로 없다.

기껏 해외파 위주로 조합을 꾸려 세트피스 묘기나 실행해보다 실패한 뒤 불명예스럽게 떠난 감독이 벌써 여럿이다.

이제 우리의 브라질 월드컵은 끝났다. 차분히 숨을 고르면서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돌아보자. 히딩크 감독이 임기 초반 온갖 구설수와 연패행진에 아랑곳하지 않고 선수들의 체력관리에 올인한 것을 교훈삼자.

지금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김을 위한 과정 투자에 인색하지 말고 인내하자. 겸손한 지기를 통해 세상의 다른 팀들이 태극전사들을 자신들의 제물로 여긴다는 것에 익숙해지자.

그 무엇보다도 지금 선수들을 향해 ‘게임 승패는 병가지상사와 같다’고 말해주며 그들의 등을 두드려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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