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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지붕 위의 사람들

New York

2014.08.27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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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리 / 수필가
피붙이를 떠나 산다는 것은 얼마나 큰 슬픔인가. 온몸에 솔솔 한국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번질 때 마른 가슴에 단비가 내렸다. 동생이 회사일로 뉴욕을 방문했다.

일의 속성상 함께 일하는 여러 팀이 같은 호텔에 투숙하며 프로젝트를 일사천리 진행함을 익히 알고 있는 터라 나의 집에 머물 것이라는 기대는 접었다.

맨해튼 첼시의 호텔에 머무르니 빨리 오라는 전화를 받고 단숨에 뛰어나갔다. 첼시의 광장은 젊음으로 활기찼다. 화창한 날씨의 야외 카페에 앉아 즐기는 오후의 느슨함이 경쾌했다. 오랜만에 회포를 푸는 혈육간의 이야기는 언제나 황홀이란 표현을 절감했다.

못다 한 긴 이야기 끝에 잠시 쉬자며 호텔 방문을 열자 사방으로 탁 트인 통유리가 시원하다. 유리벽으로 완벽한데도 마치 떨어질까 벽쪽으로 가까이 가지 못하는 몸의 반응에 실소하다 가까이 벽에 붙어 바라보는 파노라마 전경에 넋을 잃었다.

눈 아래 첼시의 하이라인 공원 길이 보이고 허드슨 강에 유유히 떠있는 유람선이 그림 같다. 순간 "언니 저기 봐." 동생이 가리키는 손끝 따라 눈길을 옮겨보니 빌딩옥상 위에 펼쳐진 형형색색 파라솔 밑에 사람이 깨알 같다.

"저기도 어마 저기도…." 가리키는 손가락 끝의 빌딩 꼭대기마다 사람들이 가득하다. 거리에 사람들이 아닌 지붕 위의 사람들이다. 루프탑 카페나 루프탑 클럽이라는 이야기는 많이 들어보았지만 가 본 적 없는 촌사람인 나는 그만 뻥 뚫린 유리벽을 사방 두리번거리며 "어머. 어머…"를 연발하고 있었다.

세계의 자존심 뉴욕 금싸라기 땅 맨해튼 지붕 위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내게 부의 상징으로 다가왔다.

얼마 전 딸아이가 아르헨티나의 대부호 와이너리를 경영하는 집안의 아들 친구 결혼식에 다녀온 영화 속 같은 사진을 보고도 놀람을 금하지 못했었는데 이렇게 내가 매일 경험하는 이 땅에 또다른 세상이 돌아가고 있다는 낯선 엄연한 현실을 직시함에 머리가 혼란스럽다.

한낮에 눈에 들어온 지붕 위의 사람들은 내게 많은 상념을 불러일으킨다. 사실 우리의 욕심은 하늘로 치솟는 빌딩처럼 꼭대기로 위로 높이 끝없이 올라가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 아닌가. 물질만능주의의 현실에 욕망의 바벨탑을 쌓아올리려고 오늘도 아우성치는 도시의 하루가 거대한 빌딩 숲에 쌓인 나의 온몸을 엄습해온다.

"아무래도 숨 좀 골라야겠다." 커피를 주문하고 동생과 나는 도시의 오후 풍경을 조금 더 훑어보았다. "이 동네에 콘도 하나 사 놓으면 좋겠다" 라고 하다가 "얘! 돈이 어딨니? 건강하고 행복하면 되지." 갈팡질팡하는 욕심과 집착 이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헐떡이며 이어졌다 끊어지는 대화에 우리 스스로 실소한다.

물질만능주의 속에 돈을 벌어야 하는 상대적 빈곤은 어느 정도 지녔으면서도 부족하고 채워지지 않는 목마른 정신적 억압에 짓눌려 숨 쉴 수 없는 콘크리트 속에 우리의 인성조차 매몰된 듯하다.

흙냄새 바람소리 저녁별이 총총 박힌 하늘 땅을 밟고 자연으로 돌아가 인성을 회복하고 소박한 삶의 진정한 행복을 외쳐대지만 한편으로 네모난 브라운스톤의 주인이 되고 싶은 동경을 물리치기 힘들다.

"히말라야를 황금으로 둔갑시키고 그것을 다시 배로 늘린다 해도 인간의 욕심은 다 채울 수 없다. 행복해지고 싶거든 물질적 소유를 늘리려고 하지 말고 욕망을 줄여야 한다"는 부처의 말이 떠오른다.

결국 '자족' 만이 더 높이 더 많이 더 더 더 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가져오리라! 오늘의 화두는 '자족'이라며 커피잔을 높게 쳐들며 오랜만에 두 자매가 키득거린다.

언제 석양이 지는지 15층 위에서 창밖으로 보이는 허드슨 강의 노을은 눈물겹게 황홀하다. 럭셔리! 역시 좋다! 순간 방금 전 외치던 자족은 어디로 사라졌나. 욕심의 경계 앞에 어리석은 모순으로 칭칭 감긴 여인의 모습이 빌딩 위에 투영되는 휘청거리는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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