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난 주 토요일, 산호제에서 열린 한 모임에 갔었다. 취재왔다가 나를 본 P기자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P기자가 물었다. 이런 행사에 생전 안 오던 사람이 웬일이래? 인기가 떨어지긴 떨어졌나보네. 내가 짐짓 슬픈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래. 이제는 밥 사준다는 사람도 없고해서 혹시 공짜밥이라도 먹을 수 있나 싶어 와봤지.
사실 밥 먹을 데는 많다. 천석군이 망해도 삼년은 간다는 말이 맞다. 이번 달만 해도 벌써 몇번은 먹었다. W씨집에서 냉면과 삽결살을 먹었고 N씨가 아침을 샀고 K씨 집에서 킹크랩이랑 갈비로 푸짐하게 먹었다. 또한 J씨가 저녁을 샀고 또 다른 J씨가 휴일 낮에 점심을 샀다. 또한 내가 이 달이 가기 전에 저녁을 살 것이고 식당업하는 K씨도 밥 사겠다고 날짜를 잡아달라고 했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두번은 밥 먹을 일이 있는 것이다.
우리 아버지는 동네 우두머리였다. 동네에서 가장 높은 지식층에 속했고 사람들을 주동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뛰어난 언변에다 추진력 또한 아버지를 따를 자가 없어서 동네에서 일어나는 경조사는 도맡아서 처리했다. 그래서 늘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객지에 나갔던 친구도 고향에 오면 반드시 아버지를 찾았고 거지들조차도 아버지를 ‘형님’이라 부르며 따랐다. 오갈데 없이 딱한 사람들을 몇달이고 우리집에 묵게 한 적도 많다.
그런 아버지를 두고 사람들이 말했다. 인정이 넘치는 사람이라고. 나도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지금, 나이가 든 지금 나는 깨닫는다. 아버지가 참 외로운 사람이었다는 것을. 끊임없이 사람들과 교류한 것은 외로움을 덜어보려는 한 방편이었다는 것을.
왜냐면 내가 지금 그러하니까. 나는 외롭다. 항상 빈 운동장에 팽겨쳐진 주인 잃은 고무신같은 기분이다. 그래서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사람을 불러 모은다. C씨가 말했다. 이계숙이 옆에 있으면 굶을 일은 절대 없다고. 계속 먹을 일을 만드니까 하는 말이다.
휴일, 날 새기가 무섭게 남편이 산으로 내뺀다니까 주위에서 말했다. 마누라가 얼마나 보기 싫으면 그럴까. 좀 잘 해서 옆에 붙들어 앉혀라. 남편과 같이 있으면 좀 더 외로울까? 아니다. 내 외로움은 남편이 옆에 있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사람들 속에 있어도 외로우니까. 하하호호 하는 순간 잠깐 잊을 수는 있지만 외로움의 뿌리는 그냥 깊이 박혀 있는 것이다.
내 외로움의 본질은 무엇일까. 다른 사람들도 나 같을까. 주위에 물어봤더니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모두들 외로웠다. 배우자와 자식이 있고 형제와 친척이 가까이 살고 친하게 지내는 이웃이 있고 한국의 친구들과 교류하고 있는데도 외롭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이 외로움을 해결해 보려고 나처럼 발광하지 않는다. 그냥 심드렁하게 받아 들인다. 인생이라는 게 다 그렇지 뭐, 하면서.
정말 인생이라는 게 그럴까. 외롭게 태어나서 외롭게 살다가 외롭게 죽는 게 인생이라는 것일까. 오늘도 나를 휩싸는 이 외로움. 지독한, 정말로 지독한 외로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