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린 시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난했다. 생활하는 모습도 요즘과 몹시 달랐다. 지금 그 때 이야기를 하면 젊은 사람들은 코미디인 줄 알고 웃을지도, 혹은 미개한 지난 세대를 불쌍히 여길지도 모르겠다. 그 시절에는 대문 앞에서, 대문이 열렸으면 마당으로 들어와서 깡통 하나를 팔에 걸고 특유의 가락으로 “밥 좀 주세요.~네에~” 하는 거지들이 많았다. 쉰 밥 밖에는 없다고 하면 괜찮다며 그거라도 많이만 달라고 했다.
방문객(?)들 가운데 가장 무서운 건 상이군인 아저씨들이었다. 전쟁에서 신체의 일부를 잃고 돌아온 그들에게 일자리도 없었고 나라도 가난하다 보니까 변변한 보상도, 기본적인 생활도 돌보지 못했던 것 같다. 조악한 물건을 가지고 다니며 비싸게 사라고 하거나 아니면 무작정 돈을 달라고 했는데, 응하지 않으면 소리를 지르며 수도 가의 대야 따위를 목발로 걷어차는 등, 상상도 할 수 없이 무서운 일이 벌어졌다. 그렇게 원치 않는 불청객들이 많이 드나드는데 왜 대문은 늘 열어 놓고 살았는지 알 수가 없다.
초등학교 1, 2학년 때쯤이었던 것 같다. 열어 놓은 대문으로 어떤 늙수그레한 아저씨가 들어왔다. 이 아저씨는 그냥 거지가 아니었다. 뭔가 그럴싸한 거짓말을 하며 일종의 사기를 치려고 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거절을 해도 가지 않고 자꾸 권하며 툇마루에 눌러 앉아 있었다. 엄마는 상대를 하지 않으려 분주한 척 부엌과 마당을 오가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아저씨는 툇마루에 걸터앉아서 고개를 좀 수그리고 있었는데 성긴 머리카락 사이로 새끼 손톱만한 검은 점이 머릿속에 많이 있었다. 머릿속에 큰 점이 그렇게 많다니, 너무나 신기해서 대문에 매달려 노는 척하며 계속 아저씨의 머릿속을 흘끔거리며 보고 있었다.
일하는 언니가 가까이 살던 외할머니를 모셔왔고 외할머니가 뭐라고 소리치자 그 아저씨는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 그 아저씨가 나가자 외할머니는 “그렇게 돈 많이 번다며 왜 머리에 소 똥은 얹고 다녀” 했다. 머리에 점이 몹시 궁금했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 점인 줄 알았더니 그게 소 똥이었구나. 할머니, 그런데 그 아저씨는 왜 머리에 소 똥을 바르고 다니는 거예요?” 내가 어리둥절할 정도로 외할머니와 엄마는 깔깔대고 웃었다. “그래. 소 똥 바르고 다니는 아저씨도 있구나.” 왜 소 똥을 바르고 다니는지 한참 후까지 의문이었던 ‘소 똥’ 일화다.
지저분한 이야기지만 그때는 드물지 않은 일이었다. 목욕탕 안에서 주인이 잠자리채를 들고 다니며 탕 안의 뭔가를 걷어 내고는 했었는데 요즘 아이들은 하루라도 샤워 안 하면 큰일 나는 줄 아니 격세지감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가난하고 열악했던 그 시절을 요즘의 아이들은 미개 혹은 야만의 시대로 생각하겠지만, 그 시절은 지금과는 다른 순수함이 있었다. 거지는 쉰 밥에도 감사했고 도둑은 들어왔다가 주인을 보면 기겁을 해서 도망쳤다.
자식들에게 그 시절을 이야기하면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공감대는커녕 상상도 안 되는 이야기니 당연한 반응이다. 우리는 소독차 뒤꽁무니를 따라다니고 겨울이면 썰매를 만들어서 언 강을 지치는 느리고 가난한 시대를 살았다. 불편하고 열악했지만 잘살게 된 요즘보다 순수한 아름다움이 있었던 것 같다. 연을 날리려면 연을 만들어야 했고, 제기차기를 하려면 제기를 만들어서 뛰놀던 건강함이 있었다. 고급 장난감과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자란 젊은 세대들에 이어 요즘은 어린 아기들도 단풍잎 같은 손으로 스마트 폰을 만지며 크는, 풍요롭지만 이상한(?) 세상이다.
이 아이들의 추억이 컴퓨터 게임과 스마트 폰이 된다면 너무 삭막하지 않을까. 세상의 변화는 당연한 것인데 괜한 노파심일지 모르지만 어릴 때만이라도 좀 더 감성적으로 키울 수 있으면 좋겠다. 좀 성장한 이후에 컴퓨터를 접하게 되더라도 말이다. 이제 로봇까지 나온다는 미래가 정말 좋은 걸까. 더 좋아진 세상이지만 진정 좋아진 것인지 종종 의문을 갖게 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야만의 그 시절이 가끔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