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숲에 서 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겨울나무들이 길고 곧게 하늘을 향해 뻗어있다. 바람이 불자 가지들이 흔들린다. 옷을 벗어 던진 나무들이 춤을 추며 너울거린다. 바람이 더 세게 불자 가지뿐 아니라 몸통을 흔든다. 저것은 군무다. 약속 없이는 저토록 한 방향을 향해 나부끼고 잦아들 수는 없다. 뿌리에 말뚝 박혀 있으면서도 자유로운 겨울나무들. 바람에 쓰러지기는커녕 유쾌하리만치 펄럭인다. 자유로움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는 것임이 틀림없다.
겨울 숲을 해부해 본다. 가재도구라고는 나무와 바람과 햇살뿐이다. 가난하기 그지없다. 푸르던 잎사귀는 다 빼앗기고 살찌울 그릇 하나, 몸 기댈 가구 하나 아니, 옷 한 벌 없는 맨살들. 무엇이 가난한 것들로 하여금 질긴 생명력을 갖게 했을까? 나무에 귀를 기울여 본다. 손이 보인다. 그렇다. 나무들은 모두 손을 가지고 있었다. 눈보라에 잘리면 잘린 손으로 혹 이웃 나무가 쓰러질세라 서로서로 부축하며 하늘을 우러르고 있는 것을 보아라.
겨울나무가 눈보라에도 쓰러지지 않는 것이 어찌 뿌리 때문만일까? 나무들이 손을 잡고 있다. 손과 손이 가지와 가지가 스크럼을 짜고 추위를 견디는 인륜의 내공이 따스하다. 겨울 숲은 허공을 딛고 일어설 푸른 이파리 하나 없지만, 손과 손을 맞잡고 봄을 부르고 있다. 모두 맨살이다. 하나같이 맨발이다. 손을 호주머니에 감추거나 관조하는 자는 없다. 바닥이 드러난 앙상한 몸으로도 봄을 기다리며 손을 놓지 않는다.
어떤 면으로 겨울나무는 장애인이다. 서 있는 곳이 싫어도 자리를 떠날 수 없다. 발이 없어 이주할 수도 없다. 입이 없어 말할 수조차 없다. 그 속에서도 숲은 푸른 잎들을 틔워낸다. 장애를 이기고 생을 살아내는 모습이 누구보다 푸르고 맑다. 나무가 장애인이라면 숲은 장애인 학교다. 겨울 숲은 더욱 그렇다. 쓰러진 나무, 꺾인 나무, 반쯤 뽑힌 나무들을 그대로 품은 채 쓰러진 나무로 가르치고, 꺾인 나무로 말하고, 반쯤 뽑힌 나무로 세상을 향해 편지를 쓴다. 나무 꼭대기에 군데군데 남아있는 둥지를 보아라. 숲이 제 몸을 내놓아 생명을 품어 길렀다. 자신의 몸을 새들의 터전으로 내놓고 그 흉터로 짙은 신록을 토해냈으니 어찌 겨울 숲을 인생학교라 말하지 않을 수 있을까.
겨울 숲에서는 나무가 나무를 알아본다. 봄이 오는 것은 맞잡은 손의 체온으로 감지한다. 나무들은 눈을 녹여 사이 좋게 물을 나누어 마신다. 강자들은 겸손히 고개를 숙인다. 약자들은 최소한으로 최선을 이루며 겨울을 맘껏 수놓는다.
겨울 숲 사이로 햇살이 지나간다. 나무의 부르튼 살이 빛난다. 딱딱한 껍질이 부드러운 생명을 단단히 옹호하고 있는 겨울 숲, 그 공동체에서는 저 혼자 배를 불린 자가 없다. 눈도 바람도 나누어 마시고 가난함도 나누어 삼킨다. 춤도 손잡고 춘다. 겨울 숲에서 헐벗은 자는 나무가 아니라 사람이다. 겨울 숲은 겨울이 길어도 봄을 묻지 않는다. 그 어떤 질문도 없다. 부록도 없다. 묵묵히 몸으로 살아낼 뿐, 내장까지 훤히 내보이면서도 의연하다. 겨울 숲 사이로 길이 보인다. 누가 텅 빈 겨울 숲이라고 말했던가? 겨울 숲은 충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