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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로열 패밀리

Los Angeles

2021.03.1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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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은 영국 왕실에 관심이 많습니다. 미국 정치인보다 영국 로열 패밀리를 더 좋아합니다.”

6년 전 찰스 왕세자 부부가 백악관을 방문했을 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한 말이다. 미국 국민의 영국 왕실 사랑을 대통령까지 인정한 것이다. 찰스 왕세자는 정중하게 그렇지 않다고 했지만 상당수 미국 정치인이 영국 왕실 일가보다 인기가 없다는 것은 설문조사가 입증한다.

CBS방송이 해리 왕자 부부 인터뷰 라이선스 구매 비용으로 하포 프로덕션에 최대 900만 달러를 지불했다. 방영 전까지만 해도 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은 화제 인물이 아니었다. 그런 인터뷰에 거액을 지불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미국에서 1700만 명이 인터뷰를 시청했다. 시청률 조사기관 닐슨은 왕실 인터뷰가 올해 프라임타임 특집 중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주요 스포츠 경기 생중계를 넘는 시청자 수다. 열광적인 반응이다.

미국의 로열 패밀리에 대한 관심은 지대하다. 영국 왕실 관련 기고로 유명한 톰 사익스는 “일반 유명 인사들과 영국 로열 패밀리는 차원이 다르다”며 “그들의 인기 뒤에는 수천 년의 역사가 있다”고 분석한다. 족보(?) 없는 유명인들과 비교할 수 없다는 뜻이다.

영국 왕실을 향한 애정은 역사와도 맥이 닿아 있다. 보스턴 대학 아리앤 체노크 역사학 교수는 ‘뿌리’에서 이유를 찾는다. 체노크 교수는 “미국인들은 같은 왕실이지만 일본 왕실 등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며 “미국의 기원이 영국에서 시작됐다는 점이 로열 패밀리에 열광하는 이유”라고 설명한다.

LA에서 활동하는 영국 엔터테인먼트 기자 샌드로 모네티는 심지어 “미국인이 영국인보다 로열 패밀리를 더 사랑한다”라고 말한다. 영국을 떠나 미국에 정착하면서 왕정 실시를 원천적으로 금했던 미국의 아이러니한 현상이다.

세계 43개국에 왕실이 존재한다. 이른바 로열 패밀리다. 그중에서 권위와 명성에서 영국 왕실에 버금가는 것은 없다. 왕실 자산이 900억 달러에 이르고 엘리자베스 2세 여왕 개인 재산도 5억 달러를 넘는다. 로열 패밀리의 대표격이다.

세계의 모든 왕실이 부와 명성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같은 유럽이지만 노르웨이 왕실은 변변한 궁전도 없고 권한도 제한돼 있다. 영국 왕실은 그 자체로 무한의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1000년 기업’이다. 권위와 전통에서 현존 최고다. 영국 왕실이 소재인 ‘크라운(The Crown)’ 등의 미니시리즈에 미국은 물론 전세계 시청자들이 열광한다.

해리 왕자 부부의 인터뷰는 왕실 내부의 치부를 드러냈다. 미국민에게 가장 민감한 사안인 인종차별 문제가 제기됐다. 메건 마클은 자신이 흑인 혼혈이라 왕실에서 인정을 못 받고 따돌림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임신 중에는 태어날 아이 피부가 검겠다는 수군거림에 자살 충동까지 느꼈다고 한다. 영국 왕실에 대한 미국민의 환상을 깨는 폭로였다.

인터뷰를 계기로 영국에서는 왕실을 없애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막대한 세금을 들여 존속할 이유가 없다는 비난이다. 하지만 항상 그랬듯이 거기까지다. 대부분의 여론은 우호적으로 돌아섰다. 영국 왕실의 상징적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정신적 지주로서 여왕이 갖는 존재감도 무시할 수 없다.

미국도 인종차별에 목소리를 높이지만 영국 왕실에 대한 비난은 자제하는 분위기다. 이번 인터뷰로 왕실의 민낯이 드러나기는 했지만 미국민의 애정은 계속될 것이다. 왕실 문화에 대한 동경과 군주제 역사의 화려한 전통은 세계 최강 국가라는 미국의 명성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것 같다.


김완신 논설실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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