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이런 얘기 저런 얘기]배고픈 북한, 월드컵 대표는 비즈니스 클래스 탄다
체재 유지 차원서 총력 지원, 유럽·남미 돌며 값비싼 전훈
2년 넘게 합숙, 조직력 세계 최강…김정은 후계구도에 이용 예상
북한은 지난해 10월 프랑스 낭트 인근 소도시에서 해외 전지훈련을 시작했다. 북한 축구대표팀이 유럽 땅을 밟은 것은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이후 처음이었다. AFP는 훈련 장면뿐만 아니라 식사 모습까지 사진에 담아냈다.
이달 초 베네수엘라에서는 상대팀 유니폼을 빌려 입고 평가전을 치른 게 화제가 됐다. 비행기를 갈아타는 과정에서 짐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22일에는 '북한이 다음 달 평양에서 열리는 나이지리아와 평가전에서 상대팀의 항공료 부담을 거절하는 생떼를 쓰고 있다'는 뉴스가 나왔다.
◆해외 훈련에 돈을 아끼지 않는 북한= 북한은 지난해 가을부터 프랑스.남아공.터키.카타르.베네수엘라.멕시코 등 세계 곳곳을 누비며 훈련과 평가전을 치르고 있다. 항공기로 이동할 때는 매번 비즈니스 클래스를 이용한다. 월드컵이 코앞인 5월에는 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한 스위스 휴양도시 바트 라가츠에서 마지막 담금질을 할 예정이다. 한국 대표팀이 올 초 남아공~스페인으로 이어지는 20일간의 전지훈련에 7억원가량의 비용을 썼다는 점을 감안하면 북한이 축구대표팀에 얼마나 큰돈을 쓰는지 짐작할 수 있다. 경제난에 허덕이는 북한은 이 돈을 어떻게 조달했을까.
국제축구연맹(FIFA)은 월드컵 본선 진출국에 100만 달러의 준비금을 준다. 또 아시아축구연맹(AFC)은 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 출전 팀당 3억원 정도의 분배금을 준다.
또한 북한은 세계적인 스포츠 용품업체와 유니폼 스폰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노출 효과가 매우 클 거라고 자신하는 북한은 상당한 액수를 받아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모두 더해도 북한이 진행하고 있는 해외 전지훈련 비용을 충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국정원 관계자는 "북한은 외화가 부족하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특별 지시한 분야에는 '선택과 집중' 차원에서 아낌없이 지원한다"고 말했다.
◆월드컵도 체제 유지 수단= 북한은 경제적으로 몹시 궁핍하다. 최근엔 화폐 개혁이 실패하며 내치도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보도다. 김정일의 셋째 아들 김정은에게 정권을 이양하려는 움직임에도 가속도가 붙고 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후계 체제를 조기에 정착시키는 데 월드컵을 활용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북한은 본선 진출이 확정됐을 때도 '열린 북한 통신'이라는 소식지를 통해 '김정은의 체육 부문에 대한 세심한 지도와 배려에 따라 이루어진 큰 성과'라고 선전했다.
월드컵 기간에 김정은이 비밀리에 남아공으로 날아가 북한이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둘 경우 깜짝 등장할 거라는 소문도 나돈다. 통일부 관계자는 "경호 문제 등을 고려하면 실현 가능성이 낮은 시나리오지만 그만큼 북한이 이번 월드컵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어게인 1966?= 북한 대표팀은 2008년 초부터 2년 넘게 합숙훈련을 하고 있다. 조직력은 월드컵에 출전한 32개국 중 최강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허정무 대표팀 감독은 "북한은 선수 구성이 달라지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손발을 맞춘 덕분인지 아시아 예선이 시작됐던 2008년에 비해 훨씬 강해졌다"고 평가했다. 여기에 J리거 정대세(가와사키).안영학(오미야) 유럽파 홍영조(러시아 로스토프).김국진(스위스 FC빌) 등이 가세해 시너지 효과를 내면 66년 잉글랜드에서 거뒀던 8강 기적을 재현할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심스러운 예상이다.
최정예 30명 인민군에 편입, 결혼도 막고 3년 합숙훈련
북한, 1966년 월드컵 8강 어떻게 갔나
'북한은 1963년에 모란봉팀.기관차팀 등 30개 클럽을 통틀어 가장 우수한 30명을 선발 인민군에 편입시키고 책임코치 명례연의 지도 아래 맹훈련에 들어갔다. 선수들을 평양의 모란봉 밑에 새로 지은 숙소에 수용해 매일 아침 6시부터 줄기찬 훈련을 계속했다. 밤 10시 이후에는 외출이 금지됐고 전원 미혼인 이들은 대회가 열리는 66년 7월까지 결혼을 금지당했다'.
전 동아일보 기자 국흥주씨가 77년 출간한 『월드컵 축구-몬테비데오에서 뮌헨까지』(영흥출판사)에 실린 북한 축구 관련 내용이다. 이 책에는 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돌풍을 일으킨 북한 축구대표팀의 훈련 과정 및 포르투갈과의 8강전까지 경기 내용이 담겨 있다. 당시 내.외신 보도를 바탕으로 쓴 글이라 신빙성이 높다.
북한은 63년부터 3년간 약 30회 국제 경기를 했다. 훈련 초기인 63년 당시 아시아 최강이던 버마에 0-3으로 진 것을 빼고는 무패였다. 북한 선수단 65명은 66년 6월 30일 잉글랜드 월드컵 본선 참가국 중 맨 먼저 런던에 도착했다. 북한은 선수들의 외출을 일절 금지했고 공개 훈련도 하지 않았다.
북한은 소련과의 예선 1차전에서 상대의 거친 파울 작전에 말려 0-3으로 완패했고 칠레전에서는 후반 종료 3분 전 박승진의 20m 중거리 슛으로 1-1로 비겼다. 이탈리아와의 예선 최종전에서는 라이트윙 한봉진을 앞세운 빠른 공격으로 주도권을 쥐었고 박두익의 결승골로 1-0 승리해 8강에 올랐다 (당시는 예선만 통과하면 바로 8강이었다).
북한은 포르투갈과의 8강전에서 박승진이 월드컵 최단시간 골(전반 23초)을 넣는 등 전반 27분까지 3-0으로 앞서갔다. 그러나 에우제비우에게 연속 4골을 허용해 역전당했고 결국 3-5로 졌다. 리버풀의 한 신문은 '북한의 3-0 리드는 온 세상이 뒤집히는 것 같은 충격이었고 그것이 또다시 뒤바뀐 것은 나비가 다시 번데기가 된 것처럼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고 썼다.
북한은 놀랄 만한 조직력과 스피드 정신력으로 무장했지만 경기 운영은 단조로웠고 선수단 관리는 순진했다. 에우제비우는 자서전에서 "그들은 체력 관리에 아무런 주의도 기울이지 않았다. 그들은 무절제하게 입에 당기는 대로 매일 먹고 마시고 있었다"고 술회했다.
실제로 북한은 예선이 끝난 뒤 '잘 먹어야 잘 뛴다'는 생각에 닷새간 호텔에 틀어박혀 엄청나게 먹었다. 몸은 무거워졌고 스태미나는 급격히 떨어졌다. 북한이 포르투갈전 후반에 주력을 잃고 무너진 이유가 여기 있었다.
정영재.이해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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