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른말]‘묻히다’와 ‘무치다’
우리가 예사로 쓰는 말 중에서 깊이 생각해 보면 왜 그렇게 쓰이는지 의문이 가는 부분들이 있다.‘한얼이가 찰흙을 손에 묻히고 있다.’,‘어머니께서 팥고물을 묻힌 떡을 만들고 계신다.’,‘물감을 손에 묻히지 않도록 해라.’
위의 예문에서 사용한 ‘묻히고’,‘묻힌’,‘묻히지’의 기본형은 ‘묻히다’이다. 이는 ‘물, 가루 따위를 다른 것에 들러 붙게 하다.’ 또는 ‘누가 어디에 무엇을 묻게 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흔히 일상언어에서 사용되는 낱말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경우를 생각해 보면 조금은 달라진다.
‘순이가 양념을 콩나물에 묻힌다.’,‘큰어머니께서 갖가지 양념을 데친 시금치에 묻히다.’
여기에서도 ‘묻히다’의 의미는 먼젓번의 그것과 근본적으로는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두 가지 점에서 차이가 있다.
첫째, 콩나물이나 시금치 등, 나물에 양념을 묻게하는 ‘묻히다’는 그 목적이 맛을 내는 데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여기서 ‘양념을 묻게 함’의 의미를 얼른 깨닫지 못한다.
둘째, 보편적으로 그 문장 구조가 바뀌어 ‘순이가 콩나물을 무친다.’나 ‘큰어머니께서 시금치를 무치다.’ 처럼 쓰는 것이 예사라는 것이다.
‘순이가 양념을 콩나물에 묻힌다.’,‘큰어머니께서 갖가지 양념을 데친 시금치에 묻히다.’라는 말들은 요즘은 잘 쓰지 않는 말들이다.
다시 말하면 ‘콩나물이나 데친 시금치에 양념을 묻히는’ 것이 아니라 아예 ‘콩나물이나 데친 시금치를 무치는’ 것으로 구조가 바뀌어 쓰인다는 것이다.
요컨대, ‘나물을 무치다’라고 말할 때의 ‘무치다’는 그 뿌리를 따져 올라가면 결국 ‘묻히다’에 닿는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과의 혈연관계가 매우 멀어져 버렸다.
따라서 ‘나물을 무치다’라고 할 때의 ‘무치다’는 굳이 ‘묻히다’로 표기하지 않고 소리나는 대로 ‘무치다’로 표기한다.
그러므로 ‘나물을 갖은 양념을 섞어 버무리다’라는 뜻의 ‘무치다’를 ‘묻히다’로 표기하는 것은 잘못된 표기이다. ‘무치다’로 사용해야 바른말이다.
요약하여 보면 ‘묻히다’는 ‘무엇인가를 어디에 들러 붙게 하는 것’이며, ‘무치다’는 ‘(어떤 재료에) 양념을 섞어 버무리는 것’이다.
가령, ‘고춧가루를 옷에 묻히지 말아라.’할 때는 ‘묻히다’를 쓰고, ‘밥상에 오를 싱싱한 산나물을 무친다.’라고 할 때에는 ‘무치다’를 사용해야 한다.
예사로 쓰는 말이지만 한번쯤 다시 생각해 보면 그 연관성이 퍽 재미있다.
장태숙 <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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