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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오바마는 '니그로' 인가

Los Angeles

2010.04.2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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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종욱/한동대 교수
미국에는 '한 방울 법칙(one-drop rule)'이라는 말이 있다. 1863년 링컨 대통령의 노예해방 선언에 의해 노예들이 해방됐으나 남부지역에서는 여전히 흑백분리 정책을 적용했었다. 이때 생긴 용어가 '한 방울 법칙'이다. 즉 흑인은 부모 중 어느 한편이 흑인이면 이 법칙에 의해 흑인으로 취급 받는 것이다.

남북전쟁전까지 백인들은 흑인을 인종적으로 경멸하는 뜻이 담긴 '니거(nigger)'라고 불렀다. 이 용어는 노예해방후부터 지금까지도 백인사회에서 가끔 튀어나와 물의를 일으키곤 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니거'의 어원은 '색깔이 검은' 인종을 의미하는 스페인어의 'niger'에서 유래한다. 그러던 것이 세월이 흐르면서 'nigger'에서 'negro'로 불려지기 시작했다.

원래 니그로라는 용어는 인류의 인종을 구별할 때 백인(Caucasoid) 황인(Mongoloid) 흑인(Negroid) 등 3대 인종 가운데 흑인을 의미하는 용어다. 그러나 니그로라는 말이 사회적으로 사용될 때는 흑인을 멸시하는 의미를 함축하게 된다.

후에 니그로는 블랙이라는 용어로 바뀌어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 용어는 백인이라는 의미의 화이트와 병행해서 자주 쓰이고 있기 때문에 니거나 니그로에 비하면 멸시의 도가 훨씬 낮다.

그러다가 근래에 와서 미국의 인종이나 종족을 원천지를 규명해 부르기 시작했다. 즉 '아프리카 미국인(African-American)' 또는 '한국계 미국인(Korean-American)' 등이 바로 그것이다.

미국에서 백인들이 소수민족을 멸시해서 부르는 용어는 흑인의 경우에만 그치지 않는다. 일본사람을 잽(japs)이라고 중국사람 또는 동양사람을 친크(chink) 유대인을 주(Jew)라고 부르기도 한다.

미국에 유명한 일본계 상원의원이 있다. 하와이주 출신 이노우에(86) 상원의원이다. 1963년부터 계속 상원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노우에 의원은 2차 대전에 출전 유럽전선에서 오른 팔을 잃었으며 육군대위로 퇴역하면서 일본계 미군으로서는 최고의 무공훈장을 받았다.

한번은 그가 이발소에 들렸다. 그런데 이발사가 이발을 거절한 것이다. 이유를 물으니 이발사의 대답은 이러했다. "나는 미국을 쳐 들어 온 잽의 머리는 깎지 않습니다." "나는 잽이 아니라 아메리칸이요. 국가를 위해 2차 대전에 나가 팔을 하나 잃고 미군 대위로 제대한 아메리칸이란 말이요."

이노우에 의원은 이발사에게 설명했지만 말이 통하지 않았다고 회고록에서 전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금년에 실시하는 센서스 인구조사 설문에 답을 했다고 얼마 전에 백악관이 발표했다. 그런데 관심은 그가 답한 것에 모아지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답했느냐에 모아지고 있다.

이번 센서스에는 9번째 항목에 자신의 인종을 표시하는 항목이 있다. 그 중에 니그로도 포함돼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혼혈에 속하는 데 니그로를 택했다.

왜 그는 니그로를 택했을까? '한 방울 법칙'을 따라야 했기 때문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바마는 흑인의 자존심을 미국에 널리 알리는 최초의 흑인 대통령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미국사회가 많이 변했다. 니그로라는 용어가 백인 사이에서 사용되어지는 것을 그렇게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흑인들이 그만큼 떳떳해진 것이다. 그래서 이번 센서스에 니그로라는 인종의 표시가 들어갔어도 조금도 꺼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용어를 원래의 뜻대로 인종을 의미하는 용어로만 받아드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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