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연간 특허 180여건 홈페이지 광고로 고민하던 구글 모두 트리즈 통해 걸러진 것 역발상으로 '광고의 모순' 해결 한국 전문가 러시아 이어 2위 세계 최대 검색업체 밑거름
#10여년 전 삼성전자는 양문형 냉장고를 처음 내놓고 고민에 빠졌다. 냉장고와 홈바를 연결하는 스테인리스 재질의 연결장치(쇠고리) 때문이다. 가격도 비싼 데다 경쟁사의 특허를 침해할 소지가 있었다. 오래 고민했지만 묘안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창의성 전문가에게 해결 방안을 맡겼다. 몇 달 후 해법이 나왔다. 의외로 간단했다. 발상을 완전히 바꾼 것이다. 연결장치를 아예 없앴다. 대신 냉장고 속으로 홈바 문을 길게 늘였다. 홈바 문을 열면 길게 늘어난 부위가 냉장고 안의 선반에 닿도록 한 것이다〈그래픽 참조>. 삼성은 이 방법(안전홈바)으로 대당 수천원의 특허료를 절감할 수 있었다.
#미국의 P&G는 치아미백 시장에서 한때 고전했다. 당시 치아미백 제품은 치아용 틀에 미백제를 바르고 잘 때 8시간 동안 끼고 있어야 했다. 이렇게 몇 번을 해야 이가 비로소 하얘졌다. 미백제의 농도를 너무 짙게 하면 잇몸이 상할 수 있었다. 꼼짝없이 8시간 동안 미백제를 끼고 있어야 하는 고객의 불만이 쏟아졌다. 시장 점유율은 하루가 다르게 떨어졌다.
P&G는 제품을 조금 개선하는 정도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전문 컨설팅업체인 GEN3파트너스에 의뢰했다. GEN3파트너스는 치아에 간편하게 붙일 수 있는 투명 필름 형태의 미백제를 제안했다. 금연패치에서 착안한 것이다. P&G는 4개월의 연구 끝에 제품(화이트 스트립)을 2000년에 내놨고 빅히트를 기록했다. 최근 누적 매출이 10억 달러를 넘어섰다.
두 사례엔 공통점이 있다. 복잡한 특허 문제를 한 칼에 해결한 강력한 혁신 기법 바로 트리즈(TRIZ)다. 트리즈는 창의적인 문제 해결 방법론이다. 트리즈 적용사례는 초고층 아파트의 엘리베이터 분리 운영 샴페인 보틀링(병에 넣는 공정)을 응용한 인텔의 칩 제조 삼성전자의 CD/DVD드라이브의 핵심 부품인 광픽업의 개선 등 다양하다.
트리즈의 한국 상륙은 10여년 전. 알음알음 입소문을 타면서 최근 대기업을 중심으로 트리즈 바람이 일고 있다. 삼성.현대차.포스코 등은 벌써 전 사업장에 트리즈를 적용하거나 추진 중이다. 단순히 트리즈를 연구하는 단계가 아니라 기업 혁신을 위한 방법론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몇몇 대학에서는 정식 강좌가 개설되기도 했다.
포스코는 지난 2월 1일부터 포항 인재개발원에 전 직원을 대상으로 '트리즈대학'을 개설했다. 포스코는 전 직원이 1만6000여명이며 계열사를 포함하면 3만여명에 달한다. 직원 1인당 40~120시간 과정의 트리즈 교육을 받고 있다. 정준양 포스코 회장의 트리즈 사랑은 각별하다. 지난해 10월과 12월 포스코에서 열린 트리즈 강연에 강사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강사 몰래 강연에 참석할 정도다. 포스코 혁신기획그룹 이시춘 팀장은 "트리즈는 사람을 창의적으로 변화시키는 장점이 있다"며 "트리즈는 사물이나 사안을 거꾸로 둘러서 생각하게 한다"고 말했다. 그는 "1년 내에 전 직원을 다 교육할 수는 없고 장기 계획을 짜서 현안이 있는 부서 직원부터 우선적으로 교육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포스코는 2003년부터 트리즈를 도입해 100여 개의 과제를 해결하고 107건의 특허를 취득했다.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는 곳은 삼성이다. 1998년 트리즈를 도입했다. 2006년에는 트리즈 컨퍼런스를 열었다. 같은 해 삼성전자.삼성전기.삼성SDI.삼성코닝.삼성코닝정밀유리.삼성SDS 등 삼성의 전자 관련 6개 계열사와 삼성종합기술원은 '삼성트리즈협회(STA)'를 출범시켰다.
신입 연구개발 인력은 의무적으로 트리즈 과정을 듣도록 했다. 최근에는 전자 계열사 위주로 하던 트리즈 교육을 삼성카드 등 다른 계열사로 확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한 차원 높은 트리즈 교육을 위해 러시아의 트리즈 전문가를 본사에 상주시키고 있다. 삼성전자는 트리즈를 응용한 연구개발(R&D) 활동을 통해 매년 180여건의 특허를 출원하고 있다. 이 때문에 삼성에서 나오는 모든 제품에는 트리즈가 어떤 형태로든 적용돼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은 2008년부터 막대한 돈을 투자해 직원이 해외 컨설팅업체로부터 직접 트리즈 교육을 받도록 하고 있다. 97년 삼성보다 먼저 트리즈를 도입한 LG도 소규모 형태로 트리즈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LG전자는 2005년 생산성연구원 내에 트리즈 전담조직을 설치하고 공정을 혁신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트리즈가 뭐기에 주요 대기업이 속속 도입하는 걸까. 트리즈는 옛 소련의 겐리히 알츠슐러가 개발한 '창의적 문제 해결 이론'으로 러시아어 'Teoriya Resheniya Izobretatelskih Zadach'의 약자다. 알츠슐러는 20만 건 이상의 전 세계 특허를 분석했다. 거기서 공통점을 추출했다. 그는 창의성은 모순을 극복한 결과이며 주변의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특징이 있다는 점을 밝혀냈다. 트리즈는 성공한 제품이 어떻게 개발됐는지 역분석해 새로운 방법을 제시한다.
트리즈 전문가는 모순을 해결하는 방법을 이렇게 설명한다. 인터넷 포털 업체는 광고를 통해 수익을 얻는다. 인터넷 화면에 광고를 많이 띄울수록 수익이 늘어난다. 하지만 인터넷 화면에 광고가 많아지면 네티즌이 싫어하게 되고 접속 횟수가 줄어들게 된다. 광고가 많아야 하지만 동시에 광고가 적어야 하는 물리적 모순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럴 때 일반적으로 포털 업체는 디자인을 통해 광고를 적게 실은 것처럼 보이게 한다. 하지만 구글은 역발상을 했다. 초기화면에 군더더기 같은 광고를 하나도 싣지 않았다. 대신 검색창에 특정 단어를 치면 사각형 안에 검색어와 관련된 회사가 노출된 스폰서링크가 나온다. 구글은 '광고의 모순'을 네티즌이 처음 접속하는 화면과 검색 후 결과 화면을 시간상 분리해서 해결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구글의 광고시스템인 '애드워즈'(AdWords)다. 구글은 이를 통해 세계 최대의 포털 업체가 됐다.
러시아에 있는 국제트리즈협회(MATRIZ)에 따르면 트리즈 자격증은 가장 낮은 수준인 레벨 1부터 트리즈 이론을 발전시키는 단계인 레벨 5까지 다섯 단계가 있다. 레벨 1은 트리즈 책을 몇 권 읽어보면 되는 수준이지만 레벨 4.5는 자격증 따기가 매우 까다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