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호 기자의 현문우답] 깨달음의 이야기 '심청전'
'집착' 내려 놓으면 결국 눈뜨게 된다
심청의 아버지는 심봉사죠. 앞을 못 보는 장님입니다. 그건 우리들 자신에 대한 비유입니다. 우리는 봄날의 꽃 여름의 녹음 가을의 바람 겨울의 눈발을 '있는 그대로' 보질 못하죠. 늘 거기에 '나의 감정'을 대입해서 바라봅니다. 그래서 꽃은 슬픈 꽃 녹음은 절망의 녹음 바람은 외로운 바람 눈발은 두려움의 눈발이 되고 말죠. 결국 세상과 우주는 희로애락으로 범벅 된 비빔밥이 되고 맙니다. 우리는 늘 스스로 만든 창(窓)을 통해 바깥을 보니까요.
그런데 성현들은 말합니다. "있는 그대로 보라!" 도통 감이 잡히질 않죠. 그런데 '심청전'은 그 방법을 일러주죠. 그래서 '현문우답'에게 '심청전'은 하나의 경전입니다. 우리에게 '눈 뜨는 법'을 일러주기 때문이죠. 잘 들어보세요.
심봉사는 눈을 뜰 수 있다는 얘기에 공양미 300석을 부처님께 시주하겠다고 약속하죠. 그 말을 들은 심청은 깜짝 놀랍니다. 가난한 처지에 공양미 300석은 '심청의 목숨'을 뜻하니까요. 결심하죠. 자신의 목숨을 내려놓기로 합니다. 아버지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게끔 말이죠.
혹자는 이런 심청을 비난합니다. "부친 시봉이 힘들어서 죽음을 택한 것 아니야?" "심청은 현실도피주의자"라고 몰아치죠. 그러나 '현문우답'의 생각은 다릅니다. 왜냐고요? 그걸 '심청의 출가(出家)'로 보니까요.
머리 깎고 산으로 가는 게 출가가 아니죠. 나의 집착이 내려지는 순간 그게 바로 출가의 순간이죠. 심청의 가장 큰 집착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앞 못 보는 아버지에 대한 걱정과 보살핌 책임감과 자책감이었겠죠.
바다에선 풍랑이 '우르르!' 몰아칩니다. 집채만한 파도가 뱃전을 '탕!탕!' 칩니다. 큰 배가 휘청휘청합니다. 왜 그럴까요? 심청의 마음이 그런 겁니다. 심청이 틀어쥐고 있던 그 모든 집착과 소망 그리고 불안이 요동치기 시작한 거죠. 심청은 배 위에 엎드려서 "나 죽기는 서럽지 않으나 홀로 계신 아버지는 뉘에게 의지한단 말이오?"라며 통곡을 합니다. 그리고 결심하죠. 자신이 움켜쥔 모든 집착을 놓기로 말입니다. 그리고 치마를 둘러쓰고 인당수로 '훌~쩍' 뛰어내리죠. 그렇게 몸이 떨어지면서 마음(집착)도 떨어진 겁니다. "푸웅~덩!"
그 순간 바다가 '촤~악'하고 가라앉습니다. '현문우답'은 이 대목에 주목합니다. 왜 바다가 '촤~악!'하고 가라앉았을까요? 그렇습니다. 색(色)이 공(空)으로 들어간 거죠. 심청의 집착은 '색(色)'입니다. 그 색이 바다로 들어간 겁니다. 바다는 '공(空)'을 뜻하니까요. 색이 공으로 들어갔으니 색즉시공(色卽是空)이 이뤄진 겁니다. 그래서 이 우주가 고요해진 거죠. 왜 고요할까요? 바람도 파도도 심청의 집착도 원래 비어있기 때문이죠. 색즉시공의 순간 심청이 그걸 봤던 겁니다.
이로 인해 심봉사는 결국 눈을 뜹니다. 심봉사뿐만 아니죠. 맹인잔치에 왔던 봉사들이 다 눈을 뜹니다. 내가 눈 뜰 때 세상이 눈을 뜨죠. 우리도 틀어쥐고 있는 집착을 인당수에 하나씩 둘씩 풍덩 풍덩 내려놓으며 가다 보면 결국 눈을 뜨게 되죠. 그때는 나만 눈을 뜨는 게 아닙니다. 이 세상이 이 우주가 동시에 눈을 뜨는 거죠. 그때 탄성이 터집니다. "여기가 불국토구나!" 그러니 '심청전'이 얼마나 값진가요. 눈 뜨는 법 그 핵심 중의 핵심을 일러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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