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8강 '신화'는 없다, '실화'만 있을 뿐
수비 불안이 문제라고 '메시' 같은 스타 공격수가 없다고 골 결정력이 부족하다고 '뻥' 군대 축구한다고 경기 내용에선 한참 모자란다고 운이 따랐다고….월드컵 16강에 오른 대한민국팀이련만 우리는 그들에게 참 인색했다. 공 한번 잘못 차면 "000는 안돼"라며 혀를 찼고 실수가 따르면 감독의 용병술을 난도질했다.
허탈한 패스 미스가 나오고 황당한 공중볼이 나오면 "한국축구 한참 멀었다"는 비아냥과 자조의 소리가 그치질 않았다.
그런 까탈스런 국민을 가진 태극전사들의 어깨는 얼마나 짓눌렸을까. 그라운드에 선 그들의 다리는 얼마나 경직되었을까. 그런 험난한 길을 헤쳐온 태극전사들이 8강의 문턱에 와 있다.
따져보자. 태극전사들이 월드컵 본선에 오르고 16강에 들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어쩌면 2002년 4강 신화에 취해 우리는 지금의 경이적인 성과를 잠시 모른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월드컵 본선 32개국에 들기 위해 지역예선을 치르는 나라는 200여개국. 지구촌 거의 모든 나라들 이 축제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대한민국은 43개국이 참가한 아시아권 지역예선에서 단지 4개국에 주어진 티켓을 거머쥐고 남아공에 출격한 것이다.
이렇게 엄선된 32개국 어느 한 나라라고 만만할까. 이 중에 절반이 살아남는 16강전은 그래서 피튀기는 전쟁이나 다름없었다. 태극전사들이 이 '전쟁'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것이다.
여기에서 욕심을 접어도 우리는 충분히 대견하고 엄청난 자랑을 하기에 충분하다.
돌이켜보자. 대한민국이 '잘 살아보세'를 외치던 60.70년대. 지금으로 보면 아시아권 올망졸망한 나라들이 도토리 키재기 하며 킹스컵 박스컵 대회 우승에 목매며 열광한 적도 있었다.
그런 '동네 축구'를 하던 대한민국이 지금 세계 16강에 들었다는 것 감격 아닌가. '원정 첫 16강'이란 숙원 때문에 태극전사들은 말못할 부담을 안았을 것이다. 초초한 마음에 시야가 가려 필살의 킬패스는 엄두도 못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젠 그럴 필요가 없다. 태극전사들은 온몸의 근육을 맘껏 가동하며 8강전을 즐길 것이다.
붉은악마 응원단도 한결 여유로운 마음으로 그들의 종횡무진을 지켜볼 것이다. 태극전사들에게 더이상 지울 부담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들이 맘껏 뛰고 날고 총알같은 슛을 날리는 멋진 그림만 향유하면 될 것이다.
공 하나가 주는 지고지순의 행복감에 우리는 취해 있다. 푸른 잔디 위에 펼쳐지는 원시적 몸놀림에 몰입하면서 세상의 시름을 한동안 잊고 있다.
펄펄 끓는 붉은악마의 응원이 코리아의 역동성을 만방에 자랑하고 있고 그 에너지는 태극전사들의 건각을 더욱 강인하게 만들고 있다.
8강 '신화'는 없다. 우리에겐 8강 아니 4강 그 이상의 '실화'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태극전사들이 '실화'를 구현해 주는 날 우리는 그들 때문에 2010년은 너무 행복했노라 말할 것이다.
이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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