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날의 유래
어머니날의 유래어머니의 높고 거룩한 사랑과 희생정신을 생각할 때 날마다 어머니날로 정해도 부족함이 없겠지만, 미국에서 공식적인 어머니날은 5월 두 번째 일요일이다.
이날이 되면 각 가정에서는 낳아주고 길러주신 어머니 뿐만 아니라, 어머니가 되어 있는 누이나 내 자식들의 어머니가 된 아내 등에게 감사의 마음과 함께 꽃과 카드, 선물 등을 보낸다.
또 어머니에게 거는 전화가 급증할 뿐만 아니라 각종 레스토랑은 어머니와 함께 외식 나온 가족들로 몹시 분주해 지는 때이기도 하다.
오늘날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전세계적으로 널리 퍼진 이 어머니날의 기원은 그리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크로노스신의 어머니인 레아에게 매년 봄 축제를 바쳐왔다. 로마인들은 3월15일에 열리는 이 이벤트를 `힐라리아'라고 칭하며 퀘벨레 신전에 선물을 바쳤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를 기리기 위해 사순절 중에 이 행사를 열어 각종 꽃과 장식품, 값비싼 귀금속과 선물 등으로 교회를 장식했다.
또 영국의 종교계에서는 이날을 `어머니를 위한 일요일(Mothering Sunday)'로 특별히 지정해 모든 어머니를 이날 감사와 경축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날 영국의 아이들은 선물, 꽃, 특별한 케이크 등을 집으로 가져와 어머니에게 선사했는데 이로써 영국은 어머니의 날을 특별히 인정한 최초의 국가가 되는 셈이다.
이 영국의 전통은 앵글로색슨 국가에 널리 전파되었지만, 미국에서는 1900년대에 이르러서야 어머니의 날이 국가적인 날로 인정받게 된다.
미국에서의 어머니의 날은 애나 마리 리브스 자비스 여사로 인해 그 싹이 돋아나게 되었다.
애나 마리 리브스 자비스 여사는 학교 교사로, 남북전쟁 발발 이전 웨스트버지니아의 곳곳에서 건강과 위생환경을 증진하기 위한 `어머니 근로클럽'을 조직했다.
남북전쟁기간중 이 클럽은 양측에 중립을 선언하고 부상병을 치료하고 돌봐주었다. 전쟁 기간 중에 그녀의 자녀 4명이 죽었으며 12명의 자녀중 8명은 어른이 되기 전에 모두 죽고 말았다.
전쟁 후 웨스트버지니아의 그래프턴으로 돌아온 자비스 여사는 1865년 `어머니 상조회의 날'를 조직, 정치적인 활동을 전개하기도 했는데, 이 날은 군인과 이웃주민간에 우정과 평화를 나누는 날로 수년동안 지켜지기도 했다.
자비스 여사는 1905년 딸 애나와 앞을 보지 못하는 엘시노어 두 자녀를 남기고 사망했다. 장님 누이와 단 둘이 남게 된 미혼의 애나는 어머니의 죽음에서 몹시 충격을 받고 그녀를 기리기 위한 행사를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당시 미국은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 있어 부모에 대한 자녀들의 관심과 대접이 소홀해 진 경향도 있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애나 자비스는 1907년 5월12일 어머니를 위한 작은 특별예배를 `앤드류 감리교회'에서 거행한 뒤 전국적인 어머니날 제정에 일생을 바칠 것을 결심했다.
이후 그녀는 모든 어머니들의 공덕을 기리기 위한 특별한 날 제정을 호소하는 편지를 국회를 비롯한 각계각층에 보내기 시작했으며, 웨스트버지니아의 그래프턴에 있는 앤드류 감리교회는 1908년 5월10일 일요일 최초로 어머니의 날 행사를 제정해 거행하게 되었다.
이날 행사에서는 애나의 어머니인 자비스 여사의 생애를 기리기 위해 72번 종이 울렸으며 애나 자비스는 어머니가 평소 가장 좋아하던 흰 카네이션 꽃을 참석자들에게 일일이 나누어주었다. 같은날 필라델피아에서도 자비스 여사를 비롯해 모든 어머니들의 공덕을 기리는 행사가 열렸다.
마침내 1910년 웨스트버지니아는 5월의 두 번째 일요일을 어머니의 날로 제정했으며 1914년 윌슨 대통령이 법안에 서명함으로써 5월 두 번째 일요일은 법적으로 어머니의 날로 제정됐다.
그러나 이후 법적으로 공식 제정된 어머니날이 점차 상업화되는데 분개한 애나 자비스는 1923년 어머니날의 상업화에 항거하는 소송을 걸기도 했다. 자비스는 "이날은 어머니들의 공덕에 감사드리기 위한 날이지, 돈을 벌기 위한 날이 아니다"라며 시위를 벌이다가 체포되기까지 했다.
말년에 이르러 하나뿐인 누이와 재산마저 다 잃게 된 애나 자비스는 마침내 시력마저 상실, 친구들의 도움으로 양로원에 보내 진 뒤 1948년 사망했다.
애나 자비스는 사망하기 직전 기자들에게 다시 한번 어머니날의 상업화에 대해 한탄하며 어머니의 날을 시작한 것을 후회한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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