옅은 피부 동양인과 유럽인, 색결정 유전자는 판이 동양인 굵은 머리카락 유전자, 아프리카인에는 없어 환경변화 적응위해 인류 진화는 현재도 계속 진행중
인류의 피부 색깔은 진화의 산물이다. 특히 햇빛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같은 동양인이라도 대체로 햇빛이 강렬한 적도 근처에 사는 사람들의 피부 빛이 좀 더 검은 편이다.
유럽인들도 마찬가지다. 이탈리아나 프랑스 등의 남부 지방 사람들이 스웨덴이나 노르웨이 등 북쪽 사람들보다 피부 색이 진하다.
위도가 높은 지역에 사는 사람일수록 피부색이 하얗다는 것은 생물학에서는 정설이다. 그렇다면 동양인과 유럽인 가운데 피부색이 옅은 사람들은 똑 같은 진화의 경로를 밟아왔을까.
큰 틀에서는 비슷하지만 내용을 따져보면 차이가 있다.
즉 위도가 높은 지역의 동양인이나 유럽인 모두 햇빛을 더 흡수하기 위해 피부색이 밝게 진화한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흔히 희다고 말하는 그 색깔이 똑같은 색깔은 아니다. 피부 색깔을 지배하는 유전자가 서로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생물학자들은 최근 꾸준한 연구를 통해 피부색깔을 좌우하는 유전자를 25개 가량 밝혀냈다. 이중 피부색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유전자는 특히 소수에 불과하다.
한 예로 유럽인들의 옅은 피부 색은 '골든 진'으로 불리는 유전자의 영향 때문이다. 골든 진은 적도 지방의 바다에서 흔히 발견되는 '제브라피시'라는 물고기의 밝은 색깔을 만들어내는 유전자이다. 골든 진은 유럽인들 98%에서 나타난다.
반면 한국이나 중국 북부 지방 출신 등으로 피부 빛이 옅은 사람들은 DCT라고 불리는 전혀 다른 유전자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물론 DCT의 영향이든 골든 진의 영향이든 두 인종 그룹에서 진화의 목적은 차이가 없다. 멜라닌 세포의 비율을 줄임으로써 비타민 D의 생산을 늘리려 한 것이기 때문이다. 피부 속의 멜라닌은 일종의 자연 햇빛 차단제로 연중 햇살이 강렬한 적도 지방에 사는 사람들의 피부에 많이 분포한다. 아프리카 사람들이나 중남미 지역 사람들의 피부색이 대체로 짙은 것은 이런 연유다.
미국이나 캐나다 유럽의 보건기관들이 북위 36도 이상 지역에 사는 흑인 등을 대상으로 특히 겨울철 비타민 D의 섭취를 권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흑인들은 다량의 멜라닌 때문에 특히 겨울철 햇빛을 제대로 흡수할 수 없고 이런 까닭에 인체에 필수적인 비타민 D를 체내에서 제대로 합성할 수 없다.
날씨에 대한 인류의 적응은 일부 동양인에서 뚜렷한 굵은 머리카락에서도 확인된다. 일본 토카이 대학 연구팀은 최근 EDAR이라는 유전자가 굵은 머리카락을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연구팀은 일부 동양인들이 굵은 머리카락을 갖게 된 것은 추위에 좀 더 잘 견디려 한 진화의 결과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EDAR는 아프리카인이나 유럽인들에게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인류의 진화를 연구해온 많은 학자들은 그러나 환경에 적응한 이 같은 인류의 유전자 변화를 얼마전까지만 해도 '옛날 얘기'로 생각해 왔다. 인류가 불을 다스리고 집 짓는 기술 등을 습득하면서 인체가 더 이상 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적응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됐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 인류의 진화 시계가 멈추지 않고 돌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티베트 사람들의 저산소 환경 적응 또한 그런 예로 이들은 고산 지대라는 특수한 환경에 맞춰 살수 있도록 변화된 유전자를 갖게 됐다는 것이다. 이 같은 변화는 지난 3000년 사이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놀라운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3000년은 인류 진화학적 관점에서는 매우 짧을뿐더러 극히 최근의 시간으로 인식된다.
알코올에 대한 적응도 마찬가지이다. 벼농사가 활발한 중국 남부지방 사람들은 지난 1만년 전부터 알코올을 분해할 수 있는 효소를 갖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쌀의 발효로 일찌기 알코올을 접한 이 지역에서 살아남으려 하다 보니 알코올 분해효소를 갖게 됐다는 것이다.
인류의 진화는 진행 경로는 제각각 일지라도 보통은 환경 적응이라는 '목적'이 뚜렷한 게 특징이다. 하지만 귀지처럼 이유를 밝혀내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아프리카와 유럽 사람들의 귀지는 대체로 축축한 편이다. 그러나 한국과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사람들 가운데는 마른 귀지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ABCC11이라는 유전자 때문인데 진화의 관점에서 이득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는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