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人] 30년 한 자리 영업 '함경도아바이 순대' 이직심씨 "순댓집 딸 안부끄럽냐고 물어봤지"
걸걸하고 화통한 경상도 아줌마
이혼 남편 사별 후 자식들 키워내
'사람 냄새' 좋아하는 단골들 많아
손이 크기로 유명한 함경도 아바이 순대의 ‘함경도 어마이’ 이직심(60)씨.
저녁 9시쯤 되자 손님들이 하나 둘 자리를 뜬다. “요새 와 이래 장사가 안되노, 내만 그렇나?”는 말과 함께 테이블에 털썩 앉는 함경도 어마이. 어라? 이러면 ‘취중 토크’가 되는데…
오늘 사람in은 하루하루를 이어 30년을 엮어 온 ‘함경도 어마이’의 스토리를 찾아갔다.
함경도 어마이는 손이 커서 막 퍼준다 성격은 완전 괄괄하다 욕을 바가지로 퍼붓기도 한다.
궁금하다. 대구 사람이 왜 '함경도 아바이 순대'로 가게 이름을 붙였지?
"남편이 먼저 미국을 왔어. 천국이라고 하더라고. 좋아하는 콜라도 많고 집에 수영장도 있고 뭐…맨날 파티라데. 파티복만 댓벌 가지고 왔는데 파티는 무슨… 너무 답답해서 일 하겠다고 자청했지."
처음에 시작한 게 햄버거 가게다.
"몇 달 배우다가 랭커심쪽(유니버설 스튜디오)에 햄버거 가게를 냈거든. 장사는 잘 됐는데… 아이고 말 통하는 사람들하고 어울리면서 장사해야 재밌지. 넉달만에 팔았지. 남편이 '그러면 함경도 꺼 순대를 하라'고 하는거야."
시어머니가 함경도 분이었다.
"다라이(대야) 놓고 숙주에 당면에 두부에 뭐 갖은 양념해서 순대 속 채우는 연습을 한기라. 되더라고. 그래서 장사에 나섰지."
처음엔 '함경도 순대'라고 하려 했는데 그때 남편 아는 사람 중에 (고)임양근씨(방송인.전MBC임택근 아나운서 동생)가 '아바이를 넣는게 부드럽다'고 해서 '함경도 아바이 순대'가 됐지."
30대 초반 젊은 아줌마가 순대 장사하는게 쑥스러워 처음엔 나이도 30대 후반으로 속였단다.
-그만 해야지 하는 생각도 들었을 것 같은데요.
"있었지. 우리딸(김지혜ㆍOC검찰청 검사)이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 하는거야. 나중에 '순댓집 딸'이라는 말은 안듣게 할라고 그만 두려고 했거든. 그런데…(순간 눈물이 핑 고인다) 내가 물어봤다 아이가 '순댓집 딸이라는 딱지가 부끄럽지 않냐'고. '뭐가 부끄럽냐 엄마가 힘들어서 걱정'이라고 하더라.…딸 하나 아들 하나 당당하게 키우고 싶었고 그렇게 커줘서 너무 고맙지."
씩씩한 어마이도 결국 이 대목에서 목이 멘다.
어마이는 인터뷰 중 두번 목이 멨다. 딸과 어머니(89세) 얘기를 할 때. 양로병원에 계시는 어머니를 매일 한번 이상 찾아가서 귀여움(?)을 떨고 온단다. 가끔 싸우기도 하고.
어마이의 남편(고 김호연씨)은 '멋진 한량'이었단다. 사병 출신으로 남가주 해병전우회장도 했다. 신의도 있었던 것 같다.
"순댓집을 하는데 돈이 좀 모자란기라. 남편이 돈을 빌려왔는데 그게 조인하(전 LA한인회장)씨한테 빌린건데 조 회장이 집을 담보로 잡히고 빌려줬더라고. 조회장도 멋지지만 남편도 신의가 많았던기라."
이혼의 아픔도 있었다.
"살면서 '아 이건 실수다' 한 게 이혼이야. 그 양반 한량이었거든. 나중에는 돈 한푼 안 벌어왔는데 그래도 벤츠 s클라스 타고 다녔지. 내가 뒤에서는 지랄(괄괄한 대사가 순간순간 쏟아진다)해도 애들이나 사람들 앞에서 남편 한번도 무시한 적 없었거든. 뭐 애들 둘다 대학 가면 두고보자 하는데 근데 누가 생겼는지 집을 나가버렸잖아. 잡아야 되는데 타이밍 놓치고 그러다가 폐암이 걸려가지고…10년 전에 세상 베릿다(버렸다)."
-(뜬금없이 물었다)보고싶지는 않으세요. 다시 태어나면 그 분하고 결혼하실 거예요.
"요새 보고 싶을 때가 많아. 다시 태어나면 다시 결혼 해보고 싶다. 지금 없어서 그런지 몰라도 티격태격 안하고 잘 살 수도 있었을 거 같거든. (잠시 머뭇하다) 마지막에 돌아가기 전에 아들 딸이 그 집에서 살았다. 지네도 그러고 싶다 하고 나도 맘이 그렇고 해서…."
어느날 고통이 극에 달한 남편이 모두를 불렀단다. 잊을 수 없는 세마디를 어마이가 기억하고 있었다. 내 이런 모습 보여서 정말 미안하다 지혜 엄마 당신 진짜 수고 많았다 내가 식구들한테 잘못한 게 참 많은 것 같다…이 세마디.
네명이 붙들고 한참을 울었단다. 그리고 며칠뒤 별세했다.
-(말을 살짝 돌렸다)잘 퍼준다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성격이 괄괄하다던데요.
"괄괄한 게 아니라 더럽다고 했겠지(웃음). 나도 '이러면 안되는데'한 적이 많거든 근데 그게 잘 되나. 쭈글시러버서(쑥스러워서) 나중에 미안하다는 말도 못하는거지."
한가지 예를 들어줬다. 한 손님이"저 순대국에 순대가 2개밖에 없어요. 왜 이래요?"했단다. 어마이는 "엄마야 그럴리가"하며 손님 그릇에 숟가락을 넣고 확인한다. 7개 들어있다. 난리가 쏟아진다. "야! 니는 이게 두개가?"
설마 그랬겠냐 싶었지만 진짜란다. "더 달라면 확실하게 더 주거든. 근데 이상한 소리 하믄 못 참는다."
30년을 한 자리를 지킨 이유나 비결을 물었더니 "내가 단순해서 그렇지 뭐"라며 웃어 넘긴다. 괄괄한 성격도 자신의 단순함 때문이란다.
그러나 3번에 걸친 8시간의 인터뷰 말미의 느낌은 달랐다. 괄괄함과 강인함(사실은 강한 것처럼 보이는)의 저 밑둥지에서 올라오는 무엇인가 있었다. 사람냄새였다.
함경도 아바이순대 2층 나드리 관광여행사 임은숙 사장의 말이다. "16년 윗층 있으면서 친해진 건 4년됐는데 그 전에는 몰랐어요. 함경도 어마이한테서 그렇게 사람 냄새가 폴폴 나는 줄은…." 강인함으로 30년을 엮어온 줄 알았지만 아니다. 폴폴 나는 사람냄새가 정으로 흘러들고 스며들어 엮여진 30년이었다.
"앞으로 사람들에게 더 잘 해야지. 우리 어머니한테도 더 자주 가볼라고. 어머니가 있으니 내가 있고 또 우리 딸 지혜가 있잖아. 요즘 좀 어렵긴 한데 더 열심히 살아볼란다."
in 뒷담화…"난 30년 동안 쌩얼이야"
▶“내 본명 아는 사람, 거의 없다~” (이름을 한사코 안 밝히려 했다. 본명은 이직심. 친언니는 이정심이다. 부모님이 정ㆍ직한 두 딸이 되라고 정심과 직심으로 지었단다.)
▶“내가 쌩얼 30년이다. 앞으로 더 쌩얼해야지” (함경도 어마이는 화장을 안한단다. 화장을 하면 음식 냄새 맡을 때 냄새가 섞여서 항상 같은 맛을 낼 수가 없다며)
▶“이 집에 앉으면 그때부터 다 식구다. 패밀리~” (두번째 인터뷰 때 4개 테이블 전체가 거의 하나된 분위기에 시키지도 않은 안주가 막 나오며-일명 퍼주기-)
▶“김치찌개하고 계란말이 주세요” (역시 두번째 인터뷰 때 4개 테이블 전체 오더는 김치찌개였다. 본업인 순대에 계란말이, 김치찌게, 삼계탕도 맛있다. 전화 먼저하면 만들어준다)
만난 사람 = 천문권 기자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