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매나사스 지역에서 남서쪽으로 약 50분 거리에 위치한 ‘원산 버섯농장’. 이곳의 주인은 토종 한국식 전원의 삶을 가꾸고 있는 원응식(73) 농학박사다. ‘작은 호랑이’, ‘돌쇠’ 등 여러가지 별명이 있지만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은 역시 ‘버섯박사’라는 수식어다.
그는 80년대 초 미국에는 없던 표고버섯을 최초로 재배해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 유수 언론에 소개되며 미 전역은 물론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참나무를 이용한 재배법에서 탈피, 목화껍데기와 콩, 쌀 등을 배합한 배지를 만들어 버섯을 수확하는 방법을 개발, 특허를 받기도 했다. 며칠 밤을 새고 들어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왔지만 이제는 버섯, 그리고 자연과 더불어 사는 평화로운 삶을 즐기고 있다.
“버섯농장이지만 거의 자급자족이 가능할 만큼 웬만한건 다 키우고 있죠.”
듣고 보니 정말 그렇다. 농장에 들어서 길을 가다보면 좌우로 나무들이 우거진 사이로 해바라기 꽃이 보인다. 버섯을 재배하는 네동의 커다란 비닐 하우스와 배합실, 포장실, 저장창고 등 외에도 곳곳에 밭이 있다. 집 주변에는 사과나무·배 나무·감나무·자두나무, 심지어 밤나무도 한두그루씩 있다. 부추밭 옆에는 고추밭이 있고, 봉숭아, 두릅, 오이, 호박 등도 직접 키운다. 텃밭을 가꾸는 한인들이 많다지만 이 정도되면 수준급.
마당 한켠에는 한국에서 유정란을 몰래 들여와 얻었다는 10여마리의 한국 토종닭들이 닭장안을 누빈다. 수탉은 시도 때도 없이 ‘꼬끼오!’를 외치고, 암탉은 작은 상자 안에 들어가 알을 낳는다. 그리고 또 하나. 원 박사를 졸졸 따라다니는 순한 누렁이 ‘조리’는 영락없는 한국의 시골집을 연상케 한다.
그의 농장에는 걸려오는 전화도, 찾아오는 손님도 많지만 그때마다 발휘되는 건 푸근한 시골 인심이다. 버섯재배에 사용하고 회수한 배지들은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나눠준다. 각종 영양분이 풍부해 밭에 뿌리기만 하면 최고의 비료가 되기 때문. 또 궁금해서 와보는 사람, 다른 사람 얘기를 듣고 방문하는 사람 등 손님들도 가지가지다. 가끔 그처럼 농장을 운영해보고 싶다며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에게 해주는 말은 딱 한가지다. 바로 ‘미친 사람이 돼라’는 것이다.
그는 “그로서리점을 하든 세탁소를 하든, 아니면 농사를 짓든 하는 일에 완전히 몰두해야 한다”며 “미친 놈 소릴 들을 만큼의 성격과 고집, 집념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와 한번 만난 사람들은 친구가 되고 형제가 된다. 집 진열장에는 손님들이 들고온 각종 와인, 양주들이 즐비하다. 호탕한 성격탓에 술을 즐겨 마실 거라 생각하고 너도 나도 술을 들고 온다는 거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술을 입에 대지 않아 술 선물들은 고스란히 세 아들네의 차지가 된다.
70이 넘었지만 그의 버섯 연구는 계속된다. 2년여 전부터는 버섯과 담배와의 관계를 연구중이다. 중독성을 갖는 담배의 니코틴을 버섯 성분을 이용해 제거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그리고 꿈도 있다. 가능한 많은 이들에게 자신이 지금까지 연구하고 얻은 지식을 전달해주는 것이다.
“뭐 한국 사람들이 미국에 와서 다들 어렵고 힘든 시기를 거치지 않습니까. 그냥 친정집에 오듯 편안하게들 찾아왔으면 좋겠습니다."
원응식 박사는 1938년 강원도 원주에서 출생, 원호산업 주식회사 대표이사로 무역업에 종사하다 버섯재배에 관심을 갖게 됐다. 1970년대 미국의 참나무 샘플을 한국으로 들여가 표고버섯 재배에 성공했으며, 이후 버지니아 샬롯츠빌에 첫 농장을 열고 본격적인 표고버섯 생산에 들어갔다. 느타리 버섯도 그가 미국에 처음 전파했다. 89년 지금의 위치로 농장을 옮겼으며 현재 버지니아와 펜실베이니아 등 3곳에 버섯과 콩 농장이 있다. 버섯재배 연구를 거듭해 2003년엔 농학박사 학위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