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ddy I have something to say to you, 아빠! 드릴 말씀이 있어요.” 2년전 고등학교 졸업반이던 딸 아이는 제법 진지하게 나와의 면담을 요청했다. 차 한잔을 마시면서도 머뭇머뭇 거리는 딸을 보면서 ‘딸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보다’ 하며 불안한 마음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한참을 머뭇거리던 딸아이는 “Daddy, I had my first kiss last night! 아빠! 저 지난 밤에 첫 키스했어요!” 라고 말하면서 까르르 웃는다. 웃는 그 얼굴에는 행복과 수줍음이 서로 교차하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정신이 아득해졌다. 뭐라고 답변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다가 툭 던진 말은 엉뚱하게도 “너 키스한 아이가 한국 아이니”였다.
“아니요 Chris 있잖아요. 중국애!” 그 말을 듣는 순간 또다시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래 어떻게 키운 딸인데 첫 키스를 다른 나라애하고 하나’
그러나 나는 누구에게나 있는 첫 키스의 추억을 아름다운 것으로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으로 아이의 마음을 마음껏 기쁘게 해주었다. 그럼에도 나는 또 한번 실수를 하고 말았다. “다음에는 키스를 하더라도 한국애 하고 해라!”
대학 1학년 말 딸아이로부터 ‘마음에 드는 남학생이 있어서 아빠에게 소개 하고 싶다’는 말을 듣고 나의 첫 질문은 “한국아이지?”였고, 답변은 “아니요 중국 아이예요!”였다.
“한국남자면 더 좋겠는데...” “아빠! 아빠는 목사님이면서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세요?” “한국 사람이니 한국 사람과 사귀는 것이 좋지 않겠니?”
적어도 이 문제에 있어서는 나는 절대 약자다. 가을이 되면 대학 3학년이 되는 딸아이가 2 주전에 스무 살이 되었다. 자기 나이가 너무 많다고 걱정하는 딸아이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다.
“Daddy! 저 아주 가끔 술도 마셔요!” “그래 친구들하고 놀다 보면 맥주 마실 수도 있지!” “맥주 말구요!” “아니 그럼 뭘 마시니?” “술이요!” 맥주는 술도 아닌 모양이다.
자주 마시지는 않고 일 년에 한두 번 친구들 생일에 마시는데 두 잔 이상 마시면 자제력을 잃는 것 같아서 그 이상은 안 마신단다. 나는 뭘 마시는지, 두 잔이 뭔지 겁이 나서 물어보지도 못했다. ‘한 잔 이상은 마시지 말라’는 나의 말에 흔쾌히 승낙하는 딸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절대로 마약하지 말고 네 몸을 정결하게 지키라’는 나의 말에 약속하면서도 “만약 아빠와의 약속을 못 지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아빠에게 먼저 말하겠어요”라고 한다. 나는 벌써 가슴이 두근두근 뛴다.
딸아이의 말을 들어보면 학교에 목사님 따님들이 많이 있는데 주로 두 그룹으로 나뉜다고 한다. 한 그룹은 거의 대부분의 목사님 따님들로 그야말로 목사님 따님들답게 조신한 모법생들이고 다른 그룹은 비록 극소수이기는 하지만 술, 마약 섹스에 노출되어있는 학생들도 있다고 한다.
“너는 어느 쪽이냐?”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묻는 나에게 “저요? 아빠! 저는 중간 이예요”하고 또 까르르 웃는다. 그리고 2주전 20살 이 되는 생일에 2 shot 을 했더니 친구들이 “너희 아빠가 널 위해 새벽마다 우시면서 기도하시겠다”고 자기를 놀렸다며 깔깔거리며 웃는다.
나는 딸아이가 중국계 학생들과 잘 어울린다고 해서 내 딸이 중국 사람과 결혼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내 딸이 가끔 친구들과 술을 마신다고 해서 문제아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밤 늦게 공부하다가 한 두 번 주일 예배에 빠졌다고 해서 내 딸을 신앙 없는 아이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딸이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얼마나 살아볼 가치가 있는 인생인지 자기 나이에 맞는 폭 넓은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 대학을 마치면 한 2년 정도 Peace Corp 과 같은 비영리 국제기구에서 봉사하겠다는 딸의 모습에서 나는 이 아이가 그래도 긍정적인 자화상을 가지고 의미 있는 삶을 꿈꾸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마음이 기뻤다. 그리고 나는 내 딸이 자신을 귀하게 여기고 다른 사람도 존중하며 독립적인 삶을 살 것이라고 믿는다.
이제 자유인으로 떠나보낼 때가 되어 가는데 내 마음은 아직 준비가 덜 된 것 같다. 문득 ‘고도원의 아침일기’ 라는 글이 생각난다. “아버지는 딸에게 한 그루의 나무입니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말없는 사랑의 그늘이 되어줍니다. 계절이 바뀌고 바람이 불어 잎이지고 가지가 꺾여나가도 그루터기로 남아 조용히 눈물을 쏟으며 딸을 위해 기도합니다. 아버지의 사랑과 기도로 자란 딸은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