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가주의 귀뚜라미에게는 철이 따로 없는 걸까. 가을이 아닌데도 귀뚜라미 울음 소리에 잠 드는게 늦어지고 잠 깨는게 일러진다. 밖에서나 집안에서나 그 소리가 늘 들린다. 지금은 귀뚜라미 외에도 풀벌레들이 저마다 개성 있는 노래를 부르는 계절이 되고 있다.
한국말로는 대개 벌레도 새도 운다고 표현하지만 사실은 노래를 한다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것 같다. 울음이라기보다는 울림이라고 보면 좋다. 자연의 음악이다. 가장 아름다운 자연의 음악 가운데 하나가 곤충의 노래다. 숫컷이 부르는 노래라 해서 남자 목소리만 들리지는 않는다. 여자의 목소리도 있고, 여러 가지 다른 곡으로 악기를 연주하기도 한다.
귀뚜라미는 언제나 안 보이는 데서 운다. 몸을 가리고 울부짖는다. 하소연한다. 호소한다. 그리고 숨어서 기도한다. 간절한 통성기도를 남 몰래 올린다. 기뻐서, 좋아서 울기도 하겠지. 집안이, 세상이 떠나가게 운다. 작은 몸이 터지고 말것만 같다.
우리말 고어에도 ‘귀도리’ ‘귓돌와미’ ‘귓도람이’ 같은 의성 명사가 있는걸 보면 옛날부터 우는 소리에 관심이 간 모양이다. 특히 동양에서는 가을 소식을 전하는 전령의 소리로 들리고, 집안에 깃들여서 인간의 외로움과 슬픔을 노래한다고 보아왔다.
“찬 비 듣는 소리/그대가 세상 고락 말하는 날 밤에/숯막집 불도 지고 귀뚜라미 울어라.” 김소월의 ‘귀뚜라미’ 소리가 그렇다. 노천명은 ‘귀뚜라미’에서 “밤이면 나와 함께 우는 이도 있어… 오늘도 저 섬돌 뒤 내 슬픈 밤을 지켜야 합니다”라고 노래했다.
그러나 귀뚜라미를 난초와 함께 선비로 비유한 옛날 그림도 한국에 있다. 서양에서는 행운과 불길, 정반대의 표지가 되기도 한다.
곤충은 일반적으로 몸의 한 부분/한 날개를 다른 부분/다른 날개와 비벼서 소리를 낸다. 그 소리로 암컷을 유인하기도 하고, 다른 숫컷을 몰아내기도 한다. 적을 위협해서 쫓아보내는 호신술로 삼기도 한다. 귀뚜라미는 왜 우는 걸까. 중국의 옛 시인들이 놀라워한 것처럼 그 작은 몸에서 어떻게 그토록 큰 소리가 나오는 걸까. 따지지 말자. 노래가 그들의 생명이다.
‘나무귀뚜라미’(tree crickets)는 곤충 중에서 가장 음악적인 소리를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작가 호손(Nathaniel Hawthorne)은 “만일 달빛에서 소리가 난다면 나무귀뚜라미 소리일게다”라고 말했다. ‘월광곡’이 들리는가.
같은 ‘미’자 돌림으로 매미도 신나게, 격렬하게 운다. 17년간이나 땅속에 살다가 지상으로 나오는 매미. 바깥 세상에서는 겨우 5주간 살다가 일생을 끝내는 매미. 그 5주 동안에 하늘이 째질만큼 온 정력을 다해 울어대는 매미의 일생을 처참하다고 할까. 그들의 호곡을 고결하고도 찬란하다 할까. 갈 때는 빈 껍데기에다 몸의 형태를 벗어놓고 사라진다. 유교에서는 매미가 다섯가지 덕을 갖추었대서 높이 여긴다고 하지 않는가.
여름을 노래하는 곤충 음악가로 여치도 있다. 몸이 아주 작지만 전 세계에 7천여 종이 퍼져 있다고 한다. 베짱이도 여치과에 속한다. 어느 전문가는 여치의 발음술을 바이올린 연주와 견주어서 설명했다. 아주 작은 바이올리니스트.
사람만이 지구의 주인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리석다. 귀뚜라미도 매미도 여치도 지구의 주인이다. 모든 남성들이여. 가정에서, 직장에서 더 노래를 하자. 여성들이 자연히 참가하게, 노래하는 곤충과 함께 노래 부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