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 비용 연 수천달러 들어…'동심' 지킨다는 평가 있지만 위화감 조성…사회문제 비화 남자아이들 토마스 기차 등…고가 장난감이 요즘 트렌드
최대 장난감 제조업체 '마텔사'의 자회사가 86년 출시한 인형 브랜드다. 초기에는 큰 반향을 얻지 못했지만 2001년 첫 현대식 캐릭터 '린지'를 데뷔시키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컴퓨터 게임이 주도하는 어린이 놀이문화에 '동심'을 지키고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는 반면 비싼 가격 때문에 허영심을 조장한다는 지적도 있다. 일부 학교에서는 소유한 인형 갯수에 따라 아이들끼리 모여 위화감을 조성하는 사회문제로까지 부각되고 있다. 매장을 직접 찾아갔다.
▶'미국 소녀'가 되는 길
지난 주말 정오 한인타운 인근 그로브몰내 '아메리칸 걸 플레이스'.
매장의 규모는 약 5000스퀘어피트. 마치 동화 속의 집을 연상시키는 디자인이다.
매장 2층 카페에서는 레이철 김양의 열번째 생일 파티가 한창이다.
일반 파티와 다를 바 없어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뭔가 이상하다. 아이들은 모두 옆자리에 인형 하나씩을 '앉혀'놨다. 아메리칸 걸이다.
카페 종업원들은 인형에게도 차를 따라주고 모조 음식도 내온다. 이곳에서는 인형도 엄연히 손님 대접을 받고 있다. 아이들에게 인형이 최고의 친구이자 분신이라는 것을 적극 활용한 마케팅 전략이다.
이날 김양은 친구 8명을 초청했다. 식대는 최저가가 1인당 65달러다. 테마별로 옵션을 추가하면 1인당 최고 250달러를 호가한다. 파티는 조촐하지만 계산서는 절대 그렇지 않다.
김양은 생일파티 외에도 이곳에서 인형인 미셸의 옷을 사고 헤어스타일을 바꾸며 함께 사진을 찍었다.
아메리칸 걸 인형 자체는 110달러지만 이곳에서 제공하는 모든 서비스를 1년에 단 한 차례씩만 이용할 경우 지출 금액은 적게 잡아도 2000달러가 넘는다.
〈표 참조>
이쯤되면 '소녀들의 명품'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
▶'놀라움의 연속' 매장 풍경
매장 초입 풍경은 뜻밖이다. 한인을 비롯해 아시안과 백인 흑인 라티노 등 다양한 인종의 고객들이 가득 메우고 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호기심 가득한 표정이다.
방대하고 다양한 시설도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인형 전문 뷰티 살롱 병원 카페 스튜디오까지 없는게 없다.
가장 눈길을 끄는 장소는 뷰티 살롱이다. 이곳에선 전문 헤어스타일리스트가 인형의 헤어스타일을 손질한다. 원한다면 피어싱 네일 케어 패디 큐어까지 받을 수 있다.
헤어스타일 손질에 드는 비용은 20달러로 일반 미용실과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하루 평균 이용객이 30명 이상일 정도로 인기다. 서비스를 받는 인형을 쳐다보는 아이들의 표정도 진지하다. 자신의 분신이 헤어스타일을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2층에는 인형들을 위한 병원과 인형과 함께 사진을 찍어 앨범을 남기는 포토 스튜디오 카페 등이 있다. 또 곳곳에 아메리칸걸의 대표 캐릭터 인형별로 나눠진 테마 부스가 마치 박물관처럼 자리를 잡고 있다.
▶'사줘야 하나' 부모들의 딜레마
최근 베버리힐스의 한 사립학교로 딸을 전학 보낸 김모(37)씨는 학교에서 돌아온 딸로부터 난생 듣지 못한 인형을 사달라는 '애원'을 들어야만 했다.
아이는 "학급 친구들이 모두 아메리칸 걸을 갖고 있고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선 꼭 사야만 한다"고 졸라댔다. 알아보니 아메리칸 걸로 개당 110달러였다. 아이가 가진 바비 인형의 8배가 넘는 고가였다.
김씨는 처음엔 비싸서 안된다고 한마디로 거절했지만 결국에는 사주고 말았다.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 아이가 따돌림 당할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김씨는 "또래 학부형 모임에서 이 인형 얘기가 화제로 나왔는데 한 학교에서는 인형을 가진 아이들끼리만 모이고 다른 아이들을 왕따를 놓는다는 말을 들었다"며 "심지어 가지고 있는 인형 갯수에 따라 아이들간 계급까지 정해진다는 말에 사주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인형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말마다 아메리칸 걸 플레이스에 아이를 데리고 가야했다. 인형 옷 등 신상품을 쇼핑하러 가야했기 때문이다. 매장에서는 인형 옷에 항상 아이의 옷까지 세트로 묶어 판매하고 있다. 인형 옷만 살때 보다 부담은 배가 된다.
▶넘쳐나는 고가의 장난감
부모의 지갑을 털어가는 장난감은 비단 아메리칸 걸만의 문제가 아니다. 고가 장난감 브랜드는 이제 시대의 트렌드다.
남자 아이들에겐 토마스 기차가 있다. 작은 기차 하나를 구매하는 가격은 6~10달러 정도지만 레일을 깔고 하나의 역을 만들려면 수백 달러 이상이 필요하다.
장난감 산업의 대표주자 자리를 지켜온 레고도 마찬가지. 수 많은 레고제품을 몇 가지라도 갖추려면 수백달러는 쉽게 날아간다.
몇 년 전 큰 인기를 끌었던 포켓몬스터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한 개의 몬스터 장난감을 사는 것이 아닌 정식 일제 장난감을 구매한다는 가정 하에 나오는 모든 몬스터를 구입할 경우 드는 비용은 1000달러를 훌쩍 넘어선다.
지난해 미국의 장난감 시장의 총 매출은 214억7000만 달러로 전년의 216억5000만 달러에 비해 0.8%가 줄었다. 하지만 아메리칸 걸은 매년 승승장구하고 있다. 전반적인 업계 침체 현상을 명품들은 피해가고 있는 것이다.
▶동심 수호신 vs 허영심 조장
아메리칸 걸의 순기능도 적지 않다. '또다른 나'로 여겨지는 인형을 아끼면서 상상력을 키우고 같은 인형을 가진 친구들과의 교제를 통해 사회성도 개발된다는 평가다.
아메리칸걸의 스테파니 스파노 홍보 마케팅 디렉터는 "아메리칸걸은 보통의 장난감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자신의 분신과 같은 존재"라면서 "비록 인형이지만 입히고 먹이면서 배려와 존중을 배울 수 있다"고 선전했다.
하지만 인형은 인형일 뿐 매출을 올리려는 장난감 회사의 상술이라는 지적도 있다.
저스틴 최 아동심리학 박사는 "바람직하지 못한 우월감이나 열등감을 형성해 아이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성인이 된 뒤에는 소유에 만족하지 못하는 심각한 문제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