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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人] 자동차와 36년 인생 김스운전학교 김응문 교장

"음주 차량은 달리는 살인 흉기입니다"

간혹 생각에 잠긴 후 나오는 말에서는 깊이가 묻어나고 자동차가 가득 그려진 넥타이에서는 묘한 자부심이 느껴진다. 자동차를 말 할때는 천진난만한 표정이었고, 음주운전 이야기를 할 때는 진지하고 무서운 선생님이었다. 미주 한인 첫 운전교사에 이어 첫 운전학교를 이끌어 오고 있는 김스운전학교 김응문 (70)교장이다. 오늘 사람in은 운전은 즐거워야 한다며 ‘인조이 유어 드라이빙~’을 외치는 김응문 교장과 동승했다.

"한국 유신 피해 도미 밀물…운전 수요 급증 창업 결심"
"하고 싶은 일 해서 즐거워…한인타운 DMV 설치 소망"


인터뷰 시작부터 살짝 당황스러웠다. 대학시절 전공은 철학(연대 철학과)이었다. 1969년 미국 유학(아주사 퍼시픽 대학)에서 전공은 사회학. 지금은 운전학교 교장이다.

"소셜 워커를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USC 석.박사통합과정에 시험을 쳤는데 아시안이 한명도 없었습니다. 시험과정에 열 다섯명이 토론하는 게 있었는데 영어도 문제였지만 제가 말할 기회를 안주는거예요. 인종차별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응시한 사람들은 대부분 경력 5년 이상의 현직 공무원과 선생님이었어요. 저는 추천서도 없었고 경력도 전혀 없으니 안된 건데도 그때 낙담은 정말 컸습니다."

# 이야기 1-자동차

뭘하고 살까 고민하다 DMV 공무원 시험을 쳤는데 덜컥 됐단다. 그런데 새크라멘토로 오라는 것. 고민에 빠진다. '공무원이란 직업이 궁합도 별로 안 맞는것 같은데 새크라멘토까지 이사 가야 하나…' 결국 포기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당시 한국의 정치상황이 김씨의 길을 바꾼다. 박정희 정권의 10월 유신이 시작되면서 한국사람들이 미국으로 몰려들었다. "한국 사람들이 와서 여기서 운전을 해야 되잖아요. 미국에서 한인들이 운전 잘 하고 생활 잘하게 하는 것도 좋은 일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할리우드에 있는 LA운전학교를 찾아간다. 교장이 흑인이었는데 반가워한다. 한국전 참전용사였고 노하우 대부분을 전수받는다. 일정시간 교육을 마치고 운전교사가 됐다. 1974년이다.

"현재의 자리에는 1979년부터 했습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어떻게 운전학교를 할 생각을 했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냥 숙명이지 않았나는 생각이 가끔 드는데…무엇보다 재미있어요." 곡절도 있었다. 절친한 친구가 운전학교를 못하게 방해(?)했다가 더 열심히 하게 만든다.

# 이야기 2-친구

뉴욕에서 사업을 하던 친구가 부탁을 한다. "할리우드에서 남은 자투리 필름들을 다 구해달라." 영화 필름은 야드 단위 두루마리로 판매되는데 할리우드에서는 촬영 후 남은 자투리 필름은 모두 버렸단다. 당시 한국에서는 그 자투리 필름도 귀했다. 한국에 괜찮은 가격에 꾸준히 판매됐고 친구는 김씨에게 LA사무실을 맡아 달라고 했단다. 한국을 왕래하며 무역으로 돈 버는 방법에 눈을 떴지만 운전학교를 준비 중이었다. 고민 끝에 김 교장은 "돈도 중요하지만 난 자동차와 함께 하는 게 재밌다"며 사업은 손을 떼고 운전학교를 시작한다.

"제가 지금도 그렇지만…억만금을 줘도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좋아요. 운전도 버릇이고 습관인데 교육 제대로 받고 면허 제대로 따서 가는 뒷모습을 보면 뿌듯합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람입니다."

그 후로도 친구는 계속 LA사무실을 제안했는데 어느날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만다. 우연치고는 참 고약했다.

"친구를 교통사고로 보내고 나서 제가 운전학교에서 더 잘 가르쳐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상대방 과실인데 그렇게 한번에 가버렸어요."

# 이야기 3-어머니

운전학교를 하는데 우선 가족들이 반대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반대보다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한다. "어머니는…(단단한 김 교장 눈시울이 붉어진다) 제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셨죠. 출퇴근할 때 운전하는 것도 불안한데 하루종일 운전하면서 길에 다니면 어떻게 하냐고…."

어머니는 늘 기도하셨고 아들은 지금껏 큰 사고 없이 길 위의 삶을 한인들과 함께 하고 있다. "모두 어머니가 소중하지만 저는 좀 더했습니다. 길 위에서 일하는 아들을 위한 기도가 온전히 전해진 것 같아요. 다행스럽게 미국에 모셔오고 여기서 하늘나라로 가셨죠."

김스운전학교는 한지붕 세가족이다. 운전교육 트래픽 스쿨 DUI프로그램까지 3가지를 운영한다. 보람됐던 일을 물었다. "90년대 초반에 조기유학이 많았어요. 딱 그만큼 조기유학생 음주운전이 많았습니다. 15주 다니면 약 400달러 정도 의무적으로 내야 하는데 학생들이라 돈이 없죠. 교육만 받고 그냥 사라집니다. 다섯명이었는데 신고를 안했어요. 그때 같은 클래스였던 한분이 '교육 프로그램이 좋아서 애들 다시는 음주운전 안할 거다. 교육비는 내 아이들이라 생각하고 내겠다'하면서 교육비를 다 내주는 겁니다. 좀 놀랐고 '다시 음주운전 안할 거다'는 말에 보람을 아주 크게 느꼈습니다."

김 교장은 앞으로 꿈을 한인타운 DMV 설치라고 한다. "과거에 진행한 적이 있는데 저는 안되고 어떤 비영리 단체가 해야할 겁니다. 한인타운 안에 꼭 DMV가 생겨서 면허시험을 제외한 다른 건 꼭 편리하게 했으면 합니다."

동승이 끝나고 교실로 들어간 김 교장은 DVD 확인 교실 정리 등 저녁 강의 준비를 한다. 마지막 한마디.

"음주운전은 범죄입니다. 음주 차량은 달리는 살인 흉기입니다. 혈중 알코올 농도 0.08%이상은 유죄라는 걸 꼭 알려주십시오."

"여성 음주운전 너무 많아요"

◆"한인여성들 음주운전이 너무 많이 늘고 있습니다."=김 교장은 한국의 통계를 예로 든다.

1996년 한국에서 여성 음주율은 54.5%. 그러나 1999년 여성 음주율은 84.3%다. 소주 알코올 도수를 낮춰 판매 타켓을 여성들로 잡기 시작한 때와 일치한다. 미주 한인들도 비슷하다는 것이 김 교장의 말이다. 특히나 알코올 분해가 남성보다 떨어지는 여성은 더 많이 DUI에 노출된다는 것.

◆"한국정서로 술은 음식의 일부죠. 미국은 마약의 일종으로 봅니다."=미국은 술을 보는 시각이 한국과 전혀 다릅니다. 단속할 때도 마찬가지다. 술을 과하게 먹었구나가 아니라 심각한 범법행위로 본다."

▶방어 운전 팁 7가지…앞 차 급정거해도 차선 피하지 마라

1. 정면 충돌 위험이 닥치면 오른쪽으로 비켜가라. 왼쪽은 더 큰 사고를 유발할수 있다.

2. 제한속도를 지켜라. 10분 늦었다면 10분 늦게 도착해라.

3. 공간을 유지하라. 앞차와 안전거리를 3초 이상, 좌우에도 공간을 둬라. 위급 상황에 내가 빠져나갈 좌우를 둬라.

4. 마음을 컨트롤할 수 없는 날은 운전하지 마라.

5. 제어거리를 충분히 확보하라. 제어시간은 최소 15~20초를 확보할 정도로 멀리 보라.(시속60마일 1초=26미터)

6. 앞차가 급정지하면 급브레이크를 밟고 차선을 유지하라. 비켜나면 더 큰 사고가 날 수 있다. 작은 사고로 큰 사고를 막는다.

7. 타이어가 터지면 브레이크를 밟지마라. 가속페달에 발을 떼고 브레이크를 밟지말고 비상등을 켜라. 직진할 수 있도록 운전대를 꽉 잡으라.천천히 도로 갓길로 나오라.

만난사람=천문권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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