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저지 버겐필드에 사는 학부모 이은화씨는 몇 년 전, 큰딸 남궁하나양이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예상치 못했던 문제에 봉착했다.
딸이 워낙 성격이 활달해 학교 생활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갑자기 늘기 시작한 체중이 문제였다. 하나양은 입학한 9월부터 12월까지 3개월 동안 무려 10파운드나 체중이 늘었다. 이유는 점심 급식 메뉴였다. 집에서 한식만 먹던 아이가 매일 학교에서 마카로니치즈·피자·햄버거를 꼬박꼬박 먹기 시작하면서 급작스럽게 체중이 늘어난 것이다. 이씨는 이유를 알아채고 다음 학기부터는 집에서 도시락을 싸주고 있다.
자녀를 학교에 보내는 한인 부모들이 학교 급식과 도시락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
음식의 질이 나빠 아예 학교에서 내놓는 음식을 입에 대지 않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고열량 식단 때문에 비만 아이들도 늘고 있다. 하지만 맞벌이 생활을 하는 바쁜 이민자 부모들에게 아침마다 싸줘야 하는 도시락은 이만저만 부담이 큰 게 아니다. 어디 뾰죽한 해결책은 없을까.
◇점심 한 끼가 하루 권장 열량의 절반=일반적으로 이민 초기에 급격한 체중 변화를 겪는 한인들이 많다. 미국식 생활 습관에 익숙해지면서 자연스럽게 한식보다 열량이 높은 미국식으로 먹는 경우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의 경우는 더 심하다. 7~10세 어린이를 기준으로 했을 때, 남자아이의 하루 권장 열량은 1970kcal, 여자아이는 1740kcal. 미 초등학교의 점심 급식 평균 열량은 821cal로 이중 30%가 지방이다. 이대로라면 점심 한 끼가 하루 권장 열량의 절반을 차지한다는 결론이다.
존스홉킨스 의대 연구팀은 학교 급식이 이대로 간다면 2015년까지 미국 어린이와 청소년 4명 중 1명은 비만이 된다고 예견한 바 있다. 더군다나 대부분의 한인 가정에서는 저녁이 하루 중 가장 많이 먹는 식사라는 것을 감안하면 점심과 저녁만으로도 하루 권장 열량을 훌쩍 넘어버리는 셈이다.
학교 급식은 단순히 고열량만이 문제가 아니다. 단순히 음식 수준이 먹을 만하지 않아서 먹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성장기 자녀들의 건강 관리에 치명적인 허점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브루클린에 사는 애쉴리 아구스토(17)양은 최근 뉴욕 데일리뉴스와 인터뷰에서 “학교에서는 일절 먹지 않고 집에 갈 때까지 기다린다”면서 “급식 음식은 대부분 상했거나 다 익지 않아서 먹기 꺼려진다”고 말했다.
◇냄새나는 한식?= “엄마, 애들이 내 도시락은 냄새 난대요~.” 고열량이든 입맛이든 미국 음식 대신 한식으로 도시락을 싸가는 학생들은 예상치 못한 문제에 봉착하기도 한다. 이른바 ‘냄새나는 한식’ 이슈다.
올 가을 6학년에 올라가는 김주은(뉴저지 클리프사이드파크)양은 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도시락에 김치를 싸가지고 다녔다. 집에서도 한식을 먹을 기회가 별로 없어 학교에서라도 먹겠다며 고집을 피운 것. 친구들은 “냄새난다”며 코를 막았지만, 김양은 “별로 상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요즘에는 입맛이 길들여져 학교 급식을 이용하지만 가끔 도시락을 집에서 가져갈 때는 햄치즈 샌드위치를 선택한다.
그러나 모든 한인 학생들이 김양처럼 이렇게 ‘용감’하지는 않다. 앞서 말한 것처럼 급격히 늘어난 체중 때문에 도시락을 갖고 다니기 시작한 하나양은 볶음밥 도시락을 먹는다. 하지만 학교 친구들이 “냄새난다”고 수근거리는 소리를 듣고 뚜껑을 덮은 채 몰래 점심을 먹으면서 마음고생을 겪었다. 집에 와서 딸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엄마 이은화씨도 마음이 상했다. 이씨는 “안 그래도 냄새난다고 할까 봐 김치는 커녕 야채로만 볶음밥을 만들어 줬는데도 친구들한테 그런 말을 들었다니 속이 상했다”고 말했다.
한인 학생들이 많은 학교에서는 한식에 대한 거부감이 적은 것이 사실이다. 뉴욕 플러싱이나 포트리 학군에서는 점심 시간에 밥과 미역국을 펼쳐놓고 먹는 아이들을 보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한인 부모들은 한인 비율이 높은 학교일수록 아이들도 한식 도시락에 대한 부담을 별로 느끼지 않는 것 같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뉴욕시 급식 바뀐다=그렇지만 도시락 100% 또는 급식 100% 식으로 점심 딜레마를 해결하려는 것은 그다지 이상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또래집단에 민감한 시기라 다른 학교 친구들이 먹는 메뉴를 같이 먹으면서 공감대를 키우는 것 역시 중요하다. 뉴욕시 교육국의 새로운 시도에 희망을 걸어보는 이유다.
시 교육국은 올 가을부터 통밀 파스타를 급식 메뉴에 추가해 채식주의자 학생들을 챙긴다. 교육국의 이런 행보는 미국내 학교들의 전반적인 분위기 변화와 맞물려 있다. AP통신 보도에 따르면, 2003년부터 현재까지 급식에 채식 메뉴를 늘린 학교가 40%나 증가했다. 또 대부분 고등학교이긴 하지만, 두부나 야채버거 같은 앙트레 메뉴에 채식주의 옵션을 넣은 학교도 전체의 20%를 차지하고 있다.
연방 정부도 팔을 걷어부치고 있다. 건강한 급식 메뉴 공급을 골자로 하는 ‘차일드 뉴트리션’ 법안은 2009년 가을에 이미 기한을 넘겼지만, 올해 9월 말까지 연장하는 법안이 통과된 상태다. 이 법안이 다시 통과되면 급식 메뉴에 두유가 포함되는 등 학군 예산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건강한’ 변화가 생긴다. 하나양의 비만 때문에 한식 도시락을 싸줬다가 마음 고생을 해야 했던 엄마의 고민도 한결 가벼워질 전망이다.
<숫자로 보는 비만율>
34% : 과체중 혹은 비만인 뉴욕주 어린이
66% : 과체중 혹은 비만인 미국 성인
50% : 동맥에 지방이 쌓인 2~15세 어린이
35% : 식습관을 이유로 걸린 암으로 사망한 비율
30~50%: 어린이가 일주일에 핫도그 1개 혹은 볼로냐 소시지 2개 섭취할 때 암 발병률을 높일 가능성
(자료: 미암협회)
<이런 도시락 메뉴 어때요>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 주부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도시락 메뉴에 대한 구구절절한 고민들이 올라와 있다. 주부들이 공개하는 도시락 메뉴를 정리한다.
-부리토 : 치즈와 햄, 야채를 또띠야 랩에 돌돌 말고 드레싱은 작은 통에 따로 싸준다.
-돈까스나 치킨까스: 밥이나 빵, 야채와 함께 넣는다.
-볶음밥: 야채·고기 등을 번갈아가면서 볶아준다.
-삼각김밥·유부초밥: 갈비·참치·연어, 닭고기 등을 넣어 단백질을 보충한다.
-파스타와 클램차우더: 보온 도시락통에 따뜻하게 싸준다.
-샐러드: 야채와 메추리알 삶은 것을 함께 섞는다.
-과일: 점심 도시락에 매일 입가심으로 넣어준다.
-탕수육: 닭고기 혹은 쇠고기를 튀겨서 소스와 함께 담아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