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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준 칼럼] 드라마 같은 '한국 인사청문회'

Washington DC

2010.09.03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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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연방 하원의원
대한민국 국회 인사 청문회는 그야말로 흥미진진하다. 야당이 예고편같이 미리 비리들을 산발적으로 터뜨리니까 그 답변이 어찌 나올지 기다려질 수밖에 없다. 후보자의 정책 방향이나 구상 보다는 개인적인 흠집, 비리 등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마치 한 편의 흥미로운 드라마를 보듯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물론 행정부처의 장이 되려면 그에 합당한 자질을 갖춰야 한다. 그 자질은 법적인 것과 도덕적인 것을 들 수 있는데 법적인 문제는 오히려 간단하다. 최소한의 법도 지킬 줄 모르는 전과자가 장관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도덕적 자질이다. 무엇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는가는 그 나라의 문화와 전통에 따라 다소 다를 수 있다. 한국엔 도덕성이 더 중요해 보인다. 그만큼 국민들이 반복되는 지도자들의 비리에 지쳤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지도자들은 국민들, 특히 젊은이들이 존경하고 본받고 싶어 하는 이른바 롤 모델이기 때문에 약간의 도덕적 흠이 있어도 큰 실망감을 주게 된다.

미국 의회에는 상원, 하원 양의회가 있다. 하원의원은 전부 435명, 약 62만 명 인구에 한 사람씩 뽑는다. 그래서 435명에 62만 명을 곱하면 미국의 전 인구 수요가 나온다. 지역구가 없는 의원은 없다. 인구가 많은 캘리포니아, 텍사스, 뉴욕, 일리노이 주 같은 몇 개 큰 주들이 단합하면 의회를 쥐고 흔들 우려가 있기 때문에 상원이 생겼다. 상원은 주가 크건 적건 무조건 한 주에 2명씩, 그래서 전부 100명이다. 어떤 법안이나 반드시 양 의회를 통과해야 된다. 하원은 지역구민들을 대표하기 때문에 주민들의 호주머니 사정, 즉 예산을 먼저 심의하는 권리가 있고 상원은 인사문제 (장관 , 연방 판사 등) 권리가 있다. 대통령은 단지 후보자를 추천만 하고 임명은 법사위원회를 거쳐 상원에서 최종 결정을 한다.

미국 인사 청문회에서는 웃기는 유명한 사건이 한 번 있었다. 바로 현재 연방 대법원의 유일한 흑인 대법관인 클라렌스 토머스에 대한 청문회였다. 이 청문회는 마치 성인영화를 보는 것 같아 텔레비전 시청률이 최고였다. 당시 청문회를 앞두고 아니타 힐이라는 브랜다이스 법과대학의 흑인 여성교수가 의회에 “토머스 같은 사람이 대법관이 돼서는 절대 안 된다”고 주장하는 편지를 보냈다. 힐은 청문회에도 출석해 토머스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고 진술했다. 이때가 1991년 10월 10일이였다. 그 뒤로 청문회는 사흘간 전국에 텔레비전으로 생중계가 되었다.

공화당 의원들은 보수파인 토머스를 감싸줄 목적으로 질문을 시작했는데 아니타 힐에 대한 질문 내용이 걸작이다. “강제로 침대에 끌려갔습니까?” “아니요” “그럼 강제 키스를 했습니까?” “아니요” “그럼 강제로 몸이나 가슴을 더듬었습니까” “아니요” 이때, 벌컥 화가 난 공화당 의원들은 “그럼 무슨 성희롱이오. 우리를 놀리는 거요?” 수백만 명의 미국인들은 텔레비전 앞에 앉아 숨을 죽이고 그녀의 답변을 기다렸다. “전에 토머스와 같은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했는데 자기 성기의 길이가 6인치고 두께가 3인치나 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참으로 기막힌 진술이다. 그러나 전원이 남자인 상원 법사위는 이를 성희롱으로 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토머스의 손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이 결정은 여성단체들을 격분하게 만들었다.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 대법관이 된다는 것은 모든 여성에 대한 굴욕적인 처사라는 주장이었다. 이 때부터 여성단체들은 힘을 합쳐 ‘여성을 의회로 보내자’는 운동을 시작했고, 그 해에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여성이 의회에 진출했다. 전부 남자로만 구성됐던 상원 법사위에는 지금 2명의 여성의원이 있다.

미국에서는 현직 의원이 장관을 겸할 수 없다. 행정부를 감시하는 의회가 동시에 행정기관의 장이 될 수 없다는 게 이유인데, 이는 판사가 동시에 변호사가 될 수 없는 경우와 흡사하다. 이는 삼권분리원칙과 정면으로 상반되기 때문이다.

첫째, 장관이 되려면 의원직을 사퇴하고 새로 특별선거를 통해 후임자를 선출해 인수인계를 한 뒤에 장관 청문회에 나간다. 이는 단 한 시간도 국민을 대표하는 의원 자리를 비울 수는 없다는 원칙 때문이다. 둘째, 장관 후보자에 대해서는 청문회 이전에 면밀한 뒷조사를 한다. 도덕적인 흠이 조금이라도 발견되면 다른 후보를 찾는다. 셋째, 청문회 하기 전에 야당 지도자를 조용히 만나 의견을 들어보기도 한다. 야당 측의 강한 반대가 있을 때는 아예 다른 후보를 물색한다. 넷째, 의회의 결정이 마지막이다. 의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고집을 내세워 장관 임명을 강행할 수는 없다. 이런 기본원칙 때문인지 미국에서는 장관직에 지명된 후보가 이를 사양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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