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人] 어린이 한국어 교육 20년 양미숙씨
"한국어 잘 해 취직한 딸이 고맙다고 하더군요"
정체성 심어주는데 보람 모국어 구사 취업에 유리
2세 한국어 교사 나와야 존댓말로 예의도 좋아져
남가주 한국학원 주말 한국학교에서 킨더가튼 한국어반만 20년 가르쳤다는 비비안 양(양미숙ㆍ50)씨의 목소리다.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졌다. 남가주 한국학원 산하 12개 주말 한국학교 중 한 곳이 운영되고 있는 샌퍼낸도 밸리 그라나다힐스 고등학교를 찾았다. 개학이라 500여명의 학생과 학부모, 선생님들이 반갑게 만나고 있다. 이번 주 ‘사람in’은 20년간 아이들에게 모국어를 심어주고 있는 양 선생님의 토요일을 함께 했다.
-주말한국학교 선생님은 토요일이 없잖아요. 20년이면 가족들이 싫어했을 거 같은데.
"아 그렇네요. 아이들은 한번도 그런 이야기 한 적이 없는데… 아마 아이들도 '토요일은 한국학교'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예요. 첫째 애가 세살 때부터 가기 시작했으니까요. 사실 남편(양만식ㆍ자영업)과 시어머니가 이해 안해주셨으면 못했을거예요. 그런데 다른 훌륭한 선생님들도 많은데 제가 왜 인터뷰 대상이 됐는지…."
-(사람in은 질문 받는 경우도 많다) 킨더가튼 한국어반만 20년째인데 새싹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계시잖아요. 킨더가튼반만 고집하신 이유가 있나요?
"고집한 건 아니고(웃음) 제가 유아교육을 전공했어요. (LA 스테이트 프리스쿨 수퍼바이저를 했고 국제성서대학 유아교육과 교수다). 그런데 애들한테 한국말 가르치는 걸 꼭 하고 싶은 겁니다. 아이들과 한국어 이 두개가 만나는 곳이 킨더가튼 한국어반이더라구요."
-아이들과 함께하려면 지긋한 인내심이 많이 필요할텐데.
"음 저는 그냥 재밌어요. 근데 이 킨더가튼 한국어반에는 좀 색다른 애착이 있습니다. 뭐냐면… 아이들이 세상과 사회와 친구를 처음 만나는 곳이 킨더가튼이거든요. 그때부터 아이들의 사회와 아이들의 사회생활이 시작되는데 그곳에서 한국어와도 처음 만나게 되는 겁니다. 아이들이 한국어와 처음 만나는 그 곳에 제가 있고 싶었어요."
-어릴 때 한국어를 배우는 것이 사회생활에 도움이 될까요?
"그럼요. 우리 문화를 잘 담고 있죠. 특히 '드셨어요. 오셨어요' 이런 존댓말은 한국이 어른을 공경하는 멋진 문화를 가진 나라라는 걸 잘 보여줍니다. 어린이가 한국어 존댓말을 배우고 나면 영어에는 왜 존댓말이 없는지 생각하게 되고 존댓말 대신 모습으로 공경하는 걸 보여줍니다. 타인종 부모들로부터 한인 어린이들 칭찬을 제가 많이 들어요(웃음)."
-킨더가튼 한국어 교사 20년 세월에 변한것도 많을텐데요.
"부모님들 트렌드가 바뀌네요. 20년간 대충 3단계 정도 변화가 있었던거 같은데. 처음에는 자녀들 영어공부에 올인하는 분위기였던 것 같아요. 그때는 한국학교에서 친구와 놀게 하려고 보내는 분위기였습니다. 부모님들이 교대로 한분씩 어린이 대여섯명을 데리고 오고 다른분들은 일하죠. 한 10년전부터는 1세 학부모들이 좀 달라지셨어요. 모국어를 모르면 안된다 너의 정체성은 한국계 미국인이다 나하고 소통도 한국말로 해야 한다 이런 분위기였습니다. 지금은 1.5세 2세 학부모들도 많아요. 본인들도 한국학교에서 배웠지만 영어가 편합니다. 그런데 애들한테 한국말을 가르쳐야 된다는 분위깁니다. 그래야 글로벌 시대를 살수 있다는거죠."
-20년이면 이런저런 일도 많았을텐데
"테네시주 시골에 살다가 온 다섯살짜리 꼬마였는데 처음에 울고불고 난리가 났어요. 태어나서 처음 노란색 피부의 꼬마들을 본 거예요. 부모님 말을 들어보니 몇년 뒤에 자기 머리는 노랗게 되고 얼굴은 하얗게 될거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었다더라구요. 그래서 부모는 '이거 안되겠다' 해서 LA로와 한국말부터 가르치게 됐답니다. 다행히 그 꼬마는 자기가 하얗게 되지도 않고 돼 봤자 별것 없다는 걸 알게됐어요. 그 다음부터 애들하고 너무 잘 지냈어요."
-2세들 한국어 교육이 중요하다는 말은 많이 듣는데 피부에 와 닿게 좀 말씀해주시죠.
"제일 중요한게 정체성이죠. 지금 그냥 미국인으로 통칭하지만 좀 더 가면 유럽계 중동계 아시아계 다 다르잖아요. 다양한 사회에서 한국계 미국인이라는건 큰 장점인데 그 문화를 몸에 녹이고 있으면 더 좋죠. 음 제 딸(양혜은ㆍ23)이야긴데 UC버클리를 졸업하고 뉴저지쪽에 가 있어요. 한국어가 능숙한 편입니다. 요즘 취직 안된다고 난린데 얼마 전에 취직이 됐다고 알려왔어요. 축하한다고 했더니 나더러 오히려 고맙다고 하는 거예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한국말을 잘 쓰고 읽을줄 아는 게 취직하는데 큰 도움이 됐대요. 세계에서 제2외국어를 가장 못하는 나라가 미국이라는 조사도 있잖아요. 우리한테 한국어는 제2외국어가 아니라 모국어죠. 모국어는 가슴에 지니고 영어는 기본으로 하고 제2외국어까지 한다면 우리 아이들이 세계 최고가 될겁니다."
-앞으로 하고 바라는 게 있다면.
"1.5세나 2세 한국어 선생님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남편이 '물러날 때 되지 않았냐. 너무 장기집권한다'면서 놀리는데 2세들이 한국어를 가르치는 걸 보면 얼마나 뿌듯할까 생각이 듭니다."
■양 선생님의 한마디…"'엄마 아빠 두 개 있다'고 해도 야단치지 마세요"
1. 말할때 기죽이면 안되요= 말을 배울 때 되든 안되든 무조건 떠들라고 하죠. 그래야 느는데, 윽박지르면 주눅듭니다. 아이들이 ‘방에 아빠하고 엄마하고 두개가 있어요’라고 말하더라도 윽박지르면 안됩니다. ‘엄마하고 아빠하고 두명이 있어요?’ 이런식으로 자연스럽게 고쳐주면 알아듣습니다. 야단맞고 주눅드는 순간부터 애들은 입을 닫습니다.
2. 영어로 한국어로 두번 말해주세요= 마켓에서 아이가 ‘엄마 캐롯’하면, 자연스럽게 ‘응 캐롯, 당근이야’이렇게 말해주시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외우게 된답니다.
3. 단어를 많이 알게 해주세요= 영어 단어를 따로 외웠듯이 단어만 많이 알면 한국어가 빨리 늡니다. 귀찮지만 위에 말한 것처럼 영어, 한국어 번갈아 말해주고, 냉장고나 어디든지 영어 한국어 단어를 붙여주세요.
4. 부모가 한국어 교육에 관심이 많다는 걸 알게 해주세요=‘한국학교 가자’, 또는 아이들이 있는 자리에서 아내가 남편에게 ‘여보, 이게 한국말로 뭐지’ 등 부모님들이 한국어에 관심이 많다는 걸 지속적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만난 사람=천문권기자 [email protected]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