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필귀정'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자성어다.'모든 일은 반드시 바른길로 돌아간다'는 뜻의 이 사자성어에 내가 힘을 얻는 것은 돈 없고 빽 없으면 살아가기 힘든 세상살이에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금의 기질'을 갖고 있는 나는 한번 마음을 정하면 바꿀 줄을 모른다. 그러니 변화를 요구하는 현대를 살아가기엔 애로사항이 한 둘이 아니다.
뜻은 있지만 무뚝뚝하기 이를 데가 없고 남의 말을 잘 따르지 않으니 처세술이라곤 거의 빵점에 가깝다. 그런 내게 위로를 주는 말이 바로'사필귀정'인 것이다.
곱씹고 또 곱씹어 봐도 이 글귀처럼 나를 격려해주는 말은 없는 것 같다. 조급해 하지 않는 것도 그 이유이고 잠자코 때를 기다리는 것도 그것 때문이다. 설사 억울한 소리를 들어도 마음에 흔들림이 없는 것은 세상은 반드시 자기의 길로 돌아가기 마련이라는 자연의 이치 때문이다.
하지만 이치대로 따진다면 어진 사람은 하늘의 축복을 받아 평탄하게 살아야 하고 포악한 사람은 벌을 받아 요절해야 하는데 실상을 그렇지 않다.
오히려 잔인한 사람이 오래 장수하고 착한 사람이 일찍 죽는 경우도 허다하니 도무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헷갈린다.
요즘 쏟아져 나오는 부자가 되는 지침서에 어떤 책에는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무자비해야 한다'를 첫 번째 조건으로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어리버리하게 '어'하고 입만 벌리고 있다가는 있는 밥그릇마저 빼앗길 정도로 세상은 야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돈이라는 물질은 자제하기 힘들 정도로 욕구를 자극한다. 남보다 내가 덜 가졌다는 결핍은 존재의 위기이며 엄청난 스트레스다. 자연히 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능력 밖의 것을 넘보게 되고 그러다보면 어느새 탐욕의 자리에 앉아있게 된다.
가진 자는 더 소유하길 원하고 있는 것도 만족할 줄을 모르는 욕망의 가속도는 파멸을 맞게 되어야 비로소 멈추게 되니 그 욕망의 굴레에서 초연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최근에 자신의 딸을 특채 시켰던 아버지의 그릇된 부정이 빚어낸 사태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자녀에게 좋은 것을 베풀고 싶은 부모의 사랑이야 충분히 동정은 가지만 한 나라의 장관이라는 직책조차 무색하게 만드는 처사는 순리를 거스르는 일이고 결국 공직에서 물러나야 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으니 그것이야말로 바른 길로 돌아간 거라고 볼 수 있다.
장관이라는 자리가 아무나 오를 수 있는 자리도 아닌데 그 능력을 다 발휘하기도 전에 물러난 것은 평소의 뜻을 바르게 두지 못해 생긴 자업자득이 아닐 수 없다.
'하늘과 땅은 사람의 형체이고 사람은 하늘과 땅의 마음이라. 죽고 사는 것은 하늘에 달려있지만 선과 악을 택하는 것은 사람에게 달렸다'는 율곡 선생의 논제를 읽으며 인간의 수명은 하늘에 달려있지만 몸을 닦아 수양을 하면 절명의 기운도 다스릴 수 있다는 글귀에 고개를 끄덕여본다.
세상 되어지는 일이 잔머리나 줄타기가 아니고 바른 기운에서 시작된다는 낡은 고사성어가 오늘 아침에도 허약한 내 발목을 붙들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