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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속의 뉴스] 휘청거리는 로스 알라모스 연구소

Los Angeles

2000.06.20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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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엔 ‘죽음의 연구소’라는 곳이 있다. 핵폭탄을 만들거나 관련 연구를 하는 곳이다. 전국 각지에 수십개나 되지만 이중 ‘빅 9’을 가리켜 죽음의 연구소라고 부르는 것이다.

가장 널리 알려진 곳은 뉴 멕시코주의 로스 알라모스 국립연구소. 몇해전 중국계 핵물리학자가 대륙간 탄도탄의 기밀을 중국측에 넘겨줬다는 보도가 나와 미국은 물론 전세계를 놀라게 햇던 곳이다. 지난 달에는 뉴 멕시코를 휩쓴 산불로 엄청난 피해를 입기도 했다.

로스 알라모스는 미국의 극비 기지중의 하나. 일본에 원자탄을 투하하기전 핵실험을 했던 곳이다.

지난 14일에는 로스 알라모스가 또다시 미국신문의 1면 머릿기사를 장식했다. 핵무기 제조 기밀이 저장된 컴퓨터 하드 드라이브 두개가 감쪽같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FBI가 거짓말 탐지기 까지 동원하는 소동을 벌인끝에 일단은 6명의 과학자와 테러방지 팀장을 징계처분하는 것으로 잠재웠지만 이 기밀문건을 되찾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모양이다.

이 컴퓨터 자료가 스파이를 통해 미국의 잠재 적국에 흘러들어가면 핵무기 정책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것으로 보인다.

요즘은 로스 알라모스 뿐만이 아니다. 다른 죽음의 연구소들도 보안이 허술하기는 마찬가지다. 옛 소련의 붕괴로 냉전시대가 끝나자 죽음의 과학자들은 사기가 저하됐는지 여기저기서 구멍이 뚫리고 있다는 것이다. 한때는 국가안보를 책임맡고 있다는 사명감으로 자부심이 대단했지만 예산이 깍여 언제 ‘핑크 슬립’을 받게될 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른바 해고 통보다.

2년전엔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자 미국의 방위산업이 한때나마 다시 붐을 일으킬 조짐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역사적인 남북한 정상회담으로 ‘빅 9’은 다시 휘청거릴게 틀림없다.

미국의 ‘빅 9’은 과연 어떤 곳인가. 또 어떤 연구를 하고 있는가. 로스 알라모스 사건을 계기로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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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연구소’는 모두 연방정부가 주인이다. 흔히 국방부가 관장하는 곳으로 알고 있겠지만 실은 에너지부 소속이다. 항공우주국(NASA)도 산하기관이어서 에너지부는 중앙정보국(CIA) 못지 않는 비밀부서다.

그러나 소유권은 연방정부가 갖고 있지만 운영은 대학의 소관이다. 정부는 필요한 예산과 지침만을 제공할 따름이다. 모든 연구 개발은 대학이 주도권을 잡고 집행한다. 한예로 패사디나의 제트추진연구소(JPL)는 실제 주인이 NASA이지만 운영은 캘텍이 맡고 있다. 주인 따로 운영 따로가 미국의 연구소들이다.

‘빅 9’중 진짜 죽음의 연구소는 로스 알라모스와 로렌스 리버모어, 그리고 로렌스 버클리의 세곳이다. 이 연구소를 운영하는 대학이 바로 UC다. 버클리가 이니셔티브를 쥐고 핵무기를 개발, 제작하고 있는 것이다.

UC와 죽음의 연구소

처음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어니스트 올랜도 로렌스.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버클리 교수다. 로렌스 버클리는 대학 캠퍼스내에, 로렌스 리버모어는 버클리에서 약 40마일 떨어진 곳에 있다. 두 연구소 모두 이 교수의 이름을 따 만들어진 것이다. 로스 알라모스만 뉴 멕시코주에 있을 뿐이다.

기능도 각기 다르다. 로렌스 버클리는 핵물리학과 입자 물리학이 전문으로 연간 예산은 3억1,000만달러. 핵무기 제조와 관련된 이론적 바탕을 제공하는 연구소다.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버클리 교수 5명이 직·간접으로 관련하고 있다.

로렌스 리버모어는 일반인들에겐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연구소다. 중무장한 경비원들이 24시간 감시하고 있어 1급비밀 취급인가를 받지 않은 사람은 출입이 금지된다.

연간 예산은 무려 12억달러. 과학자를 포함한 직원은 8,000명. 연구 뿐만아니라 실제 핵무기도 만들어내는 곳이다. 로스 알라모스의 연간 예산 12억4,000만달러에 약간 못미치는 수준이어서 로렌스 리버모어의 규모를 짐작할만 하겠다.

로스 알라모스의 직원은 7,200여명. 핵무기를 직접 만들고 실험을 하는 곳이어서 각국의 스파이들과 테러단체들이 눈독을 들이는 핵기지다.

세 연구소의 운영은 전적으로 UC 대학측의 소관이다. 소장을 비롯해 간부들의 임명도 UC 권한이다. 연방정부가 실제 주인이지만 대학측에 전권을 위임한 것이다.

뉴 멕시코주의 앨버커키에 있는 샌디아(Sandia)는 중성자탄 제조와 핵탄두 운반체제, 안전과 군 요원 훈련이 주임무다. 연간예산은 9억8,000만 달러. 처음엔 역시 UC가 운영을 맡았지만 지금은 미 최대의 방위산업체인 록히드 마틴이 관장하고 있다.

록히드 마틴은 테네시의 오크리지 연구소도 운영하고 있다. 단일 연구소로는 최대 규모로 13억달러의 예산에 직원이 1만5,000명이나 된다.

동부의 명문대학중에는 시카고가 두곳(아곤과 아이다호 국립 엔지니어링 연구소)을 운영하고 있지만 규모면에서는 UC에 훨씬 못미친다.

아이비리그 대학과 MIT 등이 콘소시엄을 이뤄 운영하는 브룩헤이븐 국립 연구소(뉴욕의 롱아일랜드 소재)는 연간 예산이 3억7,000만달러, 직원은 3,100명 수준이다.

‘죽음의 연구’는 대체로 버클리를 주축으로 한 UC계열 대학이 맡고 있는 셈이다. 이쯤되면 산학협동체제가 아니라 대학이 아예 대량살생무기 청부업자로 나섰다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비난을 살 법도 하지만 대부분의 캘리포니아 주민들은 대학과 이들 연구소와의 관계를 제대로 모르고 있다.

로렌스 리버모어 연구소

‘빅 9’중 가장 특이한 곳은 로렌스 리버모어. 핵무기 제조 뿐만아니라 핵융합, 인간 지놈 연구까지 손을 대고 있다.

핵융합은 한때 김영삼 전대통령이 미국 공식방문중 한국도 2000년부터는 핵융합을 본격 연구해 에너지 자원을 확보하겠다고 밝혀 망신을 당했던 최첨단 물리학 분야다. 이미 미국의 과학계는 핵융합을 거의 포기한 상태다. 현재의 인간두뇌로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현재 리버모어가 개발을 서두르고 있는 분야는 레이저 빔. 핵은 폐기물이 지구 환경을 오염시켜 피해가 심하지만 레이저를 사용하면 핵 못지 않은 폭발을 일으켜 대량살생무기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함께 레이저를 평화목적으로 이용하면 대체 에너지로도 쓸 수 있어 과학자들은 이를 ‘꿈의 에너지’라고 부른다.

2년전엔 연방 에너지부가 레이저 연구기금으로 12억달러를 리버모어에 투입, 요즘 연구가 한창 진행중이다. 레이저 프로젝트에 소요되는 총 예산은 45억달러.

에너지부의 예산이 크게 줄어들었지만 이들 ‘빅 9’에 쏟아 붓는 돈은 한해 60억달러. NASA의 35억달러에 비교하면 아직도 엄청난 예산을 배정받고 있는 셈이다.

한때 핵탄두를 만들어냈던 미국의 고급두뇌들은 요즘 레이저 뿐만아니라 인간 지놈, 지구온난화 현상, 암세포 탐지 연구를 하고 있다.

기업측으로 부터도 계약을 따내 초고속 컴퓨터, 초정밀 광학기기 등을 만들어내 연방정부의 예산삭감을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다.


수퍼 컴퓨터

핵무기 개발은 그 자체가 컴퓨터 역사다. 컴퓨터 기술없이는 개발이 어렵기 때문이다. IBM이 만들어낸 컴퓨터로 로스 알라모스의 과학자들은 처음으로 수소폭탄을 제작할 수 있었다.

UC 대학측은 현재 세계 최초의 초고속 수퍼 컴퓨터를 개발중이다. 96년과 98년사이에 들어간 예산만 거의 5억달러에 이른다.

IBM과 인텔, 실리콘 그래픽스 등 민간기업과 함께 개발중으로 현재 나와있는 초고속 컴퓨터보다 스피드가 거의 10배나 빠른 기종이다.

이 수퍼 컴퓨터는 ‘3-D’ 시스팀으로 알려져 있다. 이른바 3차원의 컴퓨터로 핵실험을 컴퓨터 스크린에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수퍼 컴퓨터가 개발되면 전국의 명문대학에 이를 보급, 핵무기는 물론 레이저 폭탄 제작과 관련된 물리학의 제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할 계획이다. 네바다 사막에서 핵실험을 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 된다는 것이다.


박용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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