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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피터의 법칙’

New York

2000.06.27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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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학생이 꼭 유능한 교사가 된다는 보장은 없다. 남의 지식을 습득하는 능력과 남을 가르치는 능력은 별개이기 때문이다.

교실에서 큰 능력을 발휘하던 교사가 승진하여 무능한 교장으로 변신하는 경우도 많다. 이 불행한 교장은 학생을 가르치는 능력은 특출했었지만, 말 많은 선생들을 끌고 나가는 지도력과 요망사항이 많은 학부형을 요리하는 설득력을 못 갖추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현재의 위치에서 유능했던 사람들이 승진하면 무능해지는 경우가 우리 사회에 허다하다.

승진이 되어야할 사람이 승진이 안 되면 불행한 개인을 만들지만, 높은 자리에 긴요한 능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승진하면 불행한 사회를 만든다. 피터의 법칙(Peter Principle)에 따르면 ‘조직사회의 모든 구성원은 무능한 자리에 오를 때까지 승진을 계속한다’고 하니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그의 법칙을 달리 해석하면 ‘어느 순간에는 무능한 조직원으로 모든 자리가 채워지지만, 실제의 업무는 승진을 못하여 아직 유능한 조직원에 의하여 처리된다’는 역설이 된다. 승진을 못한 사람이 무슨 결정을 내릴 수 있으며, 어떻게 성심을 다하여 일하기를 기대할 것인가? 그들은 퇴보하는 사회를 재촉할 뿐이다.

한때 조국이 국가부도를 당할 뻔했던 이유도 피터의 법칙으로 설명된다. 군사정부에서는 퇴역 장성들이 장차관, 국영기업체장으로 낙하산 발령을 받아 무능으로 흥청거렸고, 문민정부에서는 신세 갚겠다고 이놈저놈 불러들여 무능한 장관을 만들고 스스로 무능한 대통령들이 되었건만, 집권 말기의 대통령들은 피할 수 없는 권력 누수현상이라고 자위했다.

이들은 한 고리대금업자가 국가기간산업의 총수가 되는 것도 방치했다. 한편 재벌 창업총수들은 고령화하여 국제화 시대에 대비하는 감각과 순발력을 잃었고, 전문성이 미흡한 2세들의 자리 계승은 기업의 경쟁력을 상실케 했다. 무력한 정부가 기껏 한 일은 IMF에서 고금리로 돈을 빌려다 무능한 기업들의 도산을 연기시킨 것이다.

“억울하면 출세를 하라”는 김용만의 ‘회전의자’를 즐겨 부르는 한국인이 아닌가. 승진을 사양하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 너나 나나 “자식들 교육 때문에 이민 왔다” 하면서 교육재단 모금행사는 썰렁해도 모국 정치인 후원행사는 북적대는 것을 보면, 뉴욕동포들의 명예욕, 출세욕은 아마도 변함 없나 보다.

개인업소를 땀으로 잘 꾸려 성공한 동포들은 골프장, 식당에 모이면 새 조직체를 구성하여, 임원, 이사, 단체장의 이름으로 지상에 크게 공개되곤 했다.

단체장 하면 한인회장 되는 것도 아니고, 한인회장 되면 한국 가서 한자리 보장받는 것도 아니건만, 지역단체, 직능단체 수는 이민교회 수에 뒤지지 않는다.

다른 민족들의 단체나 종교기관들의 성과에 비교하여 초라하고 미약하다면, 단체뿐만 아니라 단체장들도 무능의 단계에 오른 것이라고 생각된다.

피터의 법칙을 뒤집으면 “승진, 승급을 사양하면 개인의 불행은 물론 조직의 퇴보도 막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성립된다. 뉴욕한인봉사실의 강석희 실장은 지난 30년간 이민자들을 위한 다방면의 봉사생활을 해온 공로를 인정받아 앨리스 아일랜드 상을 받았다.

주님 사업에, 북한의 국수공장 운영에 너무 바빠 출세할 틈도 없는 박창득신부는 교황청으로부터 몬시룔이라는 귀한 칭호를 받았다. 본인들이야 극구 사양하겠지만, 이처럼 잠재력을 가진 사람들을 설득하여 단체장으로 모시고 서로 배워가며 협조하는 풍토가 조성되길 기대한다.

최근에는 존립이 위협받던 교회들의 통합이 보도되었고, 서로 유사한 일을 하던 뉴욕상공회의소와 뉴욕한인경제인협회의 통합이 실현되었다. 유명무실한 단체들의 통합이 뒤따를 것이 예상된다. 자신을 죽이고 통합의 결단을 내린 단체장들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한편 남북정상회담은 양쪽 총수들의 통일역량을 확인한 것이 최대 수확이라 하겠다. 남북 지도자들도 더 이상의 소유욕과 명예욕을 절제한다면 남북통일은 예상보다 빨리 오리라. 통일조국을 끌어 갈 동량(棟梁)을 키우는 일에 동포사회도 한 몫 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윤광선 <페어리 딕킨슨 대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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