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아홉살. 살아있는 것만도 힘겨운 나이다. 그런데 그 나이에 시집을 냈다. 그것도 평생 처음 낸 시집이다. 그리고 그 시집은 출간 6개월만에 일본에서 70만부가 넘게 팔렸다. 올해 일본 출판계 최고의 스타가 된 99세 할머니 시인 시바타 도요 얘기다.
평생을 글쓰는 일과는 무관하게 살아온 할머니. 시 쓰는 법을 배워 본 적도 없다. 90 넘어 거동이 불편해진 할머니가 노년의 즐거움으로 삼았던 춤을 출 수 없게 되자 아마추어 시인인 아들은 소일거리로 할머니에게 시를 써볼 것을 권했다. 그때가 92세때 였다고 한다.
시바타 할머니는 밤마다 시를 썼고 토요일이면 찾아오는 아들에게 자신이 쓴 시를 보여줬다. 그리고 함께 얘기를 나누며 시를 다듬었다고 한다. 할머니가 쓴 '추억Ⅱ'라는 시다.
'아이와 손을 잡고/ 당신의 귀가를/ 기다렸던 역// 많은 사람들 속에서/ 당신을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죠// 셋이서 돌아오는 골목길에는/ 물푸레나무의 달콤한 향기/ 어느 집에선가 흘러나오는/ 라디오의 노래// 그 역의 그 골목길은/ 지금도/ 잘 있을까'
단순하다. 시라기 보다는 산문에 가까운 두어 문장. 그런데 거기에 한동안 마음이 머문다.
그랬다. 이만큼 살고나서야 알게 됐다. 어려서 어른들 하신 말씀 이 다음에 크면 좋은 사람 만나서 오순도순 아들 딸 낳고 잘 살라고 하던 그 말씀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 사람 사는게 별게 아닌데 무슨 대단한 것이 있는 줄 알고 밖으로 헤매고 다녔으니 이제라도 나의 그 향기 그 노래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된 것이 그저 고맙다.
시바타 할머니는 초등학교를 겨우 마쳤다. 음식점과 여관에서 허드렛일을 하다 요리사 남편을 만나 외아들을 낳았고 집에서 재봉일을 하면서 가난한 살림을 꾸려온 우리 주변의 많고 많은 장삼이사 중 한사람이었다. 그런데도 그의 시가 사람들 마음에 가 닿은 것은 100년 가까운 세월 온갖 풍상을 묵묵히 견디면서 살아낸 이가 인생에 대해 들려줄 수 있는 평범하지만 소중한 진리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나는 말이예요 사람들이/친절히 대해줄 때마다/마음 속에 저금해 두고 있어요//외롭다고 느낄 때는/그것들을 꺼내/힘을 내지요//당신도 지금부터 저금해봐요/연금보다/나을테니까요'(저금)
할머니의 시가 처음 활자로 인쇄된 것은 일간지 독자들의 시 투고란에 실리면서다. 매일 게재되는 '아침의 시' 코너를 맡고 있던 담당자가 할머니의 시에 반해 시집출판을 적극 권했고 할머니는 자신의 장례비용으로 준비해놓았던 100만엔을 아들에게 건네면서 시집을 내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해서 편지봉투 크기에 표지도 없는 첫 시집이 세상에 나왔다.
하지만 정식 출판된 책이 아니기 때문에 서점에는 진열되지도 못했다. 주문이 오면 한권에 500엔씩 받고 우편으로 부쳐줬다. 그런데 초판 3000권이 1주일 만에 다 팔렸고 다시 또 찍어서 몇천권을 팔았고 그러다 한 출판사의 제안을 받고 지난 3월 정식 시집을 내놓게 됐다.
흔히 우리네 삶을 한편의 드라마 혹은 연극이라고 말한다. 인생이라는 것이 각자 자기나름의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나의 40여년 스토리를 되돌아본다. 소설책 한권 분량은 족히 될 것이라고 큰소리 쳤던 것들이건만 재미없다. 감동도 작은 지혜도 없다. 아직 얼마나 더 써넣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드라마의 재미가 막바지 반전에 있는 만큼 아직 기회는 남아있다.
99세 할머니 시인이 해준 얘기다. ''인생이란 언제라도 지금부터야. 누구에게나 아침은 반드시 찾아온다…괴로운 일도/ 있었지만/ 살아 있어서 좋았어/너도 약해지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