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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人] '라티노 50년 인생' LA한인노동상담소 최광능 소장

"라티노 절대 무시하지 마세요, 함께 가야 합니다"

스무살에 엘살바도르 유학, 중남미 첫 태권도 사범 활약…내전 피해 LA로 새터전 마련
"책임 의식 희박하지만 한없이 순박한 사람들…함께 가는 길 모색해야"
언어에 대한 자부심 대단…정치력도 급격하게 커져


그의 삶 속에 있는 일과 가정, 이 두개의 큰 기둥에는 오늘도 라티노와의 인연이 면면히 흐르고 있었다.

최광능씨의 50년 속에는 라틴 아메리카 유학을 이끌어 준 스페인어가 있었고 라티노와 편한 인연을 맺게 해준 태권도가 있었다. 부인도 엘살바도르 출신이다. 비즈니스 할 때는 라티노 파트너와 고객 현재는 라티노 클라이언트들과 일상을 같이 한다.

부산 경남중.고등학교를 거쳐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를 졸업한 1966년. 같은 해 엘살바도르 국립대학 법학과에 입학 허가를 받았다. 혈혈단신 중남미 작은 나라 엘살바도르에 도착했다.

국제법을 전공해 변호사 중 최고의 '중남미 통'이 되겠다는 꿈이 있었다. 멀리 꼬레아에서 온 법대생은 3년간 학교 교양과목 태권도 교수도 했었다. 중남미 최초의 태권도 사범이 된 셈이다.

-태권도 교수라니요?

"당시 유학은 전부 문교부(현 교육부)에서 시험을 쳐야했습니다. 국비유학 아니면 해당학교 전액 장학금을 받아 나갔는데 생활비가 따로 필요했어요. 그래서 돈 벌만한 걸 배워서 나가는게 유행이었어요. 하나는 태권도 하나는 병아리 감별사였습니다. 저는 부산 무도관 공인 초단이었습니다. 우리 전통무도를 보급하면 좋겠다는 애국심도 있었죠. 그래서 도복과 검은 띠도 가져갔어요. 학교에서 사람들 앞에서 격파 시범도 보였는데…. 그런데 엘살바도르 벽돌이 엄청 크고 두꺼운거예요. 지진 때문에 벽돌이 크다는데 딱 놓고 내려치는데 이거 못 깨면 어쩌나 걱정 많이 했습니다. 다행히 격파했죠. 엘살바도르 사람들 마음의 벽도 함께 허물어지는 걸 느꼈습니다. 그게 소문이 나면서 태권도가 학교 정식 체육 교양과목으로 채택됐습니다."

-그 당시 유학갈 때 부업거리로 병아리 감별도 배웠다는 게 재밌네요.

"병아리 감별은 한국사람들이 세계 최고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손 감각이 좋아서 그런 것 같은데 어떤 유학생은 그 나라 최고의 병아리 감별사가 됐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 있습니다."

-엘살바도르 대통령이 태권도를 배웠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당시 산체스 대통령이었는데 그건 아니고 대통령 자녀들이 배운 적이 있죠. 대통령 경호원들도 6개월 가르쳤고 육군사관학교 학생들도 3개월 정도 가르쳤습니다. 한국에 경호원이나 장교들은 특공무술 정도는 기본으로 하는데 그때 엘살바도르 경호실은 그게 아니었죠."

-중남미에 최초로 태권도를 보급하면서 쉽게 친해지신 거네요.

"그때 휴직 중인 조선일보 기자가 중남미를 순회하다 절 만났어요. 1966년 11월에 한국에서 신문에 난 적이 있습니다. 저도 몰랐는데 '최초'라고 하더군요."

-부인도 격파하는 모습에 넘어가신 건가요?

"그런 측면도 있지 않았을까요(웃음) 제 집사람은 그때 선생님이었고 야간에 심리학과 대학원에 다니고 있었어요. 근데 처제가 저하고 같이 법학과였어요. 저는 일과 끝나고 집사람은 수업들어가기 전에 식당에서 계속 만나지는 겁니다. 친해졌죠."

부인 루즈 아메리카 최(66)씨는 엘살바도르 인이다. 현재는 LA통합교육구 학부모 컨설팅 담당자로 일하고 있다.

그는 부인을 '바다와 같은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라티노와 국제결혼 1호일지도 모를 부인과의 러브스토리로 더 들어가봤다.

-한눈 안 팔고 바로 대시 하셨나요?

"아닙니다. 제가 태권도도 좀 하고 그래서 인기가 많았어요(웃음). 그때는 '결혼은 한국사람하고 해야 된다'는 인식이 지금보다 더 했죠. 저는 또 유학생이라 당연히 한국 부모님들에게서 허락이 나질 않았죠. LA 와서 한국 여자를 찾아본 적도 있는데 1968년인가 이때는 LA에도 한국사람 보기가 어려웠습니다. 집사람과 친하게 지내다 보니 정도 들고 마음이 참 착한 겁니다. 참 동양적이고 바다 같은 사람입니다…. 저희 집안을 잘 설득해서 결혼에 골인했는데 벌써 40년이 됐네요. 참 세월은 빠릅니다"

자녀들이 궁금해졌다. 흔하지 않은 코리안라티노 자녀들은 스패니시 이름과 한국 이름을 함께 갖고 있다. 딸 루즈 미림 최(40)는 소아과 전문의 아들 서지오 단일 최(36)은 영화사에서 컴퓨터 그래픽을 하고 있다.

-자녀들 기질이나 스타일은 독특할 것 같은데 어떤가요.

"한국과 라틴 스타일이 두개가 잘 섞인 미국식이라고 할까요. 딸은 좀 더 한국적입니다. 병원에서도 미림 최로 불리고 김치와 된장찌개를 잘 먹죠."

엘살바도르에서 잘 살고 있다 왜 미국으로 왔는지도 궁금해진다.

1980년부터 로메로 주교 암살로 시작된 엘살바도르 내전이 일어났단다. 1992년까지 계속된 내전으로 인구 600백만명중 40만명(비공식 집계)이 사망했단다. 엘살바도르 국민들은 나라를 등졌고 최광능씨 가족도 이때 LA로 이주하게 된다.

-LA로 와서 막막했겠습니다.

"꼭 그렇지도 않았어요. 외국 첫 생활이 LA였어요. LA에서 학교 서류받고 엘살바도르에 들어갔고 가끔 LA에 왔었습니다. 고향같았죠. 달라진 게 있다면 그때부터 비즈니스를 해야 했어요."

LA와 텍사스 휴스턴 라레도에서 비즈니스를 했다. 라틴과의 인연은 거기서도 이어진다. 절친한 파트너와 최고의 고객 모두 라틴계들이었다. 라틴 아메리카 진출을 위해 KOTRA(대한무역진흥공사)가 설치한 한국상품센터의 부소장직도 지냈다. 최광능씨를 둘러싼 모두가 라티노와 관련이 있었다. 50년간 느끼고 살아온 그만의 시각이 있을 법 했다.

-스패니시나 라티노는 본인에게 어떤 의미입니까?

"(잠시 생각하다)우연히 만났다 인연이 됐고 이제는 필연이 됐습니다. 집사람도 아이들도 내 파트너도 클라이언트도 모두 라틴아메리카와 관련 있으니 말입니다."

-지금 미국에 사는 우리에게 라티노란 특별한 존재인데.

"저에겐 직접적 존재이고 한인들에겐 뗄 수 없는 존재 아닙니까. 여러 민족과 더불어 살아야하는 한인들에겐 라티노들이 가장 좋은 파트너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미 그렇기도 하구요."

-한인들과 라티노들은 기질이 비슷한 데가 있죠.

"정서가 많이 비슷합니다. 부모나 자녀들에 대한 생각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문화 정이 많은 사람관계…이런 게 비슷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대체로 즉흥적이고 다혈질적이죠. 차분하고 계산적인 한인들과는 그런 면에서 차이가 많다고 할 수 있죠."

-불성실하다든지 노는 걸 좋아한다든지 하는 부정적인 생각도 있습니다.

"책임감이 떨어진다는 생각을 많이들 하시죠. 한인들은 책임감이 강합니다. 그런데 라티노들은 정말 순박합니다. 한인들은 좀 그렇지 못한 부분이 있어요. 그래서 절묘한 하모니가 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라티노들은 한인들이 그들을 무시한다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는 걸로 압니다.

"좀 가난하고 교육수준도 떨어집니다만 자부심은 대단합니다. 특히 언어에 대한 자부심이 많습니다. 절대 무시하지 말고 인간적인 정을 맺으면 이 친구들 오래 갑니다.라티노들의 정치력도 엄청나게 커지고 있습니다. 함께 갈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좋은 파트너가 될겁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최씨와는 이틀에 거쳐 5시간 만났다. 라티노에 대한 그의 진정성을 읽을 수 있었다. 라틴 문화에 대한 애정도 대단했다. 그와의 만남을 통해 한인들의 가장 가까운 이웃인 라티노들을 더 가까이 바라보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난사람=천문권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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