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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광저우] 국가대표 22년 박병택, 금빛 메달 목에 걸고 "이제 그만 물러갑니다"

아시안게임 6회 출전
44세 사격 베테랑
메달 19개 따고
대표팀서 '아름다운 퇴장'

“이제 더 이상 (국제대회) 시상대에 오를 수 없어 마음이 찡하네요.”

 베테랑의 마지막 투혼은 멋졌다. 마흔을 훌쩍 넘긴 사수 박병택(44·울산시청)은 이번 아시안게임이 국가대표로 나서는 마지막 대회다. 그러나 사선에 설 때의 열정은 아시안게임 첫 금메달을 땄던 1990년 베이징 대회와 다르지 않았다. 마지막 60발째를 쏜 후 우승을 확정한 박병택은 감격스러운 듯 두 팔을 번쩍 들어올렸다.

 박병택은 18일 광저우 아오티사격장에서 열린 남자 25m 센터파이어 권총에서 586점으로 중국의 류야둥(585점)을 1점 차로 따돌리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완사(천천히 쏘기) 마지막에 9점을 세 번 쏘는 실수를 한 데다 앞서 쏜 선수들의 점수를 알고 급사(빨리 쏘기)에 나서 긴장했다”고 했지만 베테랑답게 차근차근 점수를 만회했다. 홍성환(27)·장대규(34·이상 서산시청)와 힘을 합친 단체전에선 아깝게 중국에 1점 뒤져 은메달을 추가했다.

 어느덧 아시안게임 출전이 6회째. 핸드볼 윤경신과 함께 아시안게임 최다 출전 선수다. 이번 대회까지 메달은 총 19개(금 5, 은 9, 동 5)를 수확했다. 한국 선수 중 아시안게임에서 가장 많은 메달을 따냈다. “나름대로 화려한 선수 생활을 했다고 생각한다”는 박병택은 “너무 많은 메달을 따 이사할 때 몇 개는 잃어버렸다. 집에 들어가면 확인해 봐야겠다”며 여유롭게 웃었다.

 박병택이 사격과 인연을 맺은 건 우연한 기회였다. 고교 졸업 후 특전사에 자원 입대한 박병택은 전군사격대회에서 출중한 기량을 보여 전문 선수로 발탁됐다. 88년 국가대표로 뽑힌 이후 국제대회에서 셀 수 없이 많은 메달을 따냈다. 그러나 주종목인 센터파이어 권총은 비올림픽 종목이라 올림픽 메달이 없었다. 올림픽 종목인 속사권총에 도전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슬럼프에 빠지며 은퇴를 심각히 고려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98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며 재도약의 계기를 삼았다. 그리고 광저우에서 아름다운 마무리를 짓게 됐다.

박병택은 이번 대회 한국 선수단의 주장이자 사격 대표팀의 맏형이다. 그는 “권총에서 진종오뿐만 아니라 홍성환처럼 어린 선수들도 잘해 줘 기분이 좋다. 앞으로도 한국 권총의 위력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병택이 선수 생활을 아예 그만두는 건 아니다. 소속팀을 위해 전국체전에는 출전하겠다고 한다. 박병택은 2009년부터 울산시청 감독을 맡으면서 선수 생활을 병행했다. “마음 같아선 5년 정도 더 하고 싶다”던 박병택은 이제 후진 양성에 좀 더 매진할 생각이다. 그는 “일일이 퍼주는 게 아니라 선수들이 스스로 알아서 깨우칠 수 있게끔 도와주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금메달 3개를 추가한 사격 대표팀은 총 13개로 역대 아시안게임 단일종목 최다 금메달 기록을 세웠다. 종전 최다 기록(12개)은 86년 서울 대회 복싱과 2002년 부산대회 태권도에서 나왔다.

광저우=김효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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