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글로 옮겨놓고 보면 뜻밖의 느낌을 주는 단어들이 적지 않다. 맑고 고운 느낌을 주는 것들이 있는가 하면 어딘가 모르게 불편하고 어색한 느낌을 주는 것들도 있다.
한 동안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던 ‘아햏햏’(별 다른 의미 없이 황당하거나 기쁠 때 사용)의 경우 정확한 의미는 몰라도 왠지 모르게 장난스럽고 가볍다는 느낌을 준다. ‘아햏햏’과 비슷한 시기에 유행했던 ‘뷁’, ‘햏자’ 같은 말들은 10~20대에게는 모르겠지만 중장년층 이상에게는 거리가 느껴지는 불편함이 묻어났다.
개인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봄’ ‘첫눈’ ‘이슬’ 같은 단어는 글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또 ‘라일락’은 젊고 세련된 느낌을 주지만 ‘수수꽃다리’는 한결 토속적이고 따뜻한 정감을 준다. 같은 나무를 가리키는 단어지만 ‘개똥나무’나 ‘털개회나무’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울타리 대용으로 많이 심는 ‘쥐똥나무’ 역시 나무의 생김새, 용도와는 상관 없이 그다지 좋은 느낌은 아니다. ‘서풍’보다는 ‘하늬바람’이 더 경쾌하고 ‘삭풍’은 ‘북풍’보다 더 강하고 을씨년스런 분위기다.
25일은 미국의 대표적인 명절 가운데 하나인 추수감사절이다. 영어로 ‘Thanksgiving Day’인 이날이 다가오면 신문을 제작하는 처지에서 해마다 비슷한 고민을 반복한다. 한글 표기법 때문이다. ‘생스기빙’, ‘땡스기빙’, ‘쌩크스기빙’, ‘추수감사절’ 등을 놓고 어떤 표기가 더 좋을 지 도돌이표 고민을 한다.
한글로 표기한 ‘생스기빙’이나 ‘땡스기빙’ 등은 글자의 생김새만 놓고 보면 그 다지 정감이 가지 않는다. 일가 친척이나 친구, 이웃이 모여 음식을 나누고 모처럼 대화의 꽃을 피우는 날의 느낌이 나지 않는다.
양순음, 순치음, 후치경음, 비강음, 파열음 등으로 나눠진 한글의 외래어 표기법을 정확하게 적용하면 더 적확한 표기를 찾을 수 있겠지만 어떤 경우도 따뜻하고 정겨운 느낌을 주기보다 영 어색할 것 같다.
“Thank you” 역시 비슷하다. “생큐”, “땡큐”, “쌩큐” 어느 것도 고마운 마음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이밖에 샤핑 혹은 쇼핑으로 사용되는 ‘shopping’ 역시 늘 비슷한 고민을 안겨주는 단어들이다.
‘Thanksgiving Day’는 1620년 종교적 박해를 벗어나 새로운 땅, 신대륙을 찾아 나선 청교도들이 모진 겨울과 질병을 이겨낸 후 이듬 해 추수 후 자신들을 도와준 아메리칸 인디언들을 초대, 칠면조 등을 나누고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린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한동안 매사추세츠와 코네티컷 등 북동부 일대서만 지켜지던 ‘Thanksgiving Day’는 점차 미 전역으로 확산됐다. 1789년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최초로 이날을 국경일로 지정했지만 3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은 잉글랜드 관습이라는 이유로 제외시켰다.
19세 중반 발간되던 여성잡지 ‘Godey's Lady's Book’의 편집자 사라 요세파 헤일이 이날을 미국의 국경일로 하자는 캠페인을 벌인 후 1863년 당시 대통령 에이브러험 링컨이 매년 11월 마지막 주 목요일을 국경일로 공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사실 ‘Thanksgiving Day’를 어떻게 표기하던 그 날의 의미가 퇴색되거나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또 영어 발음을 한글로 정확하게 옮기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다. 한글로 표기할 수 없는 소리가 없다고는 하지만 아래아(ㆍ), 순경음비읍(ㅸ), 반치음(ㅿ)처럼 일부 문자와 음가가 소멸된 데다 우리에게는 없는 영어 발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하긴 ‘생스기빙’, ‘땡스기빙’, ‘쌩크스기빙’ 어느 것이면 어떤가. 사랑하는 이들과 한 해를 함께 되돌아보고 정겨운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족할 것이다.
그리고 ‘Thanksgiving Day’가 한 해의 노력으로 일궈낸 수확의 의미를 돌아보고 이를 허락해준 이에게 감사를 표시하는 날이라면 그나마 추수감사절이 무난하지 않을까.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