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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의 세상 속으로

Washington DC

2010.12.14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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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여행을 계획할 때 여행지에 대해서 제각기 선호하는 분야가 있다. 미식가라면 어느 지역에서 명물로 알려진 요리를 반드시 찾아 맛본다. 쇼핑광이라면 그 지역의 쇼핑 명소를 반드시 들르고 싶어 한다. 어떤 이는 주말에 주차장에 펼쳐놓고 하는 거라지 세일(garage sale) 구경을 다니는 취미가 있는데, 이 사람은 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가도 주말이 되면 동네 거라지 세일을 뒤져내고 만다. 골프광들은 미국 지도를 골프장 지도로 인지할 것이다.

내가 어디론가 낯선 곳을 가게 될 때, 내가 우선 하는 일은 그 지역의 미술관이나 혹은 문학과 연관된 명소를 찾아내는 것이다. 내가 플로리다를 여행할 기회가 있었을 때, 가장 먼저 손에 꼽았던 곳은 사람들이 대개 가고 싶어 하는 ‘올랜도’라는 도시가 아니고 헤밍웨이가 글을 쓰던 저택이 있었다는 키웨스트였다. 헤밍웨이는 한때 소설가 지망생이었던 나에게 최고의 영웅이었으니까.

작년 여름휴가 기간에는 일부러 뉴잉글랜드 지방에 산재한 미국 문학가들의 집들을 찾아서 돌아다니기도 했다. 혹자는 거기를 뭣 하러 가느냐고 물을 것이다. 골프 취미가 없는 내가 골프광인 친구에게 골프를 무슨 재미로 하는 거냐고 묻는 것과 같다. 무엇을 좋아하는 것에는 논리적 이유가 필요 없는 것이다.

지난주에는 세인트루이스 인근에 출장을 가게 되었다. 내가 머무르던 숙소에서 백마일 거리에 소설가 마크 트웨인의 어린 시절 집이 있다는 정보를 알아냈다. 그래서 일을 마치고 귀가하기 전 차를 빌려 그 작은 마을을 찾아갔다. 물론 여행 전에 마크 트웨인의 주요 작품들을 대충 읽어 놓기도 하였다.

미주리 주의 한니발이라는 마을에서 마크 트웨인은 유년기의 대부분을 보냈는데, 그의 어린 시절 삶의 에피소드들이 그의 작품 ‘톰소여의 모험’, ‘허클베리핀의 모험’, ‘미시시피 강의 삶’ 등 그의 보석 같은 작품들에 용해되어 있다.

흔히 마크 트웨인의 ‘톰소여의 모험’이나 ‘허클베리핀의 모험’을 어린이용 동화 정도로 인지하고 있으나, ‘허클베리핀의 모험’ 원작이 미국 문학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간단치가 않다. 학교 교육도 제대로 받지 않고 스스로의 본능에 따라 살아가는 ‘자연의 아이’ 허클베리핀과, 도망친 흑인 노예 ‘짐’이 뗏목을 타고 미시시피 강을 떠다니며 겪는 일화 속에는 인간 세상의 부조리함이 그대로 스케치 되어 있다. 자연의 도덕성을 따르는, 교육받지 않은 소년의 눈에 비친 어른들의 세상은 위선과 우매함이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미시시피 강을 따라 이어지는 일화들 속에서 허클베리핀은 도덕적 고결성을 이뤄내게 된다. 이렇게 암울한 이야기들을, 유머러스한 언어로 풀어낸 마크 트웨인은 천재적 독설가이면서 유머리스트이기도 하다.

허클베리핀은 미국의 고등학교 영어시간에 혹은 대학의 일반 교양과정에서, 한국에서는 영미문학을 전공하는 전공생들이 반드시 읽고 지나가는 문제작이기도 하다. 나 역시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던 스무 살 무렵, 더듬거리는 영어 실력으로 이 책을 여러 차례 강독하며 사색하고, 비평문을 썼던 추억을 갖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훗날 마흔 살도 넘은 내가 바로 그 허크의 마을, 허크의 오래된 집을 찾아 갈 것이라는 상상이라도 했었던가? 인생은 얼마나 신비로운가? 톰과 허크의 마을을 겨울비를 맞으며 혼자서 천천히 산책하면서 나는 새삼 삶이 내게 주는 선물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사람들은 각기 다른 취향을 갖고 있고, 여행을 떠날 때 각기 다른 것들에 주목한다. 내가 떠나는 여행은 미술품을 보거나 문화, 역사가 어우러진 장소에 집중되는 편인데, 여행지에서 돌아올 때 내 가슴은 새롭게 뛰기 시작하고, 머리는 투명해짐을 느낀다. 연말연시 휴가 기간에 외출을 하시려는가? 부디 즐거운 소풍을 하시길. 영혼까지 살찌울 수 있는.

이 은 미 미드웨스트대학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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