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Review - 썸웨어(Somewhere)] '고독·단절' 관한 아름답고 찡한 관찰
아무것도 없는 삭막한 도로. 날씬하게 빠진 검은 페라리가 화면 속으로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한참을 뱅뱅 원만 그리던 한 남자가 후즐근한 차림으로 차에서 내린다. 그리고 먼 곳을 바라본다. 목적 없이 공허하게 외롭고 무의미하게.감독: 소피아 코폴라
출연: 스티븐 도프, 엘르 패닝
장르: 드라마
등급: R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영화 '썸웨어'(Somewhere)의 오프닝 장면이다. 지극히 단조롭지만 한편 강렬하다. 그리고 이 간결한 장면은 영화 전체의 분위기와 주제를 관통한다.
감독은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했던 자신의 작품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Lost In Translation)에서 세심하게 관찰해 그려냈던 고립과 단절을 '썸웨어'에서 다시 한번 풀어냈다.
꽤나 성공한 할리우드의 배우지만 너무도 무의미한 일상에 지쳐있는 자니 마르코(스티븐 도프)와 예고없이 그를 찾아와 짧은 일상을 함께 하게 된 딸 클로이(엘르 패닝)의 이야기를 그린 '썸웨어'에는 그럴듯한 사건 하나 흥미로운 에피소드 하나도 없다. 대사는 절제돼 있고 영화의 호흡은 늘어진다. 하지만 툭툭 잘라 던져 놓듯 늘어놓은 장면 장면들의 울림은 크고 강하다. 때론 쓰리고 때론 곱게 여울진다.
파티를 하고 스트립 댄서들을 불러 세우고 술과 담배와 갖은 약에 의존해 봐도 채워지지 않는 자니의 공허함은 지겹도록 이어진다. 조용하지만 외면하고 싶을 만큼 아프다.
할리우드 고급 호텔에서 장기투숙하고 있는 자니의 일상에선 그 어떤 것에도 마음 붙이지 못하고 대충 살아가는 한 사람의 고독이 저릿하게 느껴진다.
반면 자니와 그의 딸 클로이가 함께 하는 장면들은 중요한 대화 한 마디 없이도 보는 이에게 큰 위로를 준다. 둘이 함께 한 시간들이 지극히 편안하고 아름답게 그려졌기에 사실 영화 속 인물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 정붙이고 살 '사람'이었다는 결론이 자연스레 도출된다. 그리고 그 사람이 떠난 후 심지어 자신이 외로운 줄도 몰랐던 주인공 자니가 비로소 뼈저린 고독을 느끼며 눈물짓는 모습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감독은 주인공의 고독을 강조하기 위해 다양한 소리를 효과적으로 사용한다.
영화 내내 계속되는 페라리의 신경질적 굉음은 외로움을 감추려는 자니의 자기 포장처럼 들린다. 자막도 없이 이탈리아어가 계속되는 장면은 이해할 수 없는 언어권에 놓여 더욱 고립되어 버린 주인공의 심경을 표현해 내는 동시에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딸과의 교감을 한층 빛낸다.
영화적 여백이 많아 관객이 느끼고 곱씹을 수 있는 여지도 넓다. 조용하지만 남겨지는 감정의 여운은 세차다. 지난 9월 열렸던 제67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최고영예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이경민 기자 [email protected]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