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고분인 수락암동 1호분의 십이지신에서도 토끼를 볼 수 있는데 통일신라 시기의 십이지신 모습이 인신수두(人身獸頭)인 것과 달리 사람의 관모 장식을 하고 있다. 고려 청자 칠보투각향로는 세 마리 토끼가 떠받치는 구조다. 토끼 위에는 연꽃 무늬가 다시 그 위에는 둥근 달이 조형되어 있다.
역사 자료 속 토끼
우리 역사 기록에 토끼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고구려 6대 대조왕 25년(기원 후 77년)이다. 『삼국사기』에 전해진다. 그해 10월 부여국에서 온 사신이 뿔 3개가 있는 흰 사슴과 꼬리가 긴 토끼를 바쳤고 고구려 왕은 이것이 상서로운 짐승이라 해서 죄수를 풀어주는 사면령을 내렸다는 기록이 나온다. 고려 제8대 현종 2년(1011년) 5월에는 서경(평양) 사람이 머리 하나에 몸뚱이가 둘 달린 토끼를 왕에게 바쳤고 제26대 충선왕 1년(1309년) 8월에는 토끼가 왕궁인 수녕궁에 나타난 것이 화제였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전한다.
지혜와 꾀의 상징
토끼가 거북이를 따라 용궁에 갔다가 빠져나오는 '별주부전' 이야기는 『삼국사기』에도 나오는 민족 설화다.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이 되는 김춘추(604 ~ 661)가 외교사절로 활약할 때 고구려에 도움을 청하러 갔다가 정탐꾼으로 몰려 죽게 되었을 때 일이다. 김춘추는 보장왕의 총신 선도해에게 뇌물을 바치고 살려주길 부탁했다. 이때 선도해가 넌지시 말한 것이 바로 '별주부전'에 관한 기록이다. 김춘추가 토끼한테 배워 위기를 극복했다는 이야기인데 토끼가 지혜로움과 슬기의 상징으로 해석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경상북도 문경시 '토끼비리'라는 지명의 유래는 흥미롭다. 토천(兎遷)이라고도 부른다. 고려 태조가 이 지역에서 진퇴양난의 어려움에 처했을 때 토끼가 절벽을 따라 뛰어가며 길을 안내했다는 전설에서 유래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온다. 고려 태조 왕건이 견훤의 후백제를 치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백두대간을 넘어 고모산성 부근에 도달했을 때 더 이상 진군을 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토끼 한 마리가 벼랑을 타고 달아났다. 왕건은 군사들을 이끌고 토끼가 간 길을 따라 진군해 무사히 이 구간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 후 '토끼길'이란 뜻으로 토천이라 불렀다고 한다. 문경 사람들은 토끼비리라고 부른다. 비리는 문경 지역 방언으로 벼랑으로 풀이된다.
불교 속 토끼 희생의 이미지
불교 설화에서 토끼는 자기 희생의 상징으로 묘사돼 있다.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에 제석천(帝釋天: 불교의 수호신)을 위해 스스로를 소신공양하는 토끼의 이야기가 나온다. 제석천이 노인으로 변신해 여우.원숭이.토끼에게 먹을 것을 청했을 때 여우는 생선을 원숭이는 과일을 가져왔으나 빈손으로 돌아온 토끼는 불 속에 제 몸을 던져 제석천을 공양했다는 이야기다. 토끼의 소신공양에 감동한 제석천은 토끼의 형상을 달에 새겨 후세의 영원한 본이 되게 하였다고 한다.
양산 통도사 수원 팔달사 등의 벽화에는 거북이 등에 탄 토끼 모습을 볼 수 있다. 불교에서 토끼의 이미지를 중시했음을 방증한다. 토끼가 희생제물이 되어 병자를 고쳤다는 이야기는 민간전설로도 전해진다.
조선 후기 예술과 토끼
조선 후기 문학.음악.미술에 토끼가 자주 등장한다. 판소리 여섯 마당이나 열두 마당 가운데 하나인 '수궁가' 한글 고소설인 '별주부전'이 대표적이다. 잡가의 하나인 '토끼타령' 판소리계의 동물 우화소설인 '토끼전'도 빼놓을 수 없다.
조선 후기 미술 가운데 토끼 그림으로는 조영석(1686~1761)의 '암하춘토(巖下春兎)' 변상벽(1730~?)의 '토끼' 최북(1712~1786)의 '추토(秋兎)' 김득신(1754~1822)의 '추계유금(秋谿遊禽)' 등을 꼽을 수 있다. 김홍도(1745~?)가 그린 8폭 영모 병풍에도 토끼가 등장한다.
호랑이와 토끼를 함께 그린 그림들도 주목할 만하다. 심사정(1707~1769)의 '황취박토(荒鷲搏兎)'와 '호취박토(豪鷲搏兎)' 최북의 '호취응토(豪鷲凝兎)' 등이다. 호랑이에게 쫓기는 토끼의 모습을 그렸다. 이 같은 흐름은 조선 말기의 민화로 이어지면서 익살스러운 모습으로 변화해 간다. 호랑이에게 담뱃대를 들이대며 담배를 권하는 토끼(사진)를 묘사하기도 한다.
조선 후기의 각종 문자도(文字圖)에도 토끼가 등장한다. 대개 부끄러움을 뜻하는 '치(恥)'자에 매화와 함께 그려진다. '치'자에는 충절과 절개로 유명한 백이.숙제의 고사를 담고 있다고 한다. 토끼의 이미지가 확장되는 느낌이다. 이 밖에 토끼가 물고기.새.거북이 등과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민화도 전해진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해 보이는 민초들의 꿈을 익살과 해학으로 승화시켰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도움 받은 책=『십이지신 토끼』(책임편집 이어령 생각의나무 2010년 11월 출간) 자료 제공=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장 이원복 국립광주박물관 관장 생각의나무 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