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의 지배자"로 불리우며 각각 일본의 한 시대를 열었던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그리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두견새를 소재로 읊었다는 세 하이쿠( 5.7.5 의 3구 17음으로 된 일본 특유의 단시)가 있다.
노부나가는 "울지 않는 두견새는 죽여야 한다." 고 했고 히데요시는 "울지 않는 두견새는 울게 해야 한다."고 읊었으며 도쿠가와는 "울지 않는 두견새는 울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고 했다. 세 인물의 성격과 인간관리 철학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흥미있는 글들이다.
노부나가는 성격도 급했지만 그때까지 존재했던 중세이후의 낡은 가치관을 타파하는 역사적 사명을 짊어졌던 고로 파괴적인 수단을 앞세웠을 것이고 그에 반해 새로운 가치사회 건설을 주목표로 삼았던 히데요시는 파괴보다는 이용의 철학을 믿고 그 다운 자신감을 과시한 것이다.
그리고 두 선배가 시작한 일을 완성시켜 그 업적을 장구히 지키려는 이상을 가졌던 도쿠가와 또한 그 특유의 인내심을 보여 준듯 하다.
누구의 철학이 더 현명한 것일까?
"울지 않는 두견새"를 그대에게 맡긴다면 그대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나더러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ㅡ"울지 않는 두견새"는 없다. 있다면 다만 두견새의 울음을 들을 줄 모르는 "귀머거리" 인간이 있을 뿐이다.ㅡ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끝이 없다. 한신은 처음에 항우에게서도 유방에게서도 "울지 않는 두견새"로 취급 당했다. 그는 원래 항우쪽에 있었으나 그를 알아 주는 사람이 없어 한 나라로 갔다.
그런데 기대했던 유방마저 그를 크게 써 주지 않았으므로 그는 거기서도 떠나려 하였다. 다행히 인물을 볼 줄 아는 소하가 있어 한신을 붙잡았으니 말이지 그러지 않았더라면 유방은 두고두고 후회했을 것이다.
훗날 한신은 유방을 도와 항우를 멸하는 싸움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장량, 소하와 나란이 "초한 삼걸"로 불리웠으니 두견새중에서도 가장 잘 우는 두견새로 인정받은 셈이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 쏠제니친의 경우도 그랬다. 그의 두견새 울음이 서방세계에서는 큰 반향을 일으켰지만 구 소련에서는 그것을 들어 줄 사람이 없었다. 거기서 그는 울 자유마저 박탈 당했다. 울기 위해 그는 미국으로 망명오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한국의 경제발전에 불멸의 기여를 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 회장이 만약 그의 고향을 떠나지 않고 그냥 이북땅에 남아 있었더라면 그도 "울지 않는 두견새" 신세를 면치 못했을지 모른다.
한 회사에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던 인물이 다른 회사에 가서는 일등 공신이 되는 예를 우리는 수없이 보게 된다. 그들은 두견새의 울음을 들을 줄 아는 사람들을 찾아 자리를 옮긴 이들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무능한 군사(軍師-오늘의 말로는 지휘자)가 있을 뿐 무능한 장수는 없다." 중국 고대의 우수한 병법가들이 즐겨 쓰던 말이다. 한퇴지는 그의 마설(馬說)에서 "천리마는 흔히 있어도 천리마를 알아 보는 백락이 흔치 않다"는 명언을 남겼다. 그는 아래와 같이 역설했다.
"(말을 알아 보는 사람이 없다 보니) 훌륭한 말이 있어도 명마의 대우를 받지 못하고 종들의 손에서 천대를 받다가 마구간에서 (촌말과) 나란이 죽어 갈 뿐 천리마의 칭호를 받지 못한다... 천리를 달리는 말일지라도 먹이를 충분히 주지 않으면 보통 말에도 이르지 못하는 법이다...(천리마를 두고도) 천하에 좋은 말이 없다고 하니 아아, 참으로 말이 없는 것이 아니라 말을 아는 자가 없음을 한탄하노라". 백번 지당한 말이다.
"울지 않는 두견새"는 없다.
"개성 시대"라고 불리우는 오늘, 자아창조와 자기표현을 구애하는 모든 속박을 차버리고 "나!" 하고 크게 외치는 사람들속에서 울지 않는 두견새는 더욱 없다. 어떤 사람들은 또 오늘을 가리켜 "무한경쟁 시대"라고도 부른다.
모든 분야에서 모든 사람들과 끝없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 그들속에서 "울지 않는 두견새"는 더더욱 없다. 각각의 두견새 울음을 어떻게 잘 조화시켜 그것들을 잡음이 아닌 화음으로 엮느냐가 문제일 뿐이다.
두견새의 울음을 듣지 못하는 것은 혼자서 목청껏 고아대느라 자기 귀를 열지 못하고 있던지 아니면 다른 잡새들의 울음에 현혹되여 두견새의 소리를 외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도 애꿎은 두견새만 우네 울지 않네, 죽이네 살리네 하니 칼자루 쥔 자들의 횡포라 아니 할수 없다. 물론 두견새가 아닌 것을 두견새로 착각하고 그 울음을 기대하는 답답한 사람도 없지는 않을테지만.
이쯤하면 이런 하이쿠도 한번 읊어 볼만 하지 않을까 싶다.
"두견새의 울음을 들을 줄 모르는 지도자는 xx야 한다"고.
조 현 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