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을 보러 간 마켓 안은 발 딛을 틈도 없는 것이 민족명절인 설이 바로 코앞임을 실감케 한다. 두툼한 통갈비와 밤이며 잣 대추 그리고 은행마저 손에 넣었으니 이번 설에는 제대로 대장금표 갈비찜이 될 듯 싶어 벌써부터 흐믓하다. "달고 시원한 무 맛 좀 보시고 가세요 !"
생무를 잘라 시식을 권하는 말끔하게 차려 입은 매니저 아저씨의 어눌한 애교에 "이거 한 개도 다 먹을 수 있겠어! 옛날에는 겨울밤에 앉아서 통째로 깎아 먹곤 했지 …." 지긋하게 연세 드신 할머니들이 장단을 맞추신다. 나도 덩달아 무 두덩이를 집어든다.
올 겨울 고국에는 한강물이 꽁꽁 얼 정도라던데 어릴 적 동장군이 왔다던 그 긴긴 겨울밤이 새삼 떠오른다. 땅속에 묻어놓은 무나 윗목 자루 속 고구마며 유독 아버지의 날렵하고 정갈하게 깎아내리는 칼놀림이 눈에 선하다.
무 한개에도 부위별 맛이 다르므로 용도를 달리하는 나의 요리법을 살짝 일러둔다. 무청의 바로 아래는 섬유질이 많아 갈아 무즙으로 윗 부분은 당도가 높고 덜 매우니 무침이나 생식으로 아래 부분은 조림용이나 절임용으로 알맞다. 왠지 식품의 성질을 알면 알수록 요리가 한결 새롭고 즐거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