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칼럼] 와이 낫 미(Why not me)?
장성희 시인
인생의 여정 가운데 오늘 이 순간까지 당신이 한번도 누군가를 향한 "왜, 나입니까?"라는 깊은 절망의 탄식이 없었다면 당신은 참으로 순탄한 삶을 살아온 것입니다.
수 년 전 미국 페퍼다인 대학교 최우수 교수상, 알라스카 주 경제개발공로 특별상을 수상해 학문적, 실용적 진가를 인정받고 미국의 한인 2세 영적 각성 운동인 자마(JAMA)를 설립, 열정을 바친 김춘근 박사의 투병기와 신앙을 담은 책, "와이 미?"를 선물 받았을 때입니다. 많은 인간이 절망적인 순간에 "와이 미?"라고 묻는데 그 절망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왜 "와이 낫 미?"(Why not me?)라고 묻지 않을까 하고 다소 쓸데없는 의문을 갖게 된 것은.
어떠한 설명으로도 받아들일 수 없는 일, 불가해하고 불공평하고 불가항력적인 불청객이 느닷없이 나에게 찾아왔을 때 두 손 들고 환영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누군가 당할 일이라면 내가 대신 당해도 좋습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순순히 나를 내어줄 사람이 있겠습니까?
중국과 인도네시아, 아이티와 칠레의 참혹한 광경을 차례로 불러 일으키며 다시 피할 수 없이 내 눈 앞에 펼쳐진 일본의 지진 참사를 대하면서 저도 차마 저들이 살고 차라리 나와 내 가족이 당했더라면 하는 생각은 못하겠습니다.
인간이 어떤 사건을 해석하고 평가할 때 자신과 관련된 역사와 감정을 철저히 배제하고 오로지 이성과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말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역사적으로 일본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지 않은, 특히 일본 강점기를 거친 70세 이상 한국인들 중에는 크게 드러내고 말은 못하여도 누군가 대신 보복을 한 것 같은 감정의 소용돌이를 잠시 겪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다 계속되는 참혹한 재해 현장의 모습에 탄식하고 혹여 나의 피붙이가 원전 피해를 당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서기도 했을 것입니다. 핵과 관련해 지구 위의 특정한 한 곳, 한 나라의 재해는 더 이상 너만의 재해가 아니요 우리 모두의 재해임을 더욱 분명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천재지변으로 발생하는 참사가 생길 때 마다 나오는 "하나님의 경고,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보수기독교의 해석도 관점의 차이겠으나 어쩌면 종교적인 열심과 거기서 비롯된 감정이 개입되어 있을 것입니다. 아이티 지진 때도 "이교도와 손을 잡은 데 대한 하나님의 저주"라는 미국 목사의 발언이 문제가 되었고 뉴올리언즈 카트리나 재해와 인도네시아 참사 때도, 그리고 지금 일본의 재해도 "하나님의 경고"라고 말하는 기독교인들이 있습니다. 진정으로 비 기독교인을 사랑한다면 이런 말은 어떨까요. "미안합니다. 나는 이미 그리스도를 믿고 영생을 얻은 사람인데 내가 당신 대신 그 곳에 있지 못해서 정말 안타깝습니다."
성서에 이른 대로 전쟁과 지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종교적으로 우익과 좌익이 있는 한 이러한 발언도 계속될 것입니다. 인터넷과 뉴스는 누가 한 마디만 하여도 덮어 끌 줄 모르고 금방 불일 듯 들고 있어나는 다혈질 속도전의 세상을 부채질하는 참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재해가 생길 때 마다 종말의 두려움과 공포를 조장하나 예수는 재난 앞에 "두려워 말라"(마 24:6)고 하였습니다. 그것이 참된 신앙인의 자세일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신을 사랑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도 그것이 사람을 버리는 일이라면, 그것은 적절하지 못합니다. 절대자, 신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고통 중에 있는 사람을 더욱 아프게 한다면 그것은 신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유한한 오점투성이 생명,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신의 위치까지도 버리고 중재자가 되신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그것이 사랑의 정수요 기독교의 요체임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 막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린 분. 그 분 곁으로 조용히 걸어갑니다. 돌아보니 예수를 믿고 크리스천이 된지 30년도 더 지났습니다. 지금의 내 모습이 나를 처음 볼 때만큼 어여쁜지 그 곁에 서서 묻고 싶습니다.
쫓아오던 햇빛인데 / 지금 교회당(敎會堂) 꼭대기 / 십자가(十字架)에 걸리었습니다. / 첨탑(尖塔)이 저렇게도 높은데 /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 종(鐘)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 괴로웠던 사나이, / 행복(幸福)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 십자가(十字架)가 허락(許諾)된다면 / 모가지를 드리우고 /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윤동주,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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