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아동보호법은 냉혹하다. 동양사회의 기초윤리인 천륜(天倫)을 인정하지 않는다. 부모와 자식 간의 소위 ‘하늘이 맺어준 관계’ 속에 이루어진 가해 행위이지만 정상참작의 틈이 없는 사법의 영역이 바로 아동보호법이다.
부모가 자녀에게 신체, 정신, 심리적 피해를 입히면 그는 최악의 범법자가 된다. 아이들 앞에서 부모가 체포되는 상황도 전개된다. 심한 경우 부모는 양육권을 빼앗기고 자녀의 장래는 공동체에 맡겨진다.
국제사회는 지금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에 대해 아동보호법을 적용하고 있다. 유엔 안보리는 지상군 투입을 제외한 리비아에 대한 일체의 군사 대응을 결의했다. 목적은 하나다. '민간인 보호'를 위한 것이다.
리비아 국민은 지금 부모의 학대에 무방비로 노출된 아동과 같으며, 따라서 국제사회가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국민학대’ 사건에 개입한 것이다. 유엔을 통해 행동의 합법성을 획득한 미국, 영국, 프랑스 주축의 군사연합은 리비아에 대한 국민 학대국가 해체 수순을 밟고 있다. 군사행동의 지휘권을 가진 나토(NATO)는 ‘국민학대죄’ 범인을 처벌하는 일종의 국제 경찰관이다.
사막을 ‘물과 젖’이 흐르는 옥토로 바꾸겠다는 소위 ‘녹색혁명’의 기수 카다피가 국민학대범으로 전락한 과정은 글자 그대로 ‘자업자득’이다. 그의 통치하의 리비아는 대다수 아랍사회의 고질병을 떨쳐내지 못했다. 그는 군사 쿠데타로 집권했다. 물론 적법절차가 아니다. 그리고 오일머니에 의존해 세 가지 ‘P’로 국민을 통치했다. Pride(자부심), Populism(대중영합주의), Project(대형 건설사업).
리비아인의 자존심을 그는 군사력과 아울러 반 서방, 반 이스라엘 구호로 자극시켰다. 그는 또 학교, 병원, 아파트를 지어 리비아인들의 기초 생활의 부담은 없애주었다. 아울러 모래 위에 대규모 도로와 수로, 그리고 도시를 건설했다. 하지만 리비아인들을 위한 일자리는 창출되지 않는 외국인 의존의 기형 경제가 운용되었다.
카다피 통치 42년 동안 리비아는 진정한 번영은 없고 번영의 그림자만 드리워진 나라가 되고 만 것이다. 그는 반대자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국가가 지워준 아파트에서 일정의 복지혜택을 누리며 살지만 국가를 무서워하는 아이러니가 바로 리비아였다.
그럼에도 국제 사회가 카다피와의 공존의 길을 모색한 이유가 있다. 필자는 그 원인을 서방의 'NOT 정책'이라고 부르고 싶다. Nuclear(핵무기), Oil (원유), 그리고 Terror (테러)를 말한다. 서방은 카다피가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고, 원유를 무기화 하지 않고, 국제 테러에 관여하지 않는 이상 고립시킬 필요는 없다고 믿어 왔다. 근래 이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니 카다피의 국민학대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아동학대는 시간이 지나면서 심화되는데 이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요인은 주위의 무관심이다. 아이들에게서 초기 학대피해의 정황이 읽혀지지만 이때 주위의 관심과 개입이 없으면 부모는 무감각해져 학대의 수위를 높여 간다는 뜻이다.
국민학대증도 마찬가지이다. 리비아 국민들은 카다피 철권 아래서 살이 할퀸 자욱이 멍으로, 멍이 골절로 변해가는 세월을 살았다. 하지만 미국 등 서방은 미 전함에 대한 위협, 베를린 디스코텍 폭발, 또 팬 아메리칸 여객기의 공중폭파 등 ‘자국민’이 당한 일이 아니면 카다피에 적극 대응하지 않았다.
이제 국제 사회는 리비아 사태로 인해서 새로운 과제를 안았다. 국민학대증이 중증이 돼, 국제사회가 나라를 해체하는 군사작전에 뛰어드는 악순환을 막기 위한 인류공동체적 방책은 무엇인가? 답이 절실한 이유는 아직도 국민학대증이 도처에 만연하기 때문이다.
# 중앙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