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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人 in] 22년째 아내 손발되어 간호…곁에 있어준 것만으로 감사

교통사고로 3차례 뇌수술·치매·자궁암 덮쳐
지난주 꿈꿔 오던 결혼 50주년 '금혼식' 치러
86세 홍미현 할아버지 '감동의 순애보'

너무 힘겨워 동반자살 생각도
사랑과 믿음으로 고난 이겨내
"모두 내려 놓으면 모두 얻는다"
행복 공식 함께 실천해 보세요


심한 교통사고 후 어느 것 하나 스스로 할 수 없게 된 아내를 20년간 돌봐온 홍미현 장로(나성영락교회:86)는 요즘 '삶의 성취감'과 '감사'로 더 없이 기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며칠전 가족들이 모인 가운데 아내(홍윤경:76)와의 결혼 50주년 기념 행사를 조촐하게 치렀기 때문이다.

'금혼식'은 아내를 돌보는 동안 그가 꿈꾸며 온 가장 큰 바람이었다.

97년 아내의 치매 증세가 시작됐을 때나 6년전 자궁암으로 방사선 치료를 받을 때도 그는 "제발 살려만 주십시요"하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곤 했다. 결혼 50주년 '금혼식' 만은 반드시 치러야 한다고 하나님에게 졸랐다.

"그런데 정말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어주셨네요. 자궁암 선고를 받았을 때는 가슴이 철렁했는데 그 힘든 방사선 치료를 다 이겨내고 건강을 회복 했으니까요. 70이 넘어서 거동이 점점 더 힘들어져 누가 잡아주지 않으면 걷기도 힘든 상태지만 그렇게라도 곁에 있어주는 것이 감사할 뿐 입니다."

주변에서는 이런 홍장로의 극진한 아내 사랑을 '믿기 힘들 정도'라고 감탄해 하며 '부부 사랑'의 귀감으로 삼고 있다.

연세대 동기 동창인 김동길 교수도 LA를 방문할 때면 빼놓지 않고 반드시 찾는 사람이 바로 홍 장로다. "이 친구 만나면 천사를 만난 것 같아 마음이 아주 맑아진다"고 주변사람들을 부부동반 초청해 홍장로 부부를 소개하곤 한다.

몸이 불편한 아내 곁에 앉자 음식을 잘게 잘라 입에 넣어주고 혹시라도 흘릴새라 냅킨으로 얼른 입 닦아 주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더이상의 부부애 현장 강의가 필요없다는 것이다.

자녀들의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이 더욱 깊어지는 것은 말 할 것도 없다.

금혼식에는 3 자녀 부부와 4명의 손자 손녀가 모두 참석 큰 자리 펴놓고 큰 절을 올렸다. 친구들 만나 골프는 커녕 식사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는 등 자신의 삶을 모두 내려놓고 아내 곁에서 불만없이 20여년을 보내는 아버지와 할아버지 앞에서 절을 올리며 이들은 모두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큰 아들인 소아 치과 전문의 브라이언 홍씨는 자신들이 어머니를 돌보지 못함을 늘 미안해 한다. 대신 가정부나 간호사를 고용하라고 아버지에게 용돈을 드리지만 홍장로는 단 한번도 아들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대신 이 돈을 모았다 오히려 생활이 어려운 친척과 이웃을 도와왔다.

"내 손으로 돌볼 수 있는 데 왜 남에게 시킵니까? "

6년전 자궁암으로 어머니가 심하게 아플 때는 곁에서 간호하는 아버지가 안스러워 딸들이 "이제 우리 엄마 데려가 주십사'고 기도하자 홍장로가 버럭 화를 냈다. "별소리 다 하는구나. 세상 없어도 금혼식은 치러야 한다."

그 6년이 지나 금혼식을 치르고 나니 홍장로는 요즘 아내 나이가 80 되는 4년 후로 다시 하나님에게 조르기 시작했다.

1972년 이민와 커피샵을 운영하며 이화여대 영문과 출신인 당차고 똑똑한 아내와 1남2녀 키우며 열심히 이민생활을 일궜던 홍미현 장로에게 큰 풍파가 닥친 것은 1989년.

10여년간 잘 꾸려온 커피샵이 한계에 부딪치면서 다른 비즈니스를 찾아 다니던 중 대형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신호등을 무시하고 달려온 상대방 차가 운전석 옆에 앉아 있던 아내 쪽을 치면서 차는 대파됐고 아내는 그 자리에서 실신 3차례의 뇌수술을 받게된 것이다.

뇌수술 이후 아내는 심한 뇌 기능 장애로 대화가 불가능한 것은 물론 먹고 자는 일에서부터 대소변 치르는 일까지 남편의 도움이 없이는 생존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가 됐다.

그때부터 완전히 밖의 일을 끊고 아내를 돌보기 시작한 홍미현 장로는 한때는 '동반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너무나 힘이 들고 암담해 함께 죽자고 마음 먹고 차를 어디로 몰고 가서 어떻게 떨어질까 구체적으로 답사(?)까지 하고 루트를 연구하기도 했어요."

그러던 어느날 문득 결혼식 때 하나님 앞에 손들고 " 건강할 때나 병들었을 때나 한결같이 사랑하겠다"고 맹세했던 서약이 머리에 떠올랐다는 것.

'만약에 내가 환자의 입장이고 저 사람이 돌보는 상황이었다면 이런 마음을 품기나 했을까'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는 홍장로는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회상한다. 딸의 결혼을 앞두고 있었던 것도 마음을 되돌리게 된 이유였다.

그리고 이후로는 단 한번도 그런 부질없는 생각을 하지 않고 오직 사랑으로 모든 것을 감내한다.

지금도 거실 한쪽에는 홍장로가 마음을 바꾸게 된 날자(1997년 9월9일)가 크게 써 붙여져있다. 혹시라도 마음이 약해져 또다시 바보같은 생각을 하게될까봐 하루에도 몇번씩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서다.

"하나님이 아내 돌보는 것을 가상하게 보시는지 건강을 주셔서 지금까지 약 한번 먹지 않고 지내고 있습니다."

80세 넘은 나이에 혈압도 정상이고 당뇨도 없이 아무 음식이나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건강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은 신의 축복이 아니고는 힘든 일일 것이다.

"요즘은 나도 깜빡 깜빡해서 종이에다 모두 적어요. 아내가 몇시에 소변 보았는지 써 놓아야지 실수를 안 합니다. 아침에는 세상없어도 아내보다 먼저 일어나야 해요. 재빨리 요강을 비워버리지 않으면 한살난 애처럼 뒤집어 엎기도 하니까요."

홍장로에게 낙이 있다면 아내를 태우고 LA 한인타운에 나와 비디오 빌리고 지인을 만나 잠시 점심을 함께 먹는 일이다.

가는 곳은 딱 두곳. 일식은 어원 중식은 만리장성이다. 그곳에서는 이미 단골이 된 이들에게 늘 최적의 자리를 내주고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감사할 일이 한둘이 아닙니다. 아직은 운전도 할 수 있으니 아내 태우고 어디든 갈 수 있고 이렇게 가는 곳 마다 대우받으니 더이상의 바람이 없어요"

성격과 취미가 맞지 않는다며 쉽게 헤어지는 요즘 젊은 커플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는 홍장로는 '사랑은 모든 것을 가능케 한다'고 부부들에게 "모두 내려 놓으면 모두 얻는다'는 행복 공식을 실천해 보라고 당부한다.

유이나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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